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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고 넘어지며' 언론인 외길 52년 "가장 기억 남는 기사는 미담 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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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60~80년대 한국 정치사 한복판에서 뛰었던 심상기 회장. “회고록은 나의 삶을 반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격동의 시대를 재조명하기 위해 썼다”고 말했다. [사진 서울문화사]

심상기(77) 서울문화사 회장은 50년 넘게 언론인으로 외길을 걸었다.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4·19 혁명 직후인 1961년 경향신문 기자로 입사했다. 곧바로 5·16 쿠데타를 겪었다. 65년 중앙일보 정치부로 자리를 옮긴 뒤 3선 개헌, 7·4 남북공동성명, 10·26 사건, 5·18 광주민주화운동, 아웅산 테러 사건 같은 굵직한 현대사를 취재·보도했다. 심 회장은 “예민했던 시기라, 기사보단 취재수첩의 기록으로 간직한 게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고 지난 50년을 회상했다. 회고록 『뛰며 넘어지며』(나남)를 출간한 이유다. 심 회장을 25일 서울 한강로 서울문화사에서 만났다.

 - 언론인으로서의 삶을 되돌아보며 쓴 책 같다.

 “나 개인보다는 시대다. 내 기억을 더듬어 격동의 시대를 재조명하고 싶었다. 기록을 전달해야 한다는 소명감이 뒤늦게나마 되살아났는지도 모른다.”

 - 군사정권 시절 고초도 겪었는데.

 “72년,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방북 사실을 미리 알고 기사화하려다 중앙정보부로 연행됐다. 기밀 누설한 사람을 불라고 했다. 고문을 당해 고막이 찢어졌지만 ‘아무리 개 패듯 해도 절대 취재원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국회 주변에서 주워 들은 걸로 하고 이름은 밝히지 않기로 타협해 풀려났다.”

 - 그래도 편집국장 등 요직을 거쳤다. 성공가도를 달린 것 아닌가.

 “영광은 편집국장에 오르던 그날뿐이었던 것 같다. 7월에 기자들이 무더기로 해직됐다. 중앙일보·TBC에서 쫓겨난 기자도 30명이 넘었다. 11월엔 TBC를 뺏겼다. 참담했다. 이듬해엔 소설가 한수산씨가 연재소설 ‘욕망의 거리’로 곤욕을 치렀다. 소설에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다고 해 당시 문화부장, 출판부장 등이 보안사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한수산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극도의 정서 불안에 시달리다 88년 일본으로 떠났다. 그런 시기였다.”

 - 기억에 남는 기사가 많을 것 같다.

 “의외일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61년 경향신문에 쓴 ‘맨발의 배구팀’이란 미담 기사였다. 연습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시골 여자중학교 배구팀이 역경 끝에 우승을 차지한 기사였다. 체류 여비가 모자라 시상식 참석을 못한다는 얘기도 실었는데, 숙식을 제공하겠다는 독지가가 나서는 등 호응이 컸다. 기사쓰는 맛을 들인 계기였다.”

 - 53세에 창업하는 게 어렵지 않았나.

 “내 회사를 차리고 싶다는 건 오랜 꿈이었다. 88년 창간한 ‘우먼센스’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대박이 났다. 여세를 몰아 만화잡지인 ‘아이큐 점프’를 냈다. 본격적으로 시사성을 띤 뉴스매체를 내보고 싶었다. 시사 주간신문 ‘일요신문’과 ‘시사저널’을 인수한 것도 그 열망 때문이었다.”

 심 회장은 “ 건강이 허락된다면 언론인으로서의 길을 계속 걷고 싶다”고 했다. 출판기념회는 28일 오후 6시30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한영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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