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進不求名, 退不避罪 [진불구명, 퇴불피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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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戰場)에서 최고 지휘관인 ‘장수(將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의 판단 하나하나에 따라 수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에는 모름지기 장수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구절이 여러 차례 나온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무릇 지형이라는 것은 용병 전술의 기본이다. 지형의 험난함과 평탄함을 계량하고, 적의 동태를 정확히 헤아려 승리를 만드는 게 바로 장수가 할 일이다. 이 도리를 알고 전쟁을 하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패장이 될 뿐이다. 따라서 전쟁의 이치상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판단되면 군주가 싸우지 말라고 해도 반드시 싸워야 하고(戰道必勝, 主曰無戰, 必戰可也), 전쟁의 이치상 이길 수 없다고 생각된다면 군주가 반드시 나가 싸우라고 해도 싸우지 않는 것이 옳은 일이다(戰道不勝, 主曰必戰, 無戰可也).”

변화무쌍한 전장에서 장수는 군주가 뭐라고 하든 현장의 판단에 따라 전세를 이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을 임명한 군주와 충돌할 수도 있다. ‘군주의 말을 들을 것인가, 아니면 현장 판단대로 할 것인가?’ 『손자병법』의 저자이자 전략가인 손무(孫武·BC535~?)는 이렇게 말한다.

“진격할 때는 명예를 추구하지 않으며, 퇴각할 때에는 죄를 피하지 말아야 한다(進不求名, 退不避罪). 오로지 백성을 보호하는 일만 생각하고, 이익이 군주에 합치되느냐 만을 따져야 한다(惟民是保, 利合於主).”

괜한 공명심으로 공격에 나서지 말라는 충고다. 또 도망쳤다고 죄를 받을지언정 퇴각해야 할 상황이라면 과감히 물러나야 하는 게 장수가 할 일이다. 중요한 것은 백성의 안위요, 행여 공이 있다면 그 공은 자신의 상관인 군주에게 돌려야 함을 말하고 있다. 장수의 결연함이 느껴지는 구절이다. 손무는 “그런 장수라야 나라의 보배다(國之寶也)”라고 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사건을 계기로 이 땅의 관리들을 돌이켜본다. 과연 공명심에 흔들리지 않고 옳은 일이라면 감옥에 갈 각오로 일을 처리할 만큼 곧은 관리가 있기나 한 것인가? 나라의 보배는 과연 없는 것인가?

한우덕 중국연구소장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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