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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중·일과 이웃한 건 때론 축복, 때론 저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1세기에는 거대담론이 나오기 힘들다. 오늘날 학문 세계는 고도로 세분화됐다. 말은 쉽지만 다학문적(multidisciplinary) 연구는 더더욱 어렵다. 미국 UCLA 지리학과 교수인 재레드 다이아몬드(76·사진)는 학자 수십 명이 달라붙어야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성과를 연속해 선보이고 있다. 그는 생물학·언어학·역사학·의학·인류학·지리학의 수십 개 분과 학문에서 자유롭게 이론과 사실을 끌어다 쓰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영국 시사 월간지 프로스펙트 매거진이 선정한 ‘세계 사상가(World Thinkers) 2013’ 100명 중 12위를 차지했다. 퓰리처상을 받은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1997)로 유명한 그가 지난해 내놓은 『어제까지의 세계(The World Until Yesterday)』가 5월에 우리말로 번역됐다. 지리라는 관점으로 보면 세계가 어떻게 보이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이아몬드 교수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지리학이란 무엇인가.
“넓은 의미로 정의한다면, 지리학은 지구의 ‘장소(place)’와 관련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생물지리학(동물과 식물의 분포), 자연지리학(강과 해안과 산), 그리고 물론 인문지리학이 있다. 인문지리학은 한국이 왜 일찍이 농업과 국가, 문자를 발전시켰으며 오늘날 파라과이나 말라위보다 부자 나라인지를 설명할 수 있다.”

지리적 요인 받쳐줘야 위대한 지도자 탄생
-문화나 종교의 지리학은 경제지리학보다 더 중요한가.
“어떤 게 더 중요한지를 묻는 것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부부 사이에 섹스·돈·종교·자녀, 정치에 대한 의견 일치 중에서 무엇이 제일 중요한지를 묻는 것과 같다. 행복한 결혼에는 이 모든 변수를 고려하는 게 필요하다.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한 한 가지를 물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문화·종교·경제·기후의 지리학, 생물지리학, 자연지리학 모두가 중요하다. 지리의 모든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인간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 오로지 섹스만으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릴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알렉산더 대제의 제국, 몽골 제국, 이슬람 제국과 같은 경우를 보면, 강대국의 부상은 급격하게 일어나지만 쇠퇴는 천천히 이뤄지는 것 같다. 부상에는 리더십이 중요하지만 쇠퇴기에는 환경적 요인이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리와 리더십은 어떤 관계인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몇몇 경우에는 맞는 말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가 있다. 잉카 제국, 카르타고, 대영 제국은 모두 천천히 부상했으나 쇠퇴는 빨리 일어났다. 지리가 리더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리더십의 행사가 지리적인 제약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 아무리 위대한 지도자라도 지리적 요인이 그의 나라를 약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면 업적을 이룰 수 없다. 파라과이나 말라위의 위대한 지도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인가 아니면 ‘아시아·태평양의 세기’인가.
“양쪽 다 아니다. 과거 가난했던 상당수 아시아 국가들의 부와 권력이 성장하고 있지만 북미와 유럽은 21세기에도 사라지지 않을 근본적인 지리적 이점을 누리고 있다.”

-인간의 ‘정치 유전자’를 고려하면 미국과 중국 사이의 분쟁은 불가피한 것인가.
“중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그 어떤 나라들 사이에서도 분쟁이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유전자뿐만 아니라 그 어떤 다른 요인을 고려해도 그렇다. 수천 년의 기록된 역사를 통해 보면, 정치 단위들 간의 관계는 분쟁과 우호적 관계의 혼합이었다. 이 혼합에는 또한 부침이 있었다. 분쟁 원인은 유전자가 아니라 계산된 계획이나 실수였다.”

-모든 나라에 지리는 ‘저주’이기도 하고 ‘축복’이기도 하다.
“몇 가지 측면에서 한국의 지리에는 특유의 저주와 축복이 있다. 온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축복이다. 인구가 더 많고 강력한 중국과 일본과 접하고 있는 것은 때때로 축복이기도 하고 저주이기도 하다. 반도라는 것은 저주나 축복이라기보다는 그저 중요한 요인이다. 한국과 가장 가까운 경우는 온대에 있는 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 덴마크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의 반도 국가들이다. 그러나 이들 반도 국가도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과 유사하다고 할 수 없다.”

북핵? 미친 지도자가 강력 무기 쥐는 건 불행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 된다는 것은 ‘지리의 종언’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세계화가 계속돼도 한국이 온대기후 지역에 자리 잡은 반도라는 것, 중국·일본과 가깝다는 것, 한국어로 말한다는 것, 세계 최고인 한글이라는 놀라운 문자체제로 글을 쓴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가 한글을 채택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곧, 그 어떤 다른 문자도 따라올 수 없는 한글을 한국이 무한정 독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글이 최고라는 것은 내 개인 의견일 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이다.”

-당신은 친한(親韓·pro-Korea)인가.
“그렇다. 나는 한국에 관심이 많고 친한이다. 한국 사람과 한국 역사에는 흥미롭고 감탄할 만한 게 아주 많기 때문이다.”

-『어제까지의 세계』를 읽는다는 것은 한국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전통사회들이 얼마나 매혹적인지 발견하게 될 것이며 현대 한국인의 삶에 유용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독자들은 어떤 순서로 당신의 책을 읽는 게 좋을까.
“독자마다 각자 바라는 순서에 따라 읽으면 된다. 나는 한국 독자들이 내가 쓴 책을 모두 다 재미있게 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들이 한국어로 모두 번역됐다는 게 매우 기쁘고 자랑스럽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어떻게 보는가.
“나쁜 일이다. 미친 지도자들이 강력한 무기를 쥐게 되는 것은 항상 나쁘다.”

-사회과학에서 변수가 너무 많은 것도 적은 것도 나쁜 것 같다. 최적의 변수 숫자는.
“변수가 너무 많으면(예를 들면 79개) 체계가 없어 이해할 수 없는 ‘세탁물 기입표(laundry list)’ 처럼 돼버린다. 변수가 너무 적으면(예컨대 한두 개) 다른 중요한 요인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최적의 변수 개수는 없다. 변수의 수는 질문의 성격과 염두에 두고 있는 독자층에 달렸다.”

-유라시아를 한 단위로 묶어서 볼 수도 있고 나눠서 볼 수도 있다. 묶느냐 나누느냐에 따라 질문과 답이 어떻게 달라지나.
“‘유라시아 대(對) 다른 대륙’이라는 지리적 스케일로 보면 ‘어떤 이유로 다른 대륙이 아니라 유라시아의 사람들 중 일부가 세계 나머지의 대부분을 정복한 것일까’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총, 균, 쇠』는 이 질문에 대한 논의다. 두 번째 질문은 ‘유라시아 중에서도 중국·인도·중동이 아니라 유럽이 세계로 팽창한 이유는 무엇인가’다. 이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현재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총, 균, 쇠』의 에필로그는 이 문제에 대한 내 이론을 간략하게 제시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하버드대(문학사)와 케임브리지대(생리학 박사)에서 공부한 후 시카고대를 거쳐 현재 UCLA 교수다. 독일어·프랑스어·러시아어·라틴어·그리스어에 능통하다. 『문명 3부작』뿐만 아니라 『제3의 침팬지』(1991)와 『섹스의 진화』 (1997)도 놓치면 손해인 명저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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