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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76> 서울 2기 지하철 착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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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000년 3월 27일 서울 2기 지하철 궤도 완공식에 참석한 고건 서울시장(맨 오른쪽). 지난 1989년 그는 임명직 서울시장으로 일하며 5~8호선 2기 지하철 사업에 착수했다. 98년 민선 서울시장으로 돌아와 2기 지하철을 완공했다. [사진 고건 전 총리]

서울시민에게 지하철을 타라고 권장해 놓고 시장이 승용차만 타고 다닐 순 없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은 지하철이나 버스로 출근했다. 서울 혜화동 시장공관에서 걸어 나오면 4호선 한성대입구역이 나온다. 4호선을 타다가 동대문운동장역(지금의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시청역에서 내렸다.

 출근길은 험했다. 나를 알아보는 시민들과 인사하고 얘기를 나누는 여유는 지하철을 타기 전까지만이었다. 출근 시간 지하철 안은 전쟁터였다. 지하철이 역에 설 때마다 사람들이 밀려 들어오고 나가는데 시장이라고 피할 재간이 없었다. 나 역시 밀고 당기고 몸싸움에 시달렸다. 어느 날은 인파를 헤치고 시청역에 내렸더니 양복 윗옷 단추가 뜯겨나가고 없었다. 여중생이 지하철 안에서 질식해 기절했다는 얘기를 전해듣기도 했다.

 혼잡도 100%는 지하철 좌석이 다 차고 나머지 사람들이 손잡이 하나씩 잡고 서 있는, 전동차 정원에 딱 맞는 정도를 말한다. 현재 가장 복잡하다는 2호선 신도림역 근처 열차 안 혼잡도가 200%를 좀 넘는 수준이다. 1988년 지하철 혼잡도는 300%를 넘었다. 말 그대로 ‘지옥철’이었다. 해결책을 빨리 찾아야 했다.

 먼저 800량에도 못 미치는 서울시내 전동차 수를 약 2배인 1700량으로 늘리는 대책을 추진했다. 그런데 “예산도 별로 없지만, 있는 예산마저도 제대로 집행을 못하고 있다”는 실무자의 대답을 들었다. 입찰 가격을 올리려고 현대정공과 대우중공업 두 회사가 담합해 13차례나 유찰됐다고 했다. 제3의 회사인 대한조선공사를 입찰에 참여시켰다. 담합이 깨졌고 계획대로 전동차를 발주할 수 있었다.

해마다 단계적으로 전동차 수를 늘리기로 했지만 비상조치에 불과했다. 지하철 혼잡도는 줄긴 했지만 240~260% 수준이었다. 출·퇴근길 시민의 고통은 여전했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해마다 자동차 대수는 20%씩 늘어나는데 도로만 깔아서는 교통대란을 해결할 수 없었다. 지하철은 정시성(定時性)·안전성이 장점이다. 대량 수송이 가능하고 공해도 유발하지 않는다.

 1·2·3·4호선 1기 지하철에 이어 2기 지하철을 서둘러 건설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89년 나는 겁도 없이 5·6·7·8호선 2기 지하철 건설 사업을 착수하겠다고 선언했다.

 관건은 돈이었다. 지하철을 건설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확보해야 했다. 1기 지하철 국고 보조 비율은 2.7%로 미미했다. 그 정도 수준으로는 공사를 제대로 추진할 수 없었다. 90년 2월 서울시 자동차 등록대수가 100만 대를 넘어선 그 주 국무회의에서 서울시 기간 교통망 지도 2장을 들고 “중앙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90년 4월 2일 노태우 대통령, 강영훈 국무총리, 나, 안상영 부산시장과 관계 부처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대도시 교통 종합대책’ 합동 보고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지하철 공사비의 30%를 중앙정부 예산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이 정해졌다. 노 대통령의 결단이 있어 가능했다.

 그러나 집행 단계에서 다른 도시와 달리 서울시는 30%를 지원해줄 수 없다고 경제기획원이 발뺌했다. 나는 경제기획원을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며 설득을 했다. 결국 중앙정부가 2기 지하철 사업비의 25%를 지원하는 것으로 타협이 이뤄졌다.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일본 공적개발원조(ODA) 기금에서 차관을 도입해 사업비에 보태기도 했다.

 2년 만에 지하철 4개 노선을 선정, 설계하고 예산을 확보해서 착공까지 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전국에 흩어져 있는 지하철 건설 전문 기술자들을 모으는 일이 중요했다. 우명규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장의 수고가 컸다.

 2기 지하철 사업 규모는 총 연장 160㎞로 1기 지하철의 규모를 뛰어넘었다. 7년6개월여 만인 98년 민선 서울시장으로 돌아왔다. 2000년 6호선이 개통되며 8개 노선에 총 연장 287㎞의 서울 지하철이 완성됐다. 그해 12월 15일 지하철 6호선 개통식에 참석했다. 큰 보람을 느꼈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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