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배명복 칼럼

대통령의 사람 보는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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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알고 보면 엉망인 사람이 부지기수다. 사람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연습하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제 눈에 안경이라고, 결국 보는 사람의 수준과 안목에 달린 문제다. 범인(凡人) 눈에는 범인만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람 보는 눈이 참사(慘事)를 불렀다. “어쩌다 내가 저 따위 인물에 꽂혀 그런 중책을 맡겼을까?” 지금 박 대통령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참담한 심경일 것이다. 이 정도로 비루하고, 뻔뻔하고, 비겁한 소인배일 줄은 차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분노와 배신감이 하늘을 찔러도 누구 탓을 하겠는가. 세평(世評)과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코 그를 발탁한 자신의 책임이고, 자업자득(自業自得)인 것을.

 모든 면에서 100% 완벽한 사람은 없다. 해서 단점보다 장점을 보고 쓰는 것이 용인(用人)의 기본이다.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제1호 인사(人事)로 그를 기용한 것도 단점을 덮고 남을 장점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박 대통령 눈에 콩깍지를 씌운 그 장점이 뭔지 모르고, 관심도 없지만 지난 며칠 동안 그가 보여준 상식 밖의 창조적 기행(奇行)은 박 대통령의 감식안(鑑識眼)에 문제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그는 청와대 대변인이란 중책을 맡은 고위공직자로서 당연히 갖춰야 할 최소한의 소명의식과 직업윤리도 보여주지 못했다. 인성과 판단력에도 치명적 문제를 드러냈다. “설마 그럴 줄 몰랐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입에 담기조차 싫은 이름 석 자를 가진 한 사람만의 문제라면 불운이나 악연 탓으로 돌리고 넘어갈 수 있다. 그게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통령 해외순방 중 대변인이 젊은 인턴과 술을 마시다 성 추문에 휘말려 현지 경찰의 조사를 받고 도망치듯 나 홀로 귀국하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태에도 청와대는 우왕좌왕할 뿐 제대로 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능력과 소신, 애국심과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대한민국 최고의 A급 인재들이 즐비해야 할 대통령 주변에 B급, C급 범재(凡才)들이 설치며 대통령 눈치나 살피고 있으니 당연한 노릇이다. 감각도, 능력도 없는 그들을 발탁한 사람도 대통령이다. 그러니 대통령의 감식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사람 보는 눈이 없더라도 필부필부(匹夫匹婦)의 문제라면 개인적 불행으로 끝날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큰 기업이나 조직의 문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총수의 사람 보는 눈이 기업이나 조직의 성패와 운명을 좌우한다. 국가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최고 지도자의 사람 보는 눈에 정권은 물론이고, 국가의 명운과 국민의 행복이 달려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가 가진 두뇌의 우열을 측정하려면 군주의 측근을 보면 된다”고 말했다. 통치권자에 대한 평가는 그 주위에 있는 인재들의 질과 양으로 결정된다.

 대통령 곁에는 다양한 인재가 필요하다. 지장(智將)과 덕장(德將)도 필요하고, 용장(勇將)과 책사(策士)도 필요하다. 누가 됐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 즉 ‘인테그리티(integrity)’를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치우치거나 모난 성격을 가진 사람은 안 된다. 성정이 야비하고, 눈빛이 탁한 사람도 피해야 한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이상 대통령이 다 알 순 없다. 그래서 중요한 게 평판이다. 범재의 일예일능(一藝一能)에 홀려 몰래 수첩에 적어 둔 인물을 발탁하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평판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다가는 이번처럼 오기와 불통 인사의 참사를 피하기 어렵다.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은 박 대통령의 롤모델이다. 대영제국의 기초를 닦은 여왕의 치세(治世)는 용인의 황금시대였다. “여왕의 궁전이야말로 세계의 축도(縮圖)다. 각 방면의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이처럼 나무랄 데 없이 모여든 곳을 따로 찾지 못할 것이다”고 당시 극작가였던 조지 채프먼은 칭송했다. 여왕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 학장들에게 매년 정치적 재능을 갖춘 학생들 명단을 제출케 하고, 직접 그들을 관리하고 양성했다.

 박 대통령은 어제 이번 사태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청와대의 공직기강과 위기관리 시스템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통령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이 바뀌어야 한다. 편견 없는 밝은 눈으로 사람을 보고, 주변의 말에 귀 기울인다면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인사권은 대통령의 최고 특권이다. 현자(賢者)와 능자(能者)를 쓸 수 있다는 자체가 위대성의 증거다. 큰 인물만이 큰 인물을 쓸 수 있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