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팠던 내 청춘에 대한 이야기 쓰기 위해 20년 넘게 기다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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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최영미

최영미(52)는 뜨거운 이름이다. 1994년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노골적인 성적 표현으로 운동권의 위선을 비판했다. 2005년 시집 『돼지들에게』에서도 특정인을 떠올릴 만한 언급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최근 내놓은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의 도발성도 여전했다.

운동권 커플의 폭력적 관계 다뤄

 그의 문제작 목록에 또 하나가 추가될 듯하다. 문예지 ‘문학의 오늘’ 여름호(6월 초 발간)에 연재를 시작하는 장편 ‘토닉 두세르’다. 80년대 운동권 커플의 폭력적 관계를 다룬다. 『돼지들에게』의 소설판 같다. 묘사가 세고 구체적이다.

 최씨는 지난달 『이미 뜨거운 것들』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소설은) 나의 20대를 소설로 쓰는 것”이라고 밝혔다. 자전적 이야기라는 인상을 주었다.

특히 소설의 여주인공 최진주는 시 ‘돼지들에게’를 연상시킨다. ‘언젠가 몹시 피곤한 오후,/돼지에게 진주를 준 적이 있다.//좋아라 날뛰며 그는 다른 돼지들에게 뛰어가/진주가 내 것이 되었다고 자랑했다’는 대목이다.

 최씨를 24일 전화로 만났다. 그는 “소설로 쓴 허구”라고 거듭 강조했다. “자전적으로 쓰려했는데, 소설이 안되더라.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섞여 있다. 허구를 세게 집어 넣었다”고 말했다. 또 80년대 후일담 문학도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80년대, 폭압적 정권에 앞장서 싸우지 못했던 ‘경계인의 초상’을 그렸을 뿐이라고 했다.

 “아팠던 청춘에 대한 이야기에요. 부제로 ‘싱그러우며 황폐했던 청춘’을 염두에 뒀죠. 역사를 바꾼 세대지만 개인으로서는 그런 젊음을 보낸 게 안쓰럽고 불쌍해서요. 개인의 내면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80년대에 갇히진 않을 것”

 소설 제목 ‘토닉 두세르’는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의 스킨 이름이다. 시대상황 때문에 자신의 탐미적 성향과 어울리지 않게 운동권 주변부를 맴도는 주인공을 은유한다. “동거남과의 어그러진 관계에 불안을 느끼는 주인공은 스킨을 바르며 불행을 덮어요. 혁명의 나라에서 온 화장품이 혁명에서 멀어진 자신을 숨기는 도피처로 쓰이는 거죠.”

 그는 이번 소설을 88년에 구상했으나 당시에는 뭔가 뜨거운 게 올라와 손을 대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2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내게 편지와 꽃을 보냈던 사람들, 나를 매질한 사람들을 잊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나는 80년대에 갇히고 싶지 않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는 과거라는 큰 터널을 통과해 나오는 듯했다.

 작품을 둘러싼 쉼 없는 논란에 대해 그는 “작가의 운명”이라고 답했다. “제가 굴곡진 삶을 산 건 사실이지만, 누구나 다 깊은 체험이 있습니다. 소설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죠. 개인의 기억이 집단의 기억보다 더 진실에 가깝다고 할까요. 이 소설이 우리의 이야기로 읽힐 수 있는 까닭입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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