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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 팔고 화장품 만들고… 건설사 생존 몸부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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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신안인스빌’이라는 아파트 브랜드로 잘 알려진 건설회사 신안의 박지훈 과장. 그는 요즘 화장품 관련 용어를 익히는 데 열심이다. 그간 화장품은 로션 정도밖에 몰랐던 그는 링클케어·비비크림·마스카라·컨실러 같은 생소한 용어들과 씨름하고 있다. 회사가 최근 화장품 사업에 진출하면서 건설뿐 아니라 화장품 홍보도 해야 해서다. 박 과장은 “대부분 용어가 외국어이고 화장품 종류도 워낙 많아 건설 용어보다 더 복잡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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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업체들이 요즘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혈안이다. 착 가라앉은 국내 건설·부동산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아 고사 위기에 몰리면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건설업계가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질’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주택·건설이라는 본업의 범위 내에서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했다. 주택사업에서 토목이나 플랜트 등으로 눈을 돌리거나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식이었다. 최근 추세는 업종에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장품은 물론 생수시장·유통업에 잇따라 진출하고 있다. 여기엔 주로 중견 건설업체들이 다른 분야 진입의 선두에 서 있다. 한국주택협회 김동수 실장은 “중견 건설사는 대형사와 달리 노하우와 자금력에서 해외시장으로 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국내에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안은 지난 2월 화장품 브랜드 ‘아름연’을 내놨다. 현재 기초화장품을 생산하고 있고 앞으로 색조화장품·보디용품 등도 만들 계획이다.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호텔과 골프장 내 매장에서 판매 중인데, 조만간 인터넷 쇼핑몰과 로드숍을 개장할 예정이다. 아름연 화장품 나기삼 팀장은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일본·중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매출을 올리고, 회사 소유의 호텔·골프장에 비치하는 화장품 비용도 줄일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아파트 브랜드 ‘한라비발디’의 한라건설은 생수사업으로 바쁘다.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데 건설업 고유의 굴착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에 착안해 강원도 평창의 지하수 개발에 나섰다. 2011년 말부터 준비해 현재 하루 1000t의 식수를 생산할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는 1.5L 물병 66만7000여 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한신공영은 2010년 식품회사를 설립, 농산물 제조·가공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건설업체들은 쇼핑몰 운영에 나서기도 한다. 계룡건설은 2010년부터 대전 가오동의 패션 아일랜드 쇼핑몰을 운영해 수익(판매수수료)을 얻고 있다. 호반건설도 지난달 문을 연 경기도 판교신도시 아브뉴프랑 쇼핑몰을 운영, 짭짤한 부수입(임대+판매수수료)을 올린다. 중견업체들에 이들 사업은 아직 전체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아도 ‘가뭄의 단비’쯤은 된다. 중견 건설업체 관계자는 “건설현장이 줄어들면서 남는 인력을 구조조정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인건비라도 벌 수 있는 사업이면 효자”라고 전했다.

 대형 건설업체도 ‘부업’에 눈을 돌린다. 지자체와 공동 개발하는 경우가 많아 주택사업보다 수익성이 낮아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산업단지 조성에 관심을 갖는 업체가 늘고 있다. GS건설은 충남 예산군에 예당일반산업단지를, 포스코건설은 청원군 옥산산업단지의 시공·분양을 맡았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이복남 연구위원은 “건설업계의 신분야 개척은 생존이 걸린 일”이라며 “앞으로 업종 간 경계를 두지 않는 ‘멀티 바람’이 더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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