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음식잡설] 소득수준과 따로 노는 음식점 위생수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이탈리아에서 유학할 때의 일이다. 한국인 관광객이 엄청나게 몰려왔는데, 그들이 먹는 게 참으로 형편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분들로서는 ‘특식’이라고 드시는 이탈리아 음식의 격이 너무 가망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대충대충 만들어서 팔아치우는 지저분한 싸구려 식당에 한국인들이 몰려왔다. 그러고는 투덜거리며 이탈리아 사람들은 절대 안 먹는 수준의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었다. 인상을 연신 찡그리면서 말이다. 그들은 처음 맛보는 본토의 이탈리아 음식이 원래 그런 줄 알고 깊게 실망했다. 그들이 돌아가서 할 말이 뻔했다. “이탈리아 음식, 정말 형편없더군.”

이런 말을 들은 이탈리아 정부에서 화가 났다. 무허가 관광가이드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음식은 알다시피 세계적으로 맛있는 음식으로 소문나지 않았던가. 그런데 유독 한국인 관광객만 왜 맛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는가. 이유를 잘 찾아보면 한 가지로 압축됐다. 여행상품 가격이 너무 싸다는 것이었다. 덤핑 가격에 인수한 관광객에게 질 좋은 음식을 먹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 여행을 치르는 관광객에게 이탈리아 음식은 못 먹을 음식, 지저분한 서비스의 식당과 사람들로 인식됐다. 그래도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약 3300만원) 하는 나라에서 치욕적인 일이었다. 이탈리아 당국이 칼을 빼든 게 당연했다.

요즘 한국에 숙박시설이 모자랄 만큼 외국인 관광객이 많다. 그런데 잠은 어찌하는지 몰라도 먹는 건 심각하다고 한다. 언론 고발 프로그램에서도 여러 번 다뤘지만 외국인 관광객, 특히 중국과 아시아의 저가 여행객을 맞는 단체식당의 위생과 맛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내가 아는 한 의사는 자기 병원에 한겨울 식중독 환자가 많은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제 우리 위생 수준은 적어도 한겨울 식중독은 별로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가 응급실에서 확인해 보니 대부분이 관광객이었다. 우리나라 어디선가 음식을 먹고 탈이 난 것이었다.

우리야 내성(?)이 생겨서 문제가 없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네들은 귀한 여행에서 경을 치고 말았다. 우리도 살 만큼 살지만 다른 분야의 발전과 달리 식당의 위생 수준은 전근대적이다. 그 내막을 살펴보면 자영업 증가에다가 영세한 식당의 영업부진, 이어지는 의욕감퇴가 결국 위생 수준을 높이지 못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위생이니 어쩌니 챙길 의지와 여력이 없는 까닭이다. 영세한 식당에는 교육받은 요리사가 진출하지도 않는다.

조선시대 노비의 공식 호칭인 ‘찬모(饌母)’라는 이름은 아직도 식당에서 ‘체계적인 레시피 없이’ 요리를 만드는 여성 노동자를 일컫는다. 그 찬모들은 내가 그들을 요리사라고 부르는 걸 의아하게 생각한다. “우리가 뭐 볼 게 있다고 요리사요?” 이런 반문을 한다. 요컨대 우리의 식당은 1인 국민소득 2만 달러(약 2200만원)를 좋이 하는 국가 경제사정과는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구청에서 지도 감독을 열심히 해도 살기에 지친 그들에게는 공염불이다. 아아, 참 밥하기 어렵고 얻어먹기도 힘든 세상이다.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chanilpark@naver.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