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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의 새 주부 패트·닉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1913년 3월16일 미국「네바다」주「엘리」에서 애란계의 광업자인 「윌리엄·레이언」씨와 독일계의 이민인 그의 부인사이에서 태어난 「패트」는 부친이 광업을 포기하고「캘리포니아」의「아테시아」목장으로 이주함에 따라 거기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역경의 학창생활>
12살때 어머니를 잃고 17살때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그녀의 10대는 역경스러운 자립의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패트」는 혼자 「뉴요크」로가 「X레이」기사로 일을해서 돈을 모아가지고 남부「캘리포니아」대학 상학과에 입학했다. 영화에 「엑스트러」로도 출연하고 백화점 점원노릇도 하며 1937년 「캘리포니아」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휘티어」고교에서 4년간「타이핑」·속기·부기·상법등을 가르쳤다.

<데이트 첫날 구혼>
이때 「듀크」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려고 고향에 돌아온 「닉슨」과 만나게 되었던것이다.
「닉슨」은 「데이트」첫날밤 곧장「프로포즈」를했고 2년후인 1940년6윌21일 결혼식을 올렸다. 「패트」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하고있다.
『그는 바로 나를한번 보고는 연극구경을 데리고 갔고 그는 내옆에 검은 탑처럼 앉아있었다』고. 「닉슨」이 해군에 복무하는 동안에는 그에게 가까이 있기위하여 「오타와」와 오하이오」에서 은행원으로 일을했다. 「닉슨」이 제대를하면 주택을 마련하려고 많은 돈을 저축해놓기도 했었으나 그 대부분을 1946년 「닉슨」이 하원의원에 출마했을때 선거자금으로 쓰고 말았다.
「닉슨」의 출세는 기적일만큼 급상승이었다. 6년동안에 하원·상원·부통령에까지 당선 되었다. 그래서「패트」는 이름없는 가문의 출신자도 노력하면 출세할수있다는 미국의 꿈을 믿고있는지도 모른다. 그 꿈이 진실이라는것은 그의 남편 「닉슨」이 산증거다.

<정계은퇴 권유도>
한때는 자기의 남편의 정치야심이 그야말로 심혈을 기울일 가치가 있는것인가를 의아하면서 1952년정치자금에 곤란을 받을때 정계은퇴를 권유하기도 했었고 1962년엔 「캘리포니아」 주체사에 입후보하는것마저 찬동하지 않았었다.
그녀는『나는 그를 설득하려 하지않으며 모든 결정은 그자신이 하도록하고 일단 그가 결단을 내린것에는 힘껏 내조해주고 최선을 다해 보좌해준다』고한다.

<학교시설에 관심>
선거운동동안에는 피로할줄 모르는 자세로 언제나 남편의 모든 연설을 앉아서 경청하고 수많은 기자회견을 가지며 여가시간에는 서신 회답을 해주기도한다.
지난봄에는 발목을 삐어가지고도 「워싱턴」의 2천명부녀공학당원 집회에 참석하여 악수를 교환하기도했고, 백악관의 「퍼스트· 레이디」가 되면 범사에 어떤「퍼스트· 레이디」장을 남기고 싶으냐는 기자질문에는『대답하기 매우 곤란하군요. 하지만 백악관의 모든 「퍼스트· 레이디」들을 생각해본 일은 있어요』라고 말문을 닫았다. 특별히 관심을 갖는일은 학교시설 같은것을 저녁에는 지역사회에 이용하도록하고 싶다고. 자기의 기본자세는 남편이하고자 하는일을 도와주는것이라고 말하는 「패트」는 그러나 앞으로 할일이 많을것이며 바쁠것이라고 자신의 앞날을 말하기도했다. 자립성이 강한 불굴의 투지의 화신같기도한 그녀에게는 아마도 자기가 탄 비행기가「사하라」사막상공에서 「엔진」고장을 일으켜도 중요치 않으리라는 평이 어울릴지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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