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98명 제헌의원 뽑은 역사상 첫 민주 선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2013년은 휴전 60주년을 맞는 해다. 지난 60여 년은 흔히 ‘격동의 현대사’로 불린다. 미국 국립문서기록청(NARA)에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기록한 사진 10만 여장이 소장돼 있다. 사진 한 컷, 한 컷이 지난 세월을 증언한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태진)는 2001년부터 NARA 소장 사진을 꾸준히 조사해왔다, 조만간 전량을 수집할 계획이다. 중앙일보가 국사편찬위원회와 함께 ‘휴전 60주년… NARA 사진으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를 10회 연재한다. NARA 소장 한국 관련 문서가 더러 소개된 적이 있지만 NARA 사진들이 일반에 대거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1948년 5월 10일은 역사적인 날이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만 21세 이상의 남녀 모두가 1인 1표 투표권을 행사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정수로 하는 대한민국 헌법이 이날 선출된 198명의 대표들에 의해 탄생했다. 제헌국회는 200명 정원이었으나 4·3사건으로 제주도 선거결과가 무효로 되면서 두 자리가 비게 됐다.

 당시 유권자들은 처음으로 주어진 ‘국민의 권리’를 기꺼이 행사했다. 그런데 5·10 선거를 치르기까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도움이 적지 않았다.

5·10 선거에서 사실상 선거관리자 역할을 했던 주한미군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활동을 담은 사진들이 미국 국립문서기록청(NARA) 소장 사진에서 발견된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할 때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1948년 5·10 총선거 포스터.

 대한민국이라는 신생국가의 산파역을 했던 유엔은 자신들의 사무총장이 장차 이 작은 나라에서 배출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중국·호주·캐나다·엘살바도르·프랑스·인도·필리핀·시리아 8개국 대표로 구성됐다. 비록 소련 측의 거부로 입북이 거부돼 38선 이남에서만 선거가 시행됐지만, 주어진 조건에서 의미 있는 선거를 치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처음 치르는 선거인만치 선거운동과 관련한 명확한 한계가 없었다. 합동유세나 정당연설회는 물론 없었다. 선거공영제라는 관념 역시 아직 생겨나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하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5 대 1에 육박했던 입후보자들 간의 득표경쟁은 출발부터 치열했다. 선거운동에 대한 제한으로는 거의 유일했던 ‘공무원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후보 선전원으로 일찌감치 활동하던 반장들의 사퇴가 속출했다. 학교 운동장이 가장 인기 있는 유세장이었던 것은 지금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5·10 선거를 준비하던 주한미군정청이 좌익과 북한의 선거방해 캠페인에 맞서 내놓은 무기는 바로 높은 투표율이었다.

이미 1947년 6월 홍보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본국으로부터 홍보전문가들을 초빙하여 주한미군 산하에 특별기구(공보원)를 설치했다. 선거포스터와 팸플릿, 공중살포용 전단(삐라)과 신문, 주간지 그리고 영화와 라디오 방송 등 당시 활용 가능한 모든 미디어를 동원하여 5월 10일 실시될 역사적인 첫 번째 선거를 알렸다. 모든 콘텐트는 ‘투표를 어떻게 하는가’라는 주제에 집중됐다.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여러 가지로 미흡했던 선거였지만, 적어도 ‘투표 독려’에 있어서는 모범적인 선거로 꼽을 만했다.

 이날 선거는 12시간(오전 7시~오후 7시) 동안 전국 1만3272개 투표소에서 진행됐다. 주한 미국 정치고문은 선거당일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서 “선거 당일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서 18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2000만의 인구를 감안할 때 이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치였다”고 했다. 당시 신문들 역시 “좌익테러에도 불구하고 투표성적은 양호하다”고 자축했다. 마샬 미 국무장관은 5월 12일 특별성명을 내고 “처음으로 치러진 민주적 선거의 성공은 치하받아 마땅하다”며 한국 민주주의의 첫걸음을 축복했다.

 이렇게 선출된 제헌의원들은 5월 31일 국회를 개원했다. 이후 불과 두 달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헌법제정과 초대 대통령 선출 등 주요 ‘건국사업’을 마무리했다.

  고지훈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배영대 기자

※ 이 기사에 소개된 사진은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http://archive.history.go.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NARA=미국 국립문서기록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의 약칭. 19세기 말 이후 한국 관련 사진을 10만여 장 소장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2001년부터 국외 소재 한국사 자료를 수집해왔다. 이번 시리즈에 실리는 사진은 대부분 주한미군에 배속됐던 미육군통신대(Signal Corps) 사진부대가 찍은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