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아수라의 전쟁, 시작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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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결승 1국>
○·이세돌 9단 ?●·구리 9단

제3보(29~40)=구리 9단은 균형 감각이 뛰어나 포석에 특히 능한 기사지요. 반면 이세돌 9단은 ‘파격(破格)’이라는 단어가 맨 먼저 떠오르는 변화무쌍한 기사입니다. 두 사람은 한·중 양국에서 전투 잘 하기로 소문났지만 한쪽은 균형을 잡는 쪽이고 다른 한쪽은 파괴하는 쪽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지요.

 지금 막 무서운 전투가 시작됐습니다. 이 판을 아수라의 전쟁터로 몰고 간 첫 장면인데요, 주변 배경이 좋은 백이 흑을 강경히 절단하자 구리도 29, 31의 최강수로 맞서고 있습니다. 백은 ‘참고도1’처럼 끊고 조여 바로잡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이건 안 되는 수네요. ‘참고도2’ 흑1, 3으로 축에 몰려 백이 대망하고 맙니다. 32는 그러므로 오직 이 한 수라 하겠습니다.

 한 발 늦춘 33이 구리가 준비해 둔 묘미 있는 변화구였습니다. ‘참고도3’ 흑1로 꽉 막는 것은 돌직구처럼 힘찬 맛은 있지만 백2, 4의 선수를 당하고 나면 흑 모양이 몹시 나빠집니다. 또 백은 A의 비상구를 확보했고 B의 급소도 자랑입니다. 박영훈 9단은 “흑이 시달릴 것이란 예감이 든다”고 말합니다.

 백도 34부터 삶을 찾아 나섭니다. 좁은 곳이라 옹색하고 피곤한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백은 사방에 원군이 있습니다. 살기만 하면 백을 포위한 외곽의 흑을 준엄하게 추궁할 수 있습니다. 그때를 기다리며 일단 머리를 숙이고 ‘두 집’ 확보에 전력을 다합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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