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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85> 수해와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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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90년 9월 12일 폭우로 서울 풍납동 서울중앙병원(지금의 서울아산병원)이 침수됐다. 입원 중인 환자들을 군인들이 고무보트로 실어 나르고 있다. [중앙포토]

1990년 서울에 큰 물난리가 났다. 9월 11일부터 사흘간 480㎜의 비가 내렸다. 서울의 연평균 강수량이 1370㎜였다. 1년치 강수량의 3분의 1이 단 3일 동안 서울에 쏟아졌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다음의 기록이라고 했다. 65년 만의 대홍수가 하필 내가 서울시장일 때 닥쳤다. 전남도지사 시절 지독한 가뭄으로 고생했는데…. 전남도지사 땐 지사실에서 밤을 새우며 기우제를 지냈다. 이젠 시청 시장실에서 기청제(비가 멈추길 비는 제사)를 지내야 할 판이었다. 내 운을 탓할 여유는 없었다. 한강 수위가 심상찮았다.

 급히 3개의 수방(水防) 기동대를 만들었다. 우명규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장 등에게 기동대장 역할을 맡겼다. 나 역시 며칠 밤낮을 시장실에서 보냈다.

 김학재 전 행정2부시장은 23년 전 긴박했던 현장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했다. 당시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 차장이었던 그는 기동대에서 활약했다. 김 전 부시장의 설명이다.

 “고건 시장으로부터 ‘영등포 시내로 물이 들어온다고 한다. 빨리 가보라’는 지시를 받았어요. 바로 현장으로 향했는데 마포에 물이 넘쳐서 차가 더 못 가더라고요. 차에서 내려 걸어서 여의도 샛강에 가보니 엉망이었습니다. 쓰레기에 스티로폼에…. 어디서 물이 새어 나오는지 알 길이 없는 겁니다. 서울시 한강개발부장을 할 때 알고 지내던 잠수부들을 동원했습니다. 노련한 그들도 겁을 낼 정도로 물살이 강했습니다. 잠수부들이 허리에 줄을 묶고 들어갔지요. 몇 번을 그렇게 해서 뚜껑이 안 닫힌 맨홀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빗물 펌프장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장마철을 앞두고 공사를 잠시 중단하며 물이 새어 나올 통로를 철저히 막아둬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잠수부들이 철망, 모래 가마니 등을 열린 맨홀 위에 덮어 겨우 막았습니다. 홍수가 닥치기 전 현장 점검을 철저히 했어야 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무사안일이 문제였던 거죠.” 김 전 부시장의 지적이다.

 영등포 일대 주택 360여 채가 물에 잠기고 922가구 주민이 대피해야 했지만 김 전 부시장 등 수방 기동대의 활약 덕분에 더 큰 피해는 막았다. 그런데 곧 이어 중랑천 합류 지점의 한강 제방이 붕괴될 조짐이 있다는 심각한 위기경보를 받았다. 우명규 본부장이 현장으로 달려가 지하철 건설용 중장비를 비상 동원해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이때 수도권에 내린 폭우로 경기도 고양의 한강 제방이 붕괴됐다.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고양의 둑을 터뜨렸다는 유언비어가 돌 정도로 민심이 흉흉했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서울의 한강 제방이 터졌다면 고양의 제방은 안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서울도 최악의 상황만 피했을 뿐 저지대 아파트, 풍납동 서울중앙병원(지금의 서울아산병원) 등에서 적지 않은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수해와의 첫 번째 전쟁이었다.

 바로 ‘수해 항구 대책 3개년 계획’을 세웠다. 풍납동에서 망원동에 이르기까지 배수 펌프장 28개소를 한강 본류에 더 설치하고 17개 제방을 쌓았다.

 민선시장으로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98년 8월. 또 서울에 홍수가 닥쳤다. 이젠 70여 년 만의 최대 규모 폭우였다. 한강 본류에선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관선시장 때 추진한 수해 대책 덕이었다. 그런데 한강 지천에서 사고가 터졌다. 중랑천·안양천 등이 범람했다. 두 번째 수해와의 전쟁이었다.

 혹독한 수업이었다. 99년 ‘수해 항구 대책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추진했다. 한강 지천 바닥을 준설했고 침수 피해가 심했던 지역을 중심으로 펌프장을 신설했다. 117㎞의 하수관로를 새로 깔았고 용량도 확대했다. 펌프장 상태를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조정할 수 있도록 영상 감시, 원격 조종, 자동 기록 시스템을 확충했다.

 하지만 수재(水災)와 나의 악연은 너무나도 질겼다. 2001년 7월 집중 폭우가 서울에 내렸다. 200년 만에 한 번 있을까 한 큰 비라고 했다. 수해 항구 대책 5개년 사업을 채 완료하기도 전이었다. 저지대 주택가 지하실 등이 침수되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안타깝고 서울시민에게 죄송스러웠다.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수해 항구 대책을 완료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렇게 나는 수해와의 세 차례 전쟁을 치렀다.

 이후 과거와 같은 광범위한 수해는 없었지만 강남대로와 세종로 사거리 침수, 우면산 산사태 등 피해가 발생했다. 우수·하수관로의 용량을 키우고 산사태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 서울시의 수해와의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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