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의혹 규명 주도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대북 송금 사건을 국회에서 해결하라고 한 발언 속에는 사실상 야당인 한나라당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4일 민주당 김원기(金元基) 고문은 최근 盧당선자과 만나서 한 대화내용을 공개하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金고문은 이날 아침 당 개혁특위 전체회의에 참석하기 전 기자들에게 "얼마 전에 盧당선자를 만났다"면서 "당선자가 이 문제를 국회에서 해결하라는 얘기는 야당이 (주도적으로) 해결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야당이 중요한 위치에 있으니 처리도 야당과 협의해서 하라는 게 당선자의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국회에서 대북 송금 사건을 풀겠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야당의 도움 없이는 이 문제를 풀 수 없음을 盧당선자가 인정했다는 얘기다.

金고문은 "당선자가 '야당으로선 조금도 오해하거나 그럴 일이 아닌데 언론 보도 등을 보면 그렇더라'고도 말했다"면서 "당선자의 생각을 감안할 때 야당의 입장에선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盧당선자는 이 사건에 대한 현 정부의 처리 방식에도 아쉬움을 나타냈다고 한다.

金고문은 "'이런 큰 문제를 야당과 진작 터놓고 대화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당선자가 얘기했다"며 "청와대가 좀 더 진솔하게 야당과 계속 얘기하고, 그런 정치를 했으면 이렇게 악화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盧당선자 측은 지난 2일 문희상 청와대비서실장 내정자가 대북 송금 사건에 대한 정치적 해결을 언급한 이후 철저한 사실 규명이라는 종전 입장에서 후퇴한 것이 아니냐는 여론의 비난에 직면해 있다.

이 와중에 김대중 대통령과 盧당선자의 교감설까지 터져나왔다. 한나라당은 이를 계기로 현 정부 뿐 아니라 당선자 측까지 공세의 표적으로 삼고 나섰다.

이 때문에 金고문이 이날 자청해 盧당선자와 만난 사실까지 공개하면서 이 사건에 대한 당선자의 의중을 전한 것은 상황이 당초 의도와 달리 전개되고 있다는 위기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때마침 盧당선자 진영에서도 金고문의 설명과 맥락이 같은 얘기들이 흘러나왔다.

文내정자는 한나라당이 특검법안을 내기로 한 데 대해 "여야 합의든 단독국회든 국회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라며 "특검이 안된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이 원하는 대로 한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며 "야당의 입장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정치적 해결'이란 발언에서 시작된 盧당선자 측의 대북 송금 사건 해법은 여론에 떠밀린 모양새로 야당인 한나라당에 주도권을 넘기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박승희 기자 <pmaster@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