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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전의 「르네상스」적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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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르네상스」또는 문예부흥이라고 일러온 인간의 재발견에의한 사상과 표현의 활발한 개척적 운동은 15세기 전후 이태리를 중심으로 구라파 사회에서만 있을 수 있었던 근대화 전야의 사상·문학·예술·종교의 운동일수없다.

<내일에의 지표>
어느나라 어떤시대를 막론하고 사회발전의 사상적새지표를모색하며 스스로 「거듭나기」를 기약하는 시대적 고민과 개화의새기운을뿜어내려는 움직임을 볼수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로 말하면 근세의 실학파의 대두가 민족의 역사를 돌아보며 자신의 위치를 새로 설정코자한 점에서는 「르네상스」적 기운을 많이 가졌었다고 할수있을것이다.
사실인즉 사회적 여건이 그때의 실학사상의 꽃을 피우기까지에 미치지 못했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는 외형적인 경제면에서 공업화에의한 사회의 근대화 작업이 억세게 추진되며 사회구조에도 커다란 근대적 변혁이 약속되고있는 때이다. 사상과 학예의 정신문화면에서도 「르네상스」의 「거듭나기」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어야 할것이다. 아니 이미 그러한 학예부흥운동은 일어나 있고 그 기운은 날로 팽창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것이다.
방금 개최중인 제17회 국전을 돌아보고나서 이 국전이란 것이 우리나라 학예부흥의 새 기운의 어떤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가, 꼭 그런것이 기대되어야 할 것아닌가 하는것을 생각해보았다.
적어도 언어를 초월하여 우리의 정서와 사색과 비판의 움직임을 그림으로써 표현코자 하는 이 기성·신진의 미술가들의 선발된 자리가 국전이라고할때 이는 오늘 우리가 가진 정신문화의 창조적 자산의 중요한 일면이며 또 내일의 방향을 약속하는 지표의 어떤 것이 될수있으리라고 기대할수 있을것이다.

<개성을 살려라>
그러나 유감되게도 전시회장을 보고나서 느낀것은 별반 새롭다든가 생기가뛰는 분위기를 느낄수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일반 출품작품이나 특선작에서 이렇다할 뛰어난 작품을 발견키 힘들었다기 보다도 전람회장의 중요한 자리를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추천작이니 심사위원의 작품의 약반수 혹은 그이상이 거의 보잘것없는 진부하고 무성의한 수준이하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라고 할것이다.
적어도 전년 혹은 수년래로 특선작의 영예를 가졌거나 또 심사위원이라는 명예와 권위를 가진 작가라면 「국전」이라는 미술전시의 국가적 잔치에 지도적 지위에 서는것이고 따라서 많은 청소년학도와 후진작가들을 위한 선구적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미술운동이라고할까 혹은 그사조라고 할까하는것의 현대적 경향을 떠나서는 화단이라든가 국전이라든가하는 것이 있을수없을것이다. 현대의 미술이라고 하면 옛날 귀족의 「살롱」혹은 양반의 사랑방의 이야깃거리나 취미, 또는 애완의 경지를 떠나서 어딘가 시대의감정을 말할수 있는 사상적·비판적 관점과 표현의 기초를 찾고자하는 무엇을 가지고 다수에게 호소코자하는 무엇을 가져야할 것이다. 산수화라고해도 단순히 있는 그대로 기계적으로 찍어내는 사진이 될수없다는 점에서 시대의 감정과 흐름을 대중과 더블어 나눌수도 있는 것이 되지아니할까한다. 또 그림에는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엇을 그렸느냐하는 화제(畵題)가 작가의 견식과 그림의 무게를 말해준다. 그런데 모처럼 무심사의 특권적 지위에있는 작가들의 작품중에 말도 글도 아닌 제목이 붙은 것이 수두룩하다. 외마디의 추상적인 한문자 한자로 무엇을 뜻한다는것인가. 이런것은 동양화에서 더많이 볼수있었다. 동양화부에서는 젊은 특권층보다도 몇몇 노인층에서 근엄하고도 정성스러운 작품을 내놓은데 경의를 표해 마땅하다고 본다.
이번 국전의 특선·입상작에 논란이 많았다. 적어도 창작을 전체로 하는이상, 우연한 일치라고 하더라도 이름있는 역사적 작가의 작품과 별로 다를 것 없다는 평을 받아야할것이었다는것은 국전의 수치가 아닐수없다.
그러한 예로는 동양화의 입상작 「육월(육월)」은 「반·고호」의 「보리밭위에 나는 종달새」의 그것과 구도가 별다름이 없고, 또 대통령상을 받은 한글의 서예는 만일 그폭에 서명만 없다면 정녕모씨의 것이 아니냐고 할것이다.
글씨는 아무리 스승의 서체나 필법을 배운다고해도 배우는 사람자신의 개성을 살린 자기필법인 것이라야 한다는것이 서도의 상식이 아닌가한다. 서예부문의 입상자중에는 심사위원의 체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몇몇 보이는 것이 연래의 관례처럼되어 있음은 우리나라 서예의 발전을 위하여 유감된 일이라고할것이다.

<유산부터 소화>
그러면 국전에 생기가 약동케 되고 그수준을 높일수있는 길은 무엇이겠느냐? 이것은 어떤 방안에 있다기보다도 오늘의 우리 화단의 실력의 문제라고도 할 것이다.
그러나 주최자인 정부당로자들의 지혜와 심사위원되는분들 내지는 국전에서 중진급 자리를잡고있는 추천작가인 무심사 출품작가들의 각별한 노력이 있어야할것이다. 그리고 국전의나아갈방향은 전통적 「아카데미시즘」을 존중할 것과 동시에 창작의새로운방향에대하여 관대하고 개방적이어야할것이다.
대개 창작적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예술가의 생명을 가지려는 작가에게는 어떤 손끝의 재질이나 영리한 노력에 앞서서 창작의 「아이디어」를 가져야할것이고 그 「아이디어」를 위해서는 예술가로서 갖추어야할 교양중에는 현대미술의 조류의 밑바닥에 흐르고있는 시대의 감정과 사상의 움직임에 대한 탐색이 없어서는 안될 것이다. 현대회화나 시·음악·문학등 예술운동 일반속에는 현대의 불안과 불만의 부정에서 긍정을 찾으려는 문명비판의 철학을 말하려는데까지 이르고 있음을 볼수있는 것이다. 「아이디어」의 날개는 제약없는 세계로, 특히 언어의 세계를 초월한 음악이나 조형의 표현에는 그 「모티브」가 자유자재함을 본다.
그러나 어떤 창작에도 작가의 창작적 「아이디어」나 그표현에는 그가 타고난 풍토적·문화적배경을 아주 이탈할수없다는것이 일반적 관찰인듯하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자기에 충실하여 자기를 낳아 북돋고 길러준 자기문화의 역사적 유산의 소화없이 그 자신과 그문화에 대한 재발견이나 창작의 개성적발전을 기약키는 힘들 것이다. 지금 구라파의 화단에서 한국작가에게 기대한다면 한국의 풍토와 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한 개성적인 새로운 관찰과 해석은 무엇이냐 하는것이다.
「르네상스」운동이 인간의 자기발견과 비판적 이성의 발판을 세우기까지에는 고전의 부활이 절대 필요했던 만큼 우리에게도 문화유산과 고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깊어야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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