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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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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입동, 고개마루턱에 겨우살이의 채비를 알리는 바람 끝이 차지면 여인들의 일손은 마냥 부산해진다.
1년에 한번씩 큰일처럼 치러지는 김장담그기가 집집마다 한창이다.
바쁜 일거리에 못지 않게 김장 솜씨 걱정도 적지 않아 가슴 설레게 한다.
이달 들면 가계부도 또한 크게 휘청거린다. 아빠들의「셀러리」, 착한 농부의 한나절 막걸리 값도 김장감에 빼앗겨 호주머니 마저 빈털터리가 되는 한철.
그러나 무우 배추의 싱싱한 포기 포기는 새로운 식탁의 미각을 돋우고 이 한해의 평화를 누리게 한다. 이제부터 긴 겨울잠. 다소곳이 지나간 봄·여름·가을의 풍요에 감사하고 툇마루의 햇볕을 즐기는 누리를 기원한다. 바로 김장철의 고비를 맞았다.

<이번 주말이 최적기>
중앙관상대가 발표한 주간 일기예보(21일부터 27일까지) 에 따르면 이번 주말까지는 예년과 같은 평균4∼5도의 기온을 유지하겠으나 내주 초부터는 다시 추워지리라는 예보. 금주 말에는 곳에 따라 비나 눈이 다소 오겠으나 내주 초부터 주중까지는 북서 계절풍이 강하게 불어 날씨가 추워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관상대에서도 김장 날을 이번 주간에 잡아두는 것이 좋으리라는 당부도 했다.
김장감의 반입량도 이번 주를 맞아 부쩍 늘었다. 김장시장뿐만 아니라 「리어카」에 실린 무우 배추가 골목 앞까지 들어와 주부들을 불러낸다. 시세도 많이 떨어져 배추는 상품도 접당 3천5백원 내지 4천원, 무우는 한 가마에 3백원 가량 떨어져 7백원에서 1천원 이면 살 수 있다. 값으로 따져도 이번 주가 제일 김장하기에 알맞는다. 시장상인들 말로는 날씨가 점차 추워지면 시세도 또 오르리라는 전망이다.

<지상최대 김장작전>
이때쯤이면 집집뿐 아니라 전후방의 병사들을 급식하기 위한 김치 담그기도 한창이다. 가위 지상최대의 「김치작전」. 연식대의「김치작전」은 그 중에서도 볼만하다 못해 기가 딱 질린다. 올해 「김치작전」의 「D·데이」는 이미 지난10일부터 시작, 25일까지 마쳐진다.12월부터 내년2월말까지 장병들에게 공급될 김장량은 자그마치 1백50만 킬로그램.
10톤에서 20톤들이「사일로」1백 개에 채워야 하는 엄청난 작전이다. 이걸 연무대 장병들은 하루에 「사일로」1개분을 먹어 치운다. 이 김장에는 전국 각처에서 공급된 김장거리를 차량 50대, 병력5백50명이 동원되어 6백「트럭」을 실어 날랐다. 넓은 취사장 마당에서 매일처럼 담가지는 이 「김치작전」엔 연무대 장교들의 부인들이 사병들과 함께 어울려 솜씨를 겨룬다. 박남표소장은 이「김치작전」 을 지켜보며 『올 김치는 김장감이 싼 덕분으로 병사 1인당 하루 4백50그램의 할당량을 1백24그램 늘려 5백74그램씩으로 급식키로 했다』고 만족해했다. 상무대에선 인근의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김치담그기를 돕는 등 곳곳에서 흐뭇한 정경을 보이기도 했다.
김장은 우리 식생활의 전부처럼 여겨지고 있다. 『김치를 안 먹는 식생활로 개선하자』 고들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너무 즐기는 식품, 너무 중요한 생활로 젖어있다. 그럴 것이 어느 때부터 김치를 먹어온 것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김치는 우리민족의 바로 생활사였다. 민담으로는 한사군시대부터라는 말도 있다.

