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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외쳐도 대답 없는 한국대사관 … 처음 아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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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탈북 청소년 9명의 북송 사태 이전에도 주 라오스 한국대사관 등이 탈북자 문제를 무성의하게 다뤄왔다는 폭로가 나왔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과 북한인권개선모임 김희태 사무국장은 3일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대사관의 탈북자 외면과 방치 사례’ 10건을 공개했다. 외교부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지만 북한인권활동가들은 현지 공관의 대응은 그간 ‘무관심’에 가까웠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음은 하 의원 등의 폭로 내용과 외교부의 해명.

 2006년 12월 19일 탈북자 7명이 라오스 한국대사관의 문을 두드렸다. 7명 중엔 12, 14세 자매도 포함돼 있었다. 당연히 대사관 문이 열릴 줄 알았으나 대사관 측 보안요원들이 여권 제시를 요구하며 진입을 거부해 천신만고 끝에 목적지에 온 탈북자들은 대사관 앞에서 걸음을 돌려야 했다. 다음날 김희태 국장이 가장 나이가 어린 두 자매를 자신의 딸이라고 속여 대사관에 들어갔다.

그러나 재외국민담당영사가 “탈북 소녀들을 데리고 나가라”고 요구했다. 영사와 40여 분간 실랑이 끝에 자매를 겨우 남겨 두고 나왔으나 자매의 어머니를 포함해 다른 탈북자들은 대사관이 받아주지 않았다. 대사관 측은 자매를 라오스에서 한국으로 바로 보내지 않고 브로커를 통해 태국으로 밀입국시켰다. 이에 외교부는 “공식 경로로 탈북자 이송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안내인이 이슈화할 경우 한국행이 어려워질 수 있어 비공식적 방법으로 이송을 모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국 보내준다더니 중국에 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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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9일. 중국을 통해 탈출한 탈북 여성 2명이 라오스 한국대사관에 도착했다. 휴일이라 문이 닫혀 있었지만 생사가 달린 일이기에 대사관에 긴급연락을 취하며 담을 넘어 대사관에 진입했다. ‘이제 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대사관 내 보안요원이 이들을 끌어냈다. 탈북 여성들은 대사관 문을 붙잡고 버텼으나 보안요원들은 소총으로 무장한 라오스 공안을 불러와 쫓아냈다. 라오스 공안에 체포된 이들을 김 국장이 협상을 통해 빼냈으나 여성 2명은 대사관의 처우에 환멸을 느끼고 한국 대신 미국행을 택했다.

 2007년 5월 12일에는 북한군 장교의 딸인 김윤희(29)씨가 한국행을 위해 중국을 탈출해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을 찾았다. 한국대사관 측은 김씨에게 “베트남 직원의 안내를 받으라”고 했고, 베트남 직원은 김씨를 호텔로 안내하며 “한국으로 보내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다음날 그 직원은 김씨를 어디론가 안내하며 “저 산을 넘어가면 담당자가 보호해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씨가 도착한 곳은 중국 변방의 공안국이었다. 그는 바로 수감됐으나 화장실 환풍기 구멍을 통해 겨우 탈출했다. 김씨는 정부가 아닌 북한인권단체 등의 도움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외교부 측은 “김씨에 관해선 보관기록이 없다”고 했다.

도움 요청에 “정치적 이유로 개입 못해”

 2008년 12월 라오스 보텐 이민국에 억류돼 있던 김경희(당시 27세)씨가 현지 수용소에서 숨졌다. 다른 탈북자 부부 2명과 함께 탈북한 김씨에게 라오스 이민국은 “벌금 2500달러를 내지 않으면 중국으로 강제송환한다”고 통보했고, 이 과정에서 심신이 지친 김씨는 사망했다. 나머지 탈북자 부부도 북송을 두려워해 자살을 시도했으나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김 국장이 한국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자 대사관은 “라오스 정부와 정치적 문제로 탈북자 문제에 개입하지 못한다”는 입장만 전해왔다. 2006년 7월에도 라오스 우돔사이주에 탈북자 9명이 체포되었을 때 한국대사관 측은 “공식적으로 탈북자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며 도움 요청을 거부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대사관이 현지 경찰을 접촉하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해 두 사건 모두 탈북자를 한국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2006년 11월 19일 탈북 청소년 최향(14·여), 최혁(12) 남매와 최향미(17)양 등 3명이 라오스 수도에서 메콩강을 넘어 태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다 라오스 공안에 붙잡혔다. 2000년대 초반 식량난을 견디다 못해 탈북한 이들은 3200㎞ 대장정을 거쳐 라오스까지 왔다. 김 국장이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대사관은 묵묵부답이었다. 이들이 밀입국 죄로 억류돼 있던 5개월 동안 한국대사관 측에선 아무도 면담을 안 했다. 이듬해 4월 북한대사관에서 영사 등 3명이 먼저 이들을 면담한 뒤 북송을 하려 했다. 김 국장이 북송을 두려워하는 최씨 남매의 편지를 언론에 공개한 후에야 한국대사관이 움직여 한국행이 결정됐다. 그러나 외교부는 “언론 보도 전부터 외교당국이 인도 요청과 교섭을 진행해 왔다”고 주장했다.

라오스 경찰 “대사관서 석방 말라 요구”

 2006년 6월 김 국장은 라오스 경찰로부터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그는 라오스 북부 루앙남타 이민국에 수감됐던 탈북자 10명을 구해 수도로 이동하다 라오스 당국의 검문에 걸렸다. 탈북자 10명은 재차 수감됐다. 김 국장은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에 지원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한 뒤 직접 라오스 측에 항의하자 현지 경찰이 문서를 보여주며 “한국대사관의 영사가 석방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에 외교부 측은 “석방할 경우 북한이 납치할 우려가 있어 석방을 유보시킨 것”이라며 “교섭을 통해 추후 석방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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