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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김양건 보내라" 북 "국장급으로" … 한밤까지 힘겨루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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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장관급회담을 위한 실무접촉 우리 측 수석대표인 천해성 통일부 통일정책실장(오른쪽)과 북측 단장인 김성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이 9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양측 대표는 12일 남북 장관급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사진 통일부]

2년4개월 만에 회담 테이블에 앉은 남북은 10일 오전까지 힘겨루기를 벌였다. 양측은 9일부터 자정을 넘겨가며 회담 대표 3명이 각각 참석하는 전체회의 두 번과 수석대표 접촉 여섯 번 이상을 하며 마라톤회의를 계속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12일 장관급회담을 열자는 기본적인 합의가 돼 있었던 만큼 최종 합의에 이를 때까지 의견조율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목표일이 정해진 만큼 ‘끝장 회담’을 했다는 얘기다.

 이날 오전에 개성공단 정상화,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을 서울 장관급회담 의제에 넣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회담 일정을 합의하는 것도 순조로웠다.

 장관급회담 기간은 기존 3~4일보다 줄어든 1박2일이다. 12일 하루로는 협의가 부족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12일 하루로는 부족하다는 우리 측 제안을 북한이 수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 대표단의 격이 문제였다. 우리 측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대표로 요구했다고 한다. 책임 있는 인사가 나와야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지금까지 북한 대표가 우리보다 급이 아래였다는 관례를 깨야 한다는 청와대의 확고한 입장도 작용했다는 말이 나온다.

 반면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을 대표로 하겠다고 버텼다고 한다. 통일부 발간 인명록엔 강지영이 국장으로 돼 있지만 최근 북한 통전부에 대대적인 인사가 있어 교체됐을 가능성이 있다. 통전부 부부장을 맡고 있는 원동연이나 맹경일이 맡고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들은 모두 오랜 기간 남북회담에 참여해 왔다.

 회담 의제로 북한 핵 문제와 6·15공동선언 기념행사를 포함하는 것도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얘기가 있다.

 양측은 이날 오전엔 전체회의를 하다가 오후 2시부터 천해성 통일부 정책실장과 북측 김성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장 사이의 수석대표 접촉으로 회담 형태를 전환하면서 돌파구를 마련해 나가려 했다. 이들은 서울과 평양에 수시로 상대 측의 입장을 전달하고 지침을 받아 조율에 나섰다. 1차 수석대표 접촉은 한 시간 정도 걸렸으나 이후 2차부터 6차까지는 수석대표 접촉이 각각 20분, 25분, 40분, 15분, 15분씩 줄어들었다. 반면 다음 번 수석대표 접촉까지 지침을 기다리는 간격은 길게는 두 시간, 보통 한 시간 이상씩 걸리면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만큼 서울과 평양도 서로의 제안을 놓고 급박하게 숙의를 거듭했다는 얘기다.

 통일부 당국자는 “우리 입장이 저쪽으로 오고 가고, 저쪽 입장이 또 오고 가는 회의였다”며 “일방이 던진 걸 덥석 받는 회의는 아니었다”고 전했다.

 ◆종전과 달라진 북한 협상 태도=28개월 전인 2011년 2월 남북 장성급회담을 위한 실무회담은 회담 이틀째 북한 측의 일방적인 퇴장으로 결렬됐었다. 북한 측이 당일 북한 대표단을 비난하는 우리 측의 언론보도 내용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북한은 이번 회담 과정에선 전례 없는 유연함을 보였다. 당국자 회담의 형식과 일정을 우리 측에 일임(6일 제안)한 것이나 통일부의 판문점 회담 개최 요구를 수용한 게 대표적이다. 최근까지 계속되어온 최고존엄(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모독 중단 요구나 6·15공동행사에 대한 우리 정부의 불허 방침에 대한 비난 강도도 낮췄다. 특히 라오스 탈북자들을 우리 측이 납치하려 했다던 기존 주장을 이날은 자제했다.

  남북회담 업무를 전담하다 최근 정년퇴임한 한 인사는 “어떤 이유에서건 당국 간 회담을 성사시키라는 김정은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용수·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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