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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알링턴 같다? … 아베, 또 억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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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일본 야스쿠니 신사(왼쪽)와 전쟁 희생자를 기리는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 내 원형극장(오른쪽). [중앙포토·블룸버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또 한번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비유하는 망언을 했다. 아베 총리는 19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민이 전사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장소인 알링턴 묘지를 생각해보라”며 “(남북전쟁 당시의) 남부군 장병이 안장됐다고 해서 알링턴에 가는 게 노예제도를 찬성하는 건 아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미 조지타운대학의 케빈 독 교수의 지적을 인용하는 형태였다. 알링턴과 마찬가지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위한 것으로 일본 지도자로선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아베의 이런 주장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9월 관방장관 재직 중에도 같은 논리를 폈다. 지난주 국회 답변에도 이 표현을 썼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자민당 정조회장도 툭하면 알링턴을 들먹인다. 이유가 있다. 일본의 우익 사령탑인 ‘일본회의’의 야스쿠니 참배 옹호논리가 바로 ‘야스쿠니=알링턴’이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논리다. 야스쿠니 문제에 정통한 도시샤(同志社)대학 신학부 고하라 가쓰히로(小原克博) 교수도 이날 본지의 취재에 “야스쿠니와 알링턴은 법적인 지위, 운영방식 등 여러 면에서 도저히 동렬에 놓고 논할 수 없는 곳”이라고 단언했다. 먼저 안장, 합사(合祀)돼 있는 이들의 ‘격’과 법적 지위가 다르다. 알링턴 묘지는 국립묘지다. 아무나 묻힐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심사기준이 엄격하다. 전쟁터에서 사망했거나 20년 이상의 군 경력이 있어야 한다. 군법회의에서 처벌된 자나 범죄를 저질러 사형에 처해진 이는 원천적으로 제외된다. 물론 전범은 있을 수 없다. 미국 내 약 130곳의 국립묘지 대부분은 국무부 관할이지만 알링턴만은 육군이 직접 철저히 관할한다. ‘가장 성스럽고 명예로운 장소’로 여겨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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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야스쿠니는 일본이 겪은 국내외 전쟁에서 사망한 약 246만 명의 ‘전쟁 혼’이 모셔져 있다. 하지만 그 대상자는 (1945년 이후) 일개 종교법인이 된 야스쿠니 신사 마음대로 정해 놓았다. 78년에는 아시아의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제2차 세계대전의 주동자격 A급 전범 14명까지 합사했다. 교수형자 7명, 재판 중 사망한 2명, 판결 후 옥사자 5명의 A급 전범을 버젓이 야스쿠니의 영혼으로 모시고 있다. 물론 법적 근거도 없다. 일 정부는 “전범을 단죄하고 전후 질서를 받아들인다”는 조건 아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2년)을 통해 국제사회에 복귀했다. 그런데도 A급 전범을 구국 전쟁의 순직자로 기리는 야스쿠니를 찾고, 국립묘지인 알링턴에 빗대고 있는 것이다.

 둘째, 알링턴은 자격요건을 충족해도 최종 선택은 개인 및 유족이 선택한다. 실제 퇴역 군인들이 이곳을 택하는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자신의 고향에 묻히길 원하기 때문이다. 또 알링턴은 모든 종교를 수용한다. 기독교·천주교·이슬람·불교 ·무교 등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묘석에 새기는 글도 개인이나 유족 마음이다. 정교분리의 원칙을 관철한다.

 반면 야스쿠니는 철저한 배척주의다. 이곳에는 2만1000명의 한국인이 강제로 합사돼 있다. 유가족들이 “야스쿠니 합사를 취소해 달라”고 소송까지 냈지만 야스쿠니는 철저히 거부하고 있다. “우리 판단에만 따르면 된다”는 주장이다. 타 종교를 배제한 신도 양식을 고집한다.

 “남부군 장병도 묻혀 있는 알링턴에 간다고 해서 노예제를 인정한다는 건 아니다=야스쿠니에 간다고 해서 A급 전범을 인정하는 건 아니다”라는 아베의 논리도 지나친 비약이란 지적이다. 고하라 교수는 “말 그대로 내전이었던 남북전쟁과 주변국들에 수많은 희생자와 고통을 안긴 태평양전쟁의 전범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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