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국사를 사회과목서 독립시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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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역사 문제로 온 나라가 다시 술렁이고 있다. 요 몇 년 동안 계속 되풀이되고 있는 현상이다. 역사 문제가 터질 때마다 국민과 여론은 '국사교육 강화'에서 돌파구를 찾았고, 집권자들은 이 카드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치솟는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히려 했다. 그러나 분노가 사그라지고 국민적 건망증이 역사 문제를 잠재울 때가 되면 '국사교육 강화'의 목소리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그런 틈을 타 사법시험과 행정.외무고시에서 국사시험을 제외시켜 이 나라 공직자가 국사를 제대로 몰라도 공직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터줬다. 한 편에서는 국사 교육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아우성치고 있는데, 그 소리를 정책에 담아야 할 정부는 정작 국사교육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어갔다.

근현대사가 선택교과 전락

국사교육발전위원회가 설치된 것은 지난해 10월이었다. 여론과 국회가 동북공정 등으로 정부를 압박한 결과였다. 정부로서는 국민 여론을 수렴해 국사교육 강화를 위한 가능한 방안을 찾아보려는 뜻에서 이 기구를 발족시켰다. 약 6개월 동안 열 차례의 모임과 1차에 걸친 공청회 등을 거친 뒤 지난달 29일 국사교육발전방안을 교육부총리에게 제출했다.

발전방안의 철학적 기초는 국사교육이 국어교육과 더불어 민족교육의 근간이라는 점이다. 한 나라의 정체성은 언어와 역사에 기초해 있다. 때문에 민족교육의 기초는 이들을 외면할 수 없다. 이런 철학적인 기초가 없으면 국사교육을 강화한다는 것이 곧 흔히 말하는 과목이기주의의 산물로밖에는 간주되지 않는다. 세계화를 지향하는 추세에서 본다면 국민교육의 바탕이 국어와 국사여야 한다는 생각이 편협한 민족주의, 더 나아가 국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비판받을지 모르겠지만, 누가 뭐래도 이것이 국민교육의 철학적 바탕이며 우선순위에 놓아야 할 국정지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를 잃었을 때 깨달았던 이 교훈은 나라가 회복됐을 때 더 강화시켜야 할 과제였으나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이런 전제를 가지고 보면 국사교육의 현주소는 말이 아니다. 국사과목이 국민교육의 기초과목으로 독립돼 있지 않고 사회과에 통합돼 있으며 수업시간 또한 부족하다. 고교 2~3학년의 선택과목 중심의 교육은 근현대사가 여느 선택교과목의 하나로 전락하도록 했고, 비전공 교사들은 국사교육의 질을 저하시켰다. 국사과목은 세계화를 지향하는 이 나라 공직자들에게 더 이상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탈민족주의'니 '국사 해체'니 하는 주장이 다양성이란 명분으로 자기공간을 확보해가면서 국사교육을 압박하고 있다.

역사교육 강화는 국민의 뜻

이런 상황에서 제출된 발전방안은 국사과목 강화를 위한 방안의 핵심이 역사교과를 사회과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는 데 있음을 권고했다.

역사교과의 독립은 국사와 세계사를 연계시켜 균형된 시각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현 시점에서 역사교과의 독립 없이는 국사교육 강화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측면에서 보면 국사교육 강화는 이중 삼중의 포위망이 처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사교육이 마치 특혜를 받아 과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비판하는 사회과 통합론자들의 주장은 지나치다. 발전방안은 국사의 수요 창출을 확대하는 방안에도 주목했다.

발전방안은 특출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언론이 주목하는 것도 그 내용 때문이 아니라 이 시기가 바로 거기에 주목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한국사 왜곡과 탈취가 횡행하는 시기에 이런 방안이 나와 안타까운 측면이 없지 않지만, 이런 기회를 이용해서라도 국사교육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더욱 환기되고 국민의 뜻을 받들어 명실상부하게 심화.발전시킬 수 있게 된다면 이런 것을 두고 전화위복이라 하지 않겠는가.

이만열 국사편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