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개성공단 고사 위기 두고 볼 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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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개성공단의 조업이 중단된 지 오늘로 40일째다. 이대로 가면 한두 달 새 설비 고장과 노후화로 공단의 물리적 기능 자체가 정지될 거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켜보는 입주기업들의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남북한 당국은 남은 불씨를 살리려는 진정성 있는 노력을 다하기보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핑퐁게임’이나 벌이고 있다. 남북의 기싸움에 밀려 개성공단이 고사(枯死)하는 사태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남북 교류와 협력의 마지막 상징이자 보루인 개성공단이 이 지경에 이른 근본적 책임은 물론 북측에 있다. 공단 운영과 무관한 이유를 들어 통신선을 끊고, 출입 통제와 근로자 전원 철수 조치를 취한 쪽은 북한이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박근혜정부의 의지를 떠보고, 입맛에 맞게 우리 정부를 길들이려는 정치적 의도로 개성공단 카드를 마구 흔들어대고 있다.

 우리 정부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 국민의 안전을 명분으로 내세우긴 했지만 이 기회에 북한의 버릇을 고쳐보겠다는 의욕이 앞서 성급하게 잔류 인력 전원을 철수시킨 측면이 있다. 마지막까지 남아 북측과 협상을 벌인 ‘최후의 7인’이 북한이 요구하는 대로 1300만 달러를 다 주고 서둘러 빠져나온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북한의 부당한 조치로 우리 기업들이 입게 된 막대한 피해를 근거로 밀고 당기며 협상의 끈을 이어가는 것이 제대로 된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였다. 정부는 원·부자재를 반출하고 시설을 관리하려는 기업인들의 방북을 위한 협상 용의를 북한이 밝힌 사실조차 그동안 숨겨 왔다. 그러니 정부의 진의가 뭐냐는 소리가 나온다.

 개성공단 재개를 위해서는 전략적이고 치밀한 대응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느닷없는 지시에 따라 주무 부처가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지금 방식으로는 안 된다. 긴밀한 협의와 사전조율을 거쳐 통일부 장관이 전면에 나서고, 대통령은 뒤로 빠져서 가급적 말을 아껴야 한다. 개성공단이 고사하는 사태는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북 당국은 명분에 치우친 기싸움을 그만두고, 정경분리 원칙에 입각해 공단 재개를 위한 협상에 즉각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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