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 흉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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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마루에 앉아 신문을 읽다보니 밖이 몹시 소란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참으로 골목길을 내다보곤 그만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축대 바로 밑에 꼭 사각형의 선을 그어놓고 열댓명 가량 되는 동네 꼬마들이 모두 그 안에 들어서서 아우성을 치고 있는 것이다. 만원 「버스」 장난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고만 밀어요. 고만 밀어.』 『아유 사람 터지겠다. 야, 차장 그만 가자.』 「버스」(?)안의 꼬마 손님들은 서로 밀며 아우성이고 역시 꼬마인 차장은 뒤차 타고 오라고 선밖의 손님들을 밀어대고 운전사는 뿡뿡대고 이른 아침「버스」정류장의 풍경을 에누리없이 재연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의 기발한 창안인지는 모르지만 노는 아이들이나 보는 사람이나 재미있고 우스운 장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마음껏 웃고 난 다음 마음바닥에 깔리는 씁쓸함이 개운치 않다. 아이들의 순진한 장난에 일일이 무슨 교육적 의미를 붙일 것까지야 없겠지만 그러나 왜 우리는 아이들까지 좀더 중요하고 즐거운 흉내를 내게 해주지 못하는 걸까, 하루 빨리 경제가 안정되어 꼬마들의 장난 또한 더욱 밝고 풍요해졌으면 싶다. <김정은·21·교사·대전시 선화동1구95 이남규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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