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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치마저고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여름철이 되면 선생님의 청 모시치마를 생각합니다. 화학섬유가 눈부신 요즘도 그 까다로운 모시옷을 고집하십니까?』
내가 입은 한복에 대한 산문사의 원고청탁을 받고 원고지를 대하니 지난 여름 내게 보내온 제자의 편지사연이 귀에 떠오른다.
아닌게 아니라 나는 여름철이면 학교수업 시간에도 청모시 긴치마를 입고 교실을 들어서는 한복의 여교사였다.

<모시의 은은한 멋>
투명하되 그 질에 있어 환히 속살을 들춰내는 맞보기「나일론」등속과는 달리 아른아른 잠자리 날개 같은 원시의 그 은은한 얼비침과 서느러운 품이 좋아 나는 매일밤 저물도록 빨래 손질에 골몰하면서도 즐겨 모시옷을 입어야했다.
자락을 드리우면 넓게 퍼지는 치마폭의 여유! 살풋 감아 걷으면 서리서리 이랑을 짓는 긴치마의 정조! 어떠한 몸매도 탓하지 않고 감싸 어울리는 우리 옷을 입으면 나는 고도한 동양예술과 직결된 자아가 느껴지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겨울엔 주로 무명이나 모직 등속과 명주를 입는다.

<향토적 옷감 즐겨>
세탁손질에만 약간 정성 드리면 언제나 새것 같은 무명이나 모직을 시속 유행의 대열에서 비껴 서서 한 벌만 가져도 몇 해를 입을 수 있어 우선 경제적인 절약이 되고 나같이 크고 거칠기 농군 같은 손매에는 질박한 품질의 옷이 어울리기 때문이다.
섬섬옥수 분결같은 모습과는 인연이 먼 생김새에서 정신에 이르기까지 어디까지나 향토적으로 조직된 나의 성정에는 어수룩한 차림새와 향토적인 옷감이 마음 수월해서 좋다.
검정이나 감청 아니면 회색 계통의 옷을 즐기는데 날씨 풀리어 계절이 화창할땐 흰 옥양목 저고리만 하나 그 위에 받쳐입으면 그대로 봄치장이 되어 편리하기도 하다.
이렇게 늘 같은 옷만 입는 나의 차림새는 때로 공동취급을 당할 때도 있다.
몇 해전 일인데 내 생일선물로 딸아이가 고운 빛깔의 비단을 보내면서『엄마도 이젠 늙었으니 너무 검정색만 입지말고 밝고 가벼운 비단으로 입성을 바꾸도록 해주세요』란 편지를 곁들였기에 그 마음이 고마와 그 옷을 지어 입고 첫 나들이를 갔더니 K신보사 여기자인 J양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다는 소리가『아이고, 내일 아침은 해가 서쪽에서 돋겠네! 선생님 같은 여성은 50년에 꼭 한 분씩만 나야해요. 한분도 안나면 후손들이 한국을 잊어버릴 테고 많이 나면 직조기술에 방해가 될테니까』라고….
그러나 나는 한복의 여유 있는 정감을 떠날 수가 없다. 유리창 속에 진열된 골동품이 아닌 시골농가의 뚝배기의 자리에 놓일지라도 흐뭇한 관용의 그 자락에 감싸여 나를 지킬 수 밖에 없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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