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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온 일 동양사학자 <강산대교수> 내등준보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일본에 있어 한국인의 핏줄을 증언하는 일인노교수가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일본의 저명한 동양사학자인 그는 금년73세의 「나이또」씨 (내등준보). 4백여년전 임진왜란 때 한일양국간에 있어서의 귀화인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8월초서울에 도착했다. 강산대 명예교수로,「노트르담」청심여대에선 아직 강의를 맡고있다.
한국사연구에 평생을 바쳐오는 내등교수는 방한20일간 사학계인사와 접촉하는 한편 서울대·이대·장서각등 도서관을 편람하기에 바쁜 일정. 고령임에 비해 아직 정정한 모습으로 영남지방을 막 돌아봤다면서 강산중학의 한국인 옛 제자들이 돌봐줘서 수월한 여행이라고 말한다.
그가 이번 한국에서 얻고자하는 연구자료는 임진왜란 당시의 항왜-한국침략에 참여했다가 투항했거나 사로잡힌 일인들의 뒷 소식을 찾는 것이다.
『일본에 포로가 된 한국인에 관해서는 기록이 많고 또 그 후예를 지금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뜻밖에도 적다』 결국 관광밖에 안 됐다고 고심참담한 실토이다.
다행히 서울대도서관에서 귀화인에 관한 기록인 「향화록」을 찾아내 소득이 된 셈이라고. 또 일본기록에 나타나는 우리나라지명도확인, 일부 수정하게 됐다고 한다.
항왜가운데 정묘호란에 전공을 세워 당삼품벼슬에 이르렀던 모하당 김충선은 이미 알려져 있는 대표적 인물이다. 내등교수는 임난 후 한국에 잔류한 일인을 약8백명으로 추산하면서『더 차근히 알아보면 그들의 행적과 후손을 꽤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일본에 포로가 된 한국인은 2∼3만. 그 중 7천5백명은 송환했음이 밝혀졌고, 나머지는 일본각지에 정착했다.
귀화한 인의 다수는 노역부, 그 다음이 기술자로서 특히 도자기 장인이다. 그밖에 대지 학예자 미녀 등이 포함돼있는데 그들은 덕천가강시대 이후 일본문화의 부흥에 큰 공헌을 남겼다.
일본각지에 산재하는 도자기명산지는 그래서 한인도공에 의한 것이다. 명장심수관씨가 있던 묘대천은 오늘날까지 언어 풍속 성명에 이르기까지 한국 것을 유지해온 집단부락이다.
원래 고려사가 전공인 그는 한국사 전반에 걸친 한일간의 문화교류에 널리 연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는 일본의 상고시대부터 반도에서 많은 사람이 건너갔음을 시인하면서 최근의 일본사학계가 그 점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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