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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다섯언니의 목소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새벽 2시이건 3시이건 부산의「코드」만 연결되면 상냥스럽게 「레시버」를 통해 들어오던 다섯언니들의 고운 목소리를 이제는 다시 들을 수 없게 됐다. 서로 만나본 적은 없었지만 목소리만은 분명히 가려 낼 수 있었고 부드러운 목소리, 맑은 음색을 통해 어떻게 생긴 언니일까 하는 상상의 날개를 펴던 그 다정스런 목소리를 잃었다.
다섯언니들, 고이 잠드소서.
부산시외전신전화국에 불이 나던 그날, 누구인지는 모르나「레시버」를 통해서 『아래층에서 불이 난 것 같다』고 알려준 잠시 후에 부산과의 통화가 끊어졌다. 어떻게 됐을까? 모두들 안타까이 여기는 동안 「라디오·뉴스」에서 다섯 언니들이 목숨을 잃었고 43명이나 다쳤다는 안타까운 소식-. 그리고 하오엔 비명에 숨진 언니들의 이름이 신문에 못박혀있었다. 4층,5층 꼭대기에서 내리뛰다니 언니들 얼마나 괴로왔어요.
상냥하던 언니들의 아무런 잘못도 없이 죽어가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수동즉시통화가 되기 전, 급한 통화를 빨리 대라고 화통 같은 손님들의 벼락을 웃음으로 맞으면서 노할 줄 모르고「코드」와 .「레시버」를 오직 생활과 책임의 전부로 알던 언니들. 교환대에서 넘쳐나는 열로 찌는 듯이 덥고 겨울에는 손끝이 저리도록 시려오는 가운데서도 오직 책임완수를 위해 정력을 쏟았던 언니들….
불길을 피해 막힌5층에서 뛰어내리다 숨진 언니들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이젠 다시 들을 수조차 없게됐다. 밤새껏 전국의 도시와 가정을 연결해서 신경의 기능을 다하고 피곤해진 몸을 쉴새도 없이 타오르는 불더미 앞에서 물러날 비상구 하나 없어 마지막수단으로 이를 악물고 까마득한 저 아래로 오죽하면 뛰어내릴 생각을 했을까-I.
나는 5층에서 창을 내려다본다. 내려다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다시 한번 비상구를 돌아보게되고 못이 박히지 않았나 밀어본다.
꿈 많은 시절, 이제 꽃도 피고 우리들 가슴도 부풀어오르는 계절을 두고 간 언니들, 고이 잠드소서.
「코드」를 꽂으며 언니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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