<유래엔 약용설 까지>
한반도에 처음 침입한 중국인이 약용으로 자채 (배추)를 고추에 버무려 퍼뜨렸다는 설이 그것이다. 그러나 김치의 기원은 소금이 원시 때부터 중요한 조미료로 쓰였던 기록이 어디서나 발견되고 있는 만큼 이보다 더 오래 전으로 소급될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마저 충분히 있다. 또 토기의 일종인 도가니의 기원을 따져보더라도 꽤 오랜 역사를 지녔을 게 분명하다.
이 김치가 한국의 역사기록에서 뚜렷이 밝혀진 것은 아무래도 이조 생활의 지침서로 알려져 온 「산림경제」 (숙종 때 사람 홍만선의 저서) 의 기록이 가정 자상하다는 것. 농가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농사 및 일반생산기술 의약 등 생활과학의 지침서로 손꼽혀 온 「산림경제」에는 「동치미」담그는 법을 「동심@법」. 배추김치 담그는 법을 「송심법」으로 기록하고있어 김치의 어원을 『침채→짐채→김치』로 속음화 한 사실 마저 짐작토록 해주고 있다. 이밖에도 이 저서에서는 이미 10여 가지의 김치 담그는 법을 알려주고 있으니 김치가 바로 우리생활의 「바로미터」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고장풍취 퇴색>
심지어 김치는 생활의 사치성 마저 나타내기도 했다. 단순한 재료의 구분 또는 계절의 미각에 따라 고루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그 안에「생활의 정도」까지 풍겨 왔다는 것이다. 파, 마늘, 생강, 고추, 미나리의 기본재료만을 썼던 양념은 더 나아가서 잣, 청각, 낙지 북어, 쇠고기를 더했는가 하면 마른 홍합, 전복, 배, 밤, 갓. 표고, 편육까지 곁들이는 사치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러나 미각의 세 태도 많이 달라졌다. 유명한 개성 보쌈김치, 전주 백김치, 순천 꼬들베기 김치, 평양 동치미 등 그 지방의 풍치와 미각을 한꺼번에 담았던 전통의 맛이 점차 사라져 가는 것이다. 그 만큼 김치 담그기도 새 생활에 알맞아 가는 것인가.
여기 연세대 가정대학 유계완 교수가 간추린 새 생활의 김치 담기 종류를 「가이드」로 엮어보자.
무우 김장 ▲왜 단무지=신선한 무우를 무우 청째 3일 낮 동안 매달아 무우가 활정도로 굽혀지면 무우청을 10센티 정도만 남기고 자른 다음 치자를 부드럽게 빻고 겨와 호렴 고추씨「뉴슈가」를 한데 잘 섞어 무우가 차곡차곡 위로 올라갈수록 겨의 두께를 두껍게 하며 나중에 늘돌로 차분히 눌러 덮는다.
▲무우김짠지=늦은 봄에서 여름까지 억을 수 있어 좋다. CUR시 왜 무우가 좋은데 뽑은 즉시 깨끗이 씻어 끓는 소금물을 무우청쪽으로 부어 파랗게 되면 건져 씻은 다음 호렴에 굴려 차곡차곡 한켜 담는다.
▲통무우김치= 물이 많고 연한 것을 중간정도의 갸름한 것으로 골라 만든다, 동치미를 담글 때도 마찬가지. 이 김치독은 바람이 잘 통하고 서늘한 곳에 두어야 한다.
▲동치미= 서울 무우의 일종인「느르백」이 재료에 좋다. 일찍 먹을 동치미와 늦게 먹을 동치미로 나누어 담되 잘고 몸매가 단단한 것을 고르면 좋다.
배추김장▲배추 통김치=속이 잘 찬 배추를 반으로 갈라 흙에 속이 묻지 않도록 깨끗이 다듬는다. 특히 조기 젓을 살 때는 비늘을 잘 벗기고 내장을 꺼낸 다음 물기 없게 얇게 저며 쓴다.
▲장아찌김치=황새기 젓을 쓰면 좋다. 무우말랭이를 물에 불려 씻어 건져 물기를 없애고 황새기 젓에 마늘, 파, 생강 다진 것과 고춧가루를 버무려 배추3에 무우 2씩 한데 포기를 만든다.
▲배추깍두기=배추를 소금에 절여 간기를 쭉 뺀 다음 진한 조선간장에 고춧가루를 넉넉히 넣고 갖은 양념을 만들어 배추의 사이사이에 착착 발라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는다.<<글 김석성 사진 이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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