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탈북자 4명 5월 말 한국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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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을 탈출해 중국을 거쳐 라오스에 머무르던 탈북자 4명이 지난달 30일 입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라오스에 머물던 탈북 청소년(일명 꽃제비) 9명의 신병이 지난달 27일 북한 측에 넘어간 지 불과 사흘 만에 다른 탈북자 4명의 한국행이 이뤄진 것이다. 강제 북송된 9명과는 운명이 엇갈린 셈이다.

 대북 인권운동가 P씨는 7일 “라오스 당국의 협조에 따라 탈북자 4명이 여권과 비자를 발급받아 무사히 한국 땅을 밟았다”며 “4명의 탈북자 중에는 10대 청소년 한 명이 포함돼 있고, 중국에서 몇 년간 생활한 성인 여성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나머지 2명은 탈북한 지 3~4개월 되는 성인 남성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입국한 4명의 탈북자는 관계당국의 보호를 받으며 탈북 경위 등에 대해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P씨는 “라오스에서 체포된 탈북 청소년 9명이 북한 측에 신병이 인도된 지 불과 사흘 만에 라오스 정부가 탈북자 4명의 한국행을 허용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탈북자의 한국행을 물밑에서는 허용해온 라오스 정부의 탈북자 정책이 탈북 청소년 9명의 북송을 계기로 완전히 부정적으로 바뀌지는 않았다는 의미일 수 있다”고 풀이했다.

 이와 함께 또 다른 탈북자 18명이 4일 라오스 현지의 안전가옥에 머물다가 한국대사관과 대사관저로 이송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도 조만간 한국행이 성사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이들 18명의 탈북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따라 라오스 주재 한국대사관과 대사관저로 거처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3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탈북민들의 안위에 영향을 주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는 물론이고 이에 도움을 주는 모든 분이 책임감을 갖고 만전을 기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었다.

  북한 인권단체들은 “탈북민의 안전 보장을 위한 조치는 환영한다”면서도 “사건 발생 뒤 일주일이 지나 대통령이 질책한 뒤에야 대사관으로 이들을 호송한 건 면피성 행정”이라고 지적했다. 생명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정부가 진작부터 치외법권(治外法權) 지역인 대사관에 탈북민을 수용해 안전하게 보호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정부는 2008년 12월 대사관 뒤뜰에 탈북민 십수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가건물을 완성하고도 라오스 정부와의 외교적 마찰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다른 용도로 사용해 왔다고 한다.

김희태 북한인권개선모임 사무국장은 “정부가 대사관 내 임시가옥을 사용조차 하지 않으면서 대사관 밖에 수십 평대 안전가옥을 4곳이나 임대해온 건 예산낭비”라며 “라오스 정부뿐 아니라 교민들도 뻔히 알고 있는 안전가옥이 이제 와서 위험하다는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국장은 “강제 북송된 아이들과 함께 꽃제비 생활을 한 탈북 청소년과 이들의 탈출을 도운 선교사에 따르면 이들의 나이가 라오스 측에서 말한 14~18세가 맞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15~23세와는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박선영(전 자유선진당 국회의원) 물망초인권연구소 이사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강제 북송된 탈북 청소년 9명의 안전보장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유엔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장세정·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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