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재산 수천억 중 170억은 작은 비중" CJ 전 재무팀장 2심 무죄 판결 다시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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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피고인이 관리하던 CJ 그룹 이재현 회장의 차명재산이 수천억원대라는 본인 진술이 있었다. 여기에 비춰보면 170억원은 이 회장 차명재산 중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 없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 관리인이었던 이모(44) 전 CJ 재무2팀장의 2009년 항소심 판결문 내용 중 일부다. 이 회장의 비자금 규모가 처음 공개된 계기이기도 하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김창석·현 대법관)는 당시 이런 판단에 따라 이 회장의 돈 170억원을 지인 박모씨에게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해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로 기소된 이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또 살인교사 등의 혐의도 무죄로 판단했다.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구속돼 있던 이씨는 선고 직후 풀려났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하지만 최근 CJ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 진행 과정에서 이씨가 협박성 편지를 보낸 사실 등이 새로 드러나면서 이 판결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배임죄에 대한 1, 2심 재판부의 엇갈린 판단이 논란의 핵심이다.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부장 조한창)는 “이씨 후임자 진술에 따르면 재무팀장이 운용할 수 있는 자금 규모는 537억인데 170억원은 이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이 회장에게 보고도 없이 운용한 것은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위반한 배임 행위”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비자금 규모를 537억이 아닌 수천억원이라고 판단했다. 그중 170억원 정도는 이씨가 마음껏 움직일 수 있다고 봤다. 이에 대해 한 변호사는 “ 170억원은 엄청난 금액”이라며 “그 돈을 날린 것을 정상적인 경영 행위라고 판단한 셈”이라고 말했다.

 비자금 규모가 수천억원이라는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우며 수천억원이라고 볼 구체적 근거도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주심을 맡은 오모 판사는 이에 대해 “이씨의 진술 외에 따로 차명재산을 조사하지는 않았지만 주변 관계자 진술 등을 종합할 때 믿을 만한 주장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씨가 이 회장에게 A4 용지 10매 분량의 협박성 편지를 보낸 시점이 1심과 2심의 판단이 극적으로 엇갈릴 무렵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문은 증폭되고 있다. 이 편지를 접한 CJ 측이 이씨 구명에 적극 나서면서 국면 전환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것이다. 1심 때 개인 변호사 1명이었다가 2심 때는 대형 로펌 변호사, 상고심 때 이 로펌의 대법관 출신 대표 변호사까지 변호인단에 가세한 점도 눈길을 끈다.

 CJ 측은 “차명재산 세금만 1700억원을 납부했다”는 2심 판결 내용을 ‘5000억원대에 이른다’고 알려진 이 회장의 비자금 규모 축소에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CJ 관계자는 “1700억원 중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명예회장이 증여한 차명재산 관련 세금인 ‘명의신탁 의제 증여세’가 860억원(가산세 포함)”이라고 밝혔다. 세법을 적용해 이를 역산하면 비자금 규모는 1000억원 정도라는 주장이다.

 조세 전문 변호사는 “미납부 기간 동안 연 가산세만 11%씩, 미납세 규모가 30억원이 넘으면 가산세 50%가 더 붙는다”며 “860억원 중 절반 이상이 가산세라고 본다면 비자금이 1000억원 안팎일 수 있지만 명의신탁 시점에 따라 차명재산 규모는 불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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