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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원조 DJ' 이종환씨 떠났어도 사랑은 계속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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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1960년대. 아직 TV는 낯선 물건이었다. 급속히 보급되기 시작한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세상 물정을 전해주었다. 배터리가 라디오보다 더 컸다. 여자들 머리 묶는 가는 고무줄이나 아기 기저귀에 두르던 노란색 고무줄 따위로 배터리를 몸체에 단단히 고정했다. 킹스컵·메르데카컵 축구대회 중계 때는 온 가족이 라디오 곁에 모였다. 아나운서의 애국심 가득한 해설대로라면 분명 우리가 10대0쯤으로 이겨야 마땅한데, 왜 거꾸로 골을 먹고 패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부들은 ‘저 눈밭에 사슴이’ 같은 연속극이 시작되면 밥 타는 줄 몰랐다.

 스포츠 중계, 연속극 못지않게 인기를 끈 게 심야 음악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였다. 69년 3월 첫 전파를 탄 ‘별이 빛나는 밤에’의 가슴 설레게 하는 시그널 뮤직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진행자는 ‘별밤지기’로 불렸다. 서세원·이문세·이적·옥주현 등 거쳐 간 많은 별밤지기 중에서도 어제 76세로 별세한 이종환씨는 ‘원조 스타’ 격이었다.

 거리에서는 ‘음악다방’들이 다투어 DJ를 모셨다. 적어도 80년대까지는 DJ 전성시대였다. 다방 DJ들은 이종환 같은 ‘라디오 스타’의 멘트를 흉내 내고, 라디오에서 갓 소개된 음반을 얼른 구해 유행을 따라잡고자 했다. 고교를 갓 졸업한 젊은이들에게 다방 출입은 어른으로 인정받았다는 표시였다. 유리 칸막이 밑으로 신청곡 쪽지를 밀어넣어 DJ가 노래를 틀어주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노래 덕에 사랑도 싹트지만 여린 사랑은 쉬이 깨지곤 했다.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DJ / 잊었던 그 사람이 생각이 나요 DJ’(윤시내 ‘DJ에게’). 때로는 여자친구가 나보다 DJ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좋아하는 떡볶이는 제쳐두고 / 쳐다본 것은 쳐다본 것은 / 뮤직박스 안의 디제이라네’(DJ DOC ‘허리케인 박’).

 이종환씨의 타계. 한 시대가 저문 느낌이다. 90년대 초반 오디오 기기가 퍼지면서 음악다방은 점차 설 곳을 잃는다. 영상에 익숙한 세대가 등장하자 사정이 더 악화됐다. 요즘 DJ는 과거와 많이 다르다. 클럽문화를 타고 믹싱(mixing) 기술에 능한 뮤지션으로 진화했다. 클럽 DJ들의 디제잉(DJing)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이종환 시절의 아날로그 문화를 과연 이해할까. 그러나 시대가 달라도 사랑 같은 기본 감성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멀리 갈 것 없이 미스 에이(Miss A)의 2010년 발표곡 ‘그 음악을 틀어줘요 DJ’를 들어보라. ‘우리가 헤어질 때 듣던 / 그 노랠 틀어줘 / 나 혼자서 부르던 그 노랠 틀어줘…’. 한쪽은 틀지 말라, 한쪽은 틀어 달라 하고, 가락이 느리고 빠른 차이일 뿐, 28년 전 윤시내 노래와 내용이 같다. 삶은 그래서 재미있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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