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주차장, 상가 손님은 못 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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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상가 소유주와 아파트 주민 간에 주차장 분쟁을 겪고 있는 서울 행당동 D아파트 입구. 주차금지 푯말이 보인다. [김성룡 기자]

서울 행당동 D아파트 단지 내 상가 소유자인 상인 박모씨는 2011년 11월 이후 방문객들의 항의에 시달려야 했다. 상가 방문객들이 이용해왔던 아파트 단지 내 주차장 입구에 입주자대표회의가 주차 차단기를 설치하면서다. 차단기 옆에는 “상가 방문객은 주차할 수 없다”는 안내 푯말을 세워놨다. 이에 박씨 등 상인 14명이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주차방해금지 소송을 냈다. 1심인 서울동부지법 민사15부는 지난해 9월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아파트는 1999년 준공된 이후 입주동과 상가가 각각 관리사무소를 따로 두고 예산도 따로 사용해왔다”며 “아파트 주차장은 아파트 입주자들만을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주차공간”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항소심인 서울고법 민사24부(부장 김상준)는 최근 이 사건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20일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아파트 주차장이 상가 소유자들에게도 사용이 허가된 공용구역”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준공 후 12년 이상 차단시설 없이 상가 이용자들이 이용해왔던 점이 주요 근거였다. 또 아파트 전체의 가구당 주차 대수가 1.21대인데 상가 방문객이 이용하는 주차장이 속한 동은 1.86대로 주차장이 더 많은 점도 참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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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과 상가 소유자 사이에 주차공간을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로 주차장이 협소한 노후 아파트 단지나 상가 방문객이 많은 주상복합아파트 등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법무법인 로티스의 최광석 변호사는 “차가 1~2대에 불과한 입주자들보다 상가를 이용하는 방문자의 차량 수가 훨씬 많은 게 사실”이라며 “대개는 상가 주인이 입주자대표회의 쪽에 사용료를 지급하고 타협하는데 일부 아파트에선 법적 분쟁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런 ‘주차전쟁’에 대해 법원은 주차장을 따로 사용한다는 규약을 특별히 만들어 놓지 않았다면 상가도 아파트 주차장을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판결해왔다.

 대법원은 지난해 말 광주광역시 서구에 있는 H아파트 상가에서 화물운송업을 하는 김모씨가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낸 주차권존재확인 소송에서 이 같은 취지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상가 소유자는 별도 규약이 없는 한 공유지분 비율에 상관없이 대지의 일부인 주차장에 제한 없이 주정차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고 판단했다.

글=박민제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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