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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으로 물든 기흥호 … 물고기 죽고 파리떼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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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기흥저수지는 몇 년 전부터 수질이 급격히 악화됐다. 2008년 기흥저수지에서 시민들이 낚시하는 모습(왼쪽)과 녹조 현상으로 녹색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변한 지금의 기흥저수지(오른쪽). [용인 시민 박성봉씨, 윤호진 기자]

6일 오후 2시 경기도 기흥구 하갈동 기흥저수지.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넘은 이날 저수지는 온통 녹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원래의 파란 물빛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물과 뭍이 만나는 자리엔 물고기 여러 마리가 허연 배를 드러낸 채 죽어 있었다. 파리 떼가 윙윙대는 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혔다.

 이곳에서 17년째 낚시터를 운영해온 박성봉(65)씨는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붕어와 베스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젠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 저수지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박씨의 낚시터는 용인시의 수질관리 방침에 따라 올해 1월 초 문을 닫았다. 그는 하수종말처리장(기흥레스피아)을 가리키며 “8년 전 저 시설이 들어온 뒤로 저수지가 이렇게 됐다”고 주장했다. 저수지 주변에 조성돼 시민들의 안식처가 됐던 기흥호수공원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수년 전부터 끊어졌다.

 경기도 3대 저수지 중 하나인 기흥저수지가 죽음의 물로 변해가고 있다. 기흥호수로도 불리는 이 저수지는 1964년 여의도 면적의 6.23배 규모(유역 면적 52.3㎢)로 축조됐다. 이후 저수지는 오산천을 따라 남하하며 용인과 화성, 오산, 평택 등 4개 시에 농업용수를 공급해 왔고 지역주민들에겐 휴식처로서의 역할도 해 왔다.

 수질이 급격히 나빠진 건 2007년부터다. 녹조 현상과 함께 심한 악취가 발생해 주민들의 민원이 잇따랐다. 환경부의 수질 검사 결과, 지난해 기흥저수지 중심부의 화학적산소요구량(COD)은 1L당 11.1㎎이었다. 4급수인 농업용수 기준을 훨씬 초과한 수치였다.

 수질 관리를 맡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와 주민들은 기흥레스피아가 수질 악화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기흥 동백지구 등 신도시 건설로 인구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용인시는 이 하수처리장을 지은 뒤 2005년부터 민간업체에 운영을 맡겼다. 김이부 환경사업팀 차장은 “배출수의 수질 기준이 농업용수보다 낮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수처리장 배출수의 COD 법적 기준(40㎎/L 이하)은 농업용수 기준 의 5배, 질소와 인 기준은 20배다. 이에 맞춰 오수 처리를 해도 배출수가 흘러들어 저수지를 오염시킨다는 것이다. 여름 장마철이면 하수처리장을 거치지 않은 생활하수나 오수가 그대로 저수지에 흘러들어가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용인시는 하수처리장도 문제일 수 있지만 여름철 집중호우와 기상변화 등 불가항력적인 원인이 복합된 결과라는 입장이다.

용인시 상하수도사업소 관계자는 “녹조 현상이 나타났을 때는 저수지 수온이 대부분 섭씨 26도 이상이었다”며 “저수지 바닥에 준설토와 퇴적오염물 등이 쌓이면서 수심이 낮아진 것이 더 큰 원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용인시는 2011년 11월부터 저수지 수질 개선 사업에 467억원을 투입했다. 기흥저수지와 연결된 주요 하천의 생태 복원에도 2015년까지 748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하지만 이런 자구책만으로는 역부족이어서 기흥저수지를 중점관리호수로 지정해 국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게 용인시의 입장이다. 김학규 용인시장은 4일 평택·오산·화성시장 및 이 지역 국회의원 4명과 함께 기흥저수지 수질 개선을 위한 공동 결의문을 채택했다. 용인시 관계자는 “환경부가 중점관리호수로 지정하면 국비를 지원받아 수질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정부에 손을 벌리는 현상이 기흥저수지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용인=윤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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