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이스라엘에 '장승공원' 조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국의 장승과 탈춤을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습니다."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 장승을 조각하고 있는 김종흥(金鍾興.49)씨. 그는 최근 이스라엘 홀론시로부터 장승으로 꾸며진 '한국공원'이 조성됐다는 연락을 받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金씨 자신이 지난해 2월 아들 주호(主鎬.25)씨와 함께 현지를 방문해 천하대장군 등 전통 장승 13개를 만들어 기증한 것이 공원조성에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스라엘 방문은 2001년 하회마을을 찾 은 홀론시 헤르츠만 부시장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장승의 멋에 반한 그가 金씨 부자를 홀론시의 축제에 초청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스라엘에 입국하기 위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한 뒤라 장승을 깎기 위한 끌 등을 갖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홀론시 주최의 행사장에 들어갈 때도 무장군인의 보안검색을 받아야 했다.

"현지에 도착하니 장승 제작용으로 4~5m 길이의 소나무 목재들이 준비돼 있더군요. 예상보다 뜨거운 관심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목재가 너무 말라 있어 깎는 데 무척 애를 먹었죠."

金씨 부자가 현지에 머무는 동안 시장이 매일 작업현장에 들러 관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이스라엘 조각가들도 작업을 거들며 장승에 관해 이것저것 물었다. 망치.끌.톱.장갑 등 도구들을 기증해 달라고 조를 정도로 현지인들의 장승에 대한 관심은 컸다.

한국공원의 건립은 아버지 金씨의 제안이 계기가 됐다.

"시내를 관광하다가 우연히 아기자기하게 조경된 일본공원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장승으로 한국공원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시 이를 시장에 요청했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대답을 들었죠."

지난달 문을 연 한국공원은 홀론시 입구에 장승 13개와 안동시 문양이 새겨진 석재기념비로 꾸며져 있다. 이스라엘에서 넷째로 큰 도시인 홀론시에서 金씨는 하회탈춤도 선보였다. 자신은 파계승 역을 맡고 안동대 민속학과에 다니는 아들 주호씨는 부네 역을 맡아 15분간 '파계승 마당'을 공연했다.

아버지와 함께 4년째 장승을 깎고 있는 주호씨는 "하회탈춤 전수는 물론 장차 하회마을에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민속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안동=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