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학생들은 반항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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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구의 학생들과 이야기해보면 마치 극장 무대뒤를 거닐어보는 것 같다. 위엄있고 견고한 건물과 제도들- 은행·정부청사·거대한 산업 궁전들-은 갑자기 모두 마치 조명과 뒤에는 아무것도 없는 지붕으로부터 내린 장막의 조화에 불과한 것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가구도 종이로 만들고 벽도 「베니어」판자에 불과한 느낌을 준다. 기성의 모든 권위와 제도에 도전하는 학생지도자들의 주장은 논쟁용어로 충만되고 그나름대로 조리는 정연하다. 독선적인 표현을 곧잘쓰는 학생지도자들은 나머지 학생들과 분리해서 생각하면 오해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일부 지도자들만이 가진 기발한 생각만을 뇌까리는 것이 아니고 다른 학생들에게도 자명한 생각들을 되풀이 주장하고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들에 의하면 학생들이 장차 참여할 기술·기술관료·정당·기업체들은 이들의 야망과 욕구와는 무관계라고 적대적 일 것이다.

<사리쫓는 교수들>
새로운 세대들이 왜 돌발적인 반발을 일으키는지를 설명하기는 쉽지않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에 대한 하나의 명백한 설명이 가능하다. 새세대는 「유럽」의 번영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돈에의 집착과 이념의 빈곤에 싫증을 느끼고있는 것이다. 전체 서구에서의 학생들의 불만의 첫 이유는 대학자체의 현실에 대한 것 이었다.
전후 당혹할이만큼 급격히 학생수가 증가한 상황에 직면한 서구제국교수들은 이런 사태를 무시하거나, 사익를 위해 악용할 뿐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학생수효가 30년간에 7배가 늘었났음에도 불구하고 교수수효는 겨우 3배로 증가되었을 뿐 이었다. 교수들은 구각에 안주하면서, 때로는 두개의 직업을 동시에 가지기도 하면서, 강의과정과 시험은 자신의 편의에 따르고 등사기로 인쇄한 강의내용을 대량생산, 사리에만 인용했다.

<항의는 가지가지>
7만명의 학생이 수용된 「로마」대학 같은데서는 교수와 직접 면담한번 못해본 학생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서구제국의 대학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충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항의에는 거의 언제나 대학문제에 국한되지 않은 광범한 내용의 항의가 섞여있었다. 학생들의 반란에 국제적인 열기를 부여하는것은 정치문제이다. 각국의 반란적인 학생운동을 초월한것은 무엇보다드 월남전이다. 그리고 모든 학생운동은 반미주의란 공통성을 지니고있다.

<국제주의로 채색>
당과 정권으로부터도 아무런 제약을 받지않은 극좌파의 운동은 하나의 특수한 국제주의로 채색되고「유럽」의 모든 학생운동엔 「마르크스」와 「트로츠키」또는 모택동의 말이 공통적으로 이용된다.
그러나 그들은 국경선을 페지하기보다는 사회개혁에 더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붕괴된 「부르좌」와 자본주의에 무엇을 대치하려하느냐고 질문받으면 대답을 피한다. 그리고 난동을 일으키는 그들도 몇번의 폭동으로 현존하는 산업조직과 관료조직 그리고 기술관료조직들이 붕괴되지않는다는 것만은 잘 알고있다.

<자치체제에 위협>
전쟁없이 23년간을 평화롭게 지낸 「유렵」에는 전쟁에 대체될만한 그 무엇이 그저 필요한 것같다.
학생들의 반란 (다른반란도 포함될수있음)뒤에는, 한편으로는 무정부상태로 해석될수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분권주의로 해석될수있는 하나의 오랜 문제가 있다. 「유렵」은 지금 「테크놀로지컬」한 제도를 이룩해가는 과정에 있다. 이「테크놀로지컬」한 제도는 아무리 좋은 것 일지라도 절대군주체제보다도 더 큰 위협으로 각국의 자치체제를 위협하고있다.
그러므로 만일 「유렵」인들이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 이 오랜 위협에 반대한다면 이는 놀라운 일 아닐것이며 만일 반대하지않는다면 훨씬 더 곤란해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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