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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 「중앙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완구점 여인|오정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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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태양이 마지막 자기의 빚을 거둬들이는 시각이었다. 어둠은 소리 없이 밀려와 창가를 적시고 있었다. 어둠이, 빛을 싸안고 안개처럼 자욱이 내려 덮일 매의 교실은 무덤 속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낡은 커튼으로 배어든 약한 빛 속에서 머무르던 갖가지 숨결과 대화는 어둠이 깃들이는 것과 동시에 죽어버리는 것이다. 소리를 지르면 그대로 터엉 울려올 듯 공허해 지는 것이다. 카로와 세로로 각각 여덟 개 씩의 책상들. 나는 갑자기 모든 것이 죽음처럼 사라져 가는 어두운 교실 안에서 그것들은 서서히 갈아나고 있음을 느낀다. 자로 잰 듯이 반듯하게 놓인 그들의 질서가 두려워진다. 정확하게 열려진 두개씩의 서랍들은 시커멓게 입을 벌려 어둠을 빨아들이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노려보면서 언제나처럼 진기한 보물이 가득 들어찬 동굴 속을 보는 듯한 기대와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이곳 교실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예순넷의 책상들이 모두 나의 차지라는 사실이 가슴을 떨리게 한다. 이제 시작할까. 나는 소리를 대서 말해본다. 아무런 대꾸도 있을 리 없다. 다만 내가 뱉어놓은 여섯개의 낱말이 어둠 속에 먹혀 감을 느꼈을 뿐이다. 창가에 놓인 책장서랍부터 휘젓기 시작했다. 방석이 접히는 곳도. 필통이 집히는 곳도 있다. 필통을 일어 안의 것을 가방에 넣었다. 덧신이 집히는 곳도 있다. 산고 있던 덧신을 멀리 벗어 던지고 서랍 속의 덧신을 신었다. 조금 작은 듯했다. 뒤축을 꺾었다. 아직 새 것인 듯 빳빳한 감촉이 기분 좋았다. 코를 풀어버린 휴지만 가득한 곳도 있다. 도시락이 만져진다. 뚜껑을 열었다. 먹다 남긴 부분이 톱날처럼 선명하게 뵌다. 비릿한 냄새와 달짝지근한 맛이 구토를 일으킬 듯 했다. 밥도 더럽게는 먹었군. 중얼거려 본다. 그리고 귀를 기울였다. 몇 개의 동굴 속을 거쳐오듯 공허한 나의 목소리는 전혀 타인의 음성으로 들렸다. 나는 갑자기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 버린 어두운 교실에서 눈뜨는 나의 세계와 저녁마다의 이러한 작업으로 나는 오똑이를 사 모은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그 장난감 가게의 두 다리를 못쓰는 여인의 이야기를 하고 실었다. 유리창이 덜컹거렸다.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손에 집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조바심이 났다. 그리고 지루해졌다. 허나 아직도 다섯줄이나 남아있는 책상들을 그대로 두고 갈 수는 없다.
다음 책상으로 손을 넣으려다 나는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복도로 슬리퍼 끄는 소리가 요란했다. 서너명은 될 것이다. 어제도 그제도 그들은 항상 떠들며 지나갔다. 한번도 대가 있는 교실 문을 열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견딜 수 없이 심장이 뛰었고, 갑자기 그들이 문을 얼어 젖히며 내 이름을 부를 것 같은, 또한 그들은 모든 것을 낱낱이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체 하고 그맘때만 소리를 내며 지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했다. 문득 나는 어둠 속에서 살피고 있는 날카로운 두 눈을 느꼈다. 누가 있니? 오히려 대답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는 말했다. 이런 따위의 공포는 견딜 수 없다. 물론 대답은 없었다. 다시 서랍들을 뒤졌다.
문득 긴장을 느꼈다. 매끄럽고 납작하게 만져지는 것은 지갑일 것이다. 나의 손은 서랍 속에서 잠시망설이고 있었다. 분명히 지갑이라고 생각한 경우에도 안경집이라든가 전차표 두어장 정도 들어있는 비닐지갑이어서 실망한 때도 여러 번이었다. 다시 그 것을 더듬어 안경집도 아니고 빈 비닐지갑도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야 꺼냈다. 자크를 열자 동전이 우르르 쏟아졌다. 동전이 마룻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끊임없이 울리고 있는 듯 생각되었다. 다시 다른 책상으로 옮겼다. 이마에는 진득한 땀이 만져졌다. 서랍 속에서 나의 손은 거의 기대도 없이 허 등거리고 있었다. 아까의 지갑에 이미 만족해버려 그것에 몰두하고 있었다. 교실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잉크병과 그밖에 잡다한 물건들로 채워진 가방이 한결 묵직했다.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검게 번들거리는 거울 면에 나의 몸이 비쳐있고 본 뒤로 가직하게 교실전체가 담겨있었다. 내 손이 한번씩 거쳐간 책상들은 완전히 먼저의 질서를 잃고 있었다. 나는 꽤 오래 거울 속의 교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창문이 몹시 덜컹거렸다. 거울 앞을 떠나 복도로 나왔다.
인조 대리석의 복도는 구석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으로 번들거렸다. 하늘이 새카맣다. 불빛에 검게 아른거리는 복도는 먼지 한 알 없이 청결해 보여서 위축감을 느꼈다. 무거운 가방을 멀찌감치 동댕이치고 그 위에서 뒹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뻣뻣한 스커트를 허리께 까지 훌쩍 걷어올리고 그대로 선 채 오줌을 누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침을 뱉었다. 입안에서는 끈적한 타액이 자꾸 괴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자꾸 뱉어냈다. 타액이 인조 대리석에 달라붙는 소리가 묘하게도 일정하다. 가득한 침이 마르자 입에서는 냄새가 나는 듯 했다. 며칠이고 양치질을 안한 채 낮잠을 자고 난 여름날 문득 느끼는 냄새였다. 이어서 귀에서도 소리가나고 있었다. 목줄을 타고 올라가서 지잉지잉 울리고 나는 자꾸 오른쪽 귀가 비대해져 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의 확대된 귀에 유리창이 덜컹거리는 소리는 큰크리트 교사 전체가 술렁술렁 흔들리고 마침내는 우룽우룽 울부짖고 있는 듯 들렸다. 나는 한 손으로 오른쪽 귀를 감싸쥐고 입을 벌려 숨을 내쉬며 가만히 서 있었다. 숨이 가빠왔다. 허나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구역질이 날듯해서 입안의 냄새는 도저히 들여마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리는 비에 젖어 후둑후둑 흐느끼고 있었다. 불빛이 환한 완구점 진열장에는 빨간 플라스틱 오똑이들이 밖을 향해 서있었다. 그리고 휠체어에 앉은 여인은 말끔히 씻긴 듯한 표정으로 빗물이 뿌려지는 거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햇빛이 밝은 날의 그녀의 모습은 파괴한 느낌을 주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청결감 마저 풍기고 있었다. 갖가지 장난감들이 빈틈없이 채워진 가게 안에서 여인은 한 개의 커다란 인형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인은 언제부터인가 입기 시작한 앞이 막힌 잿빛 스웨터를 업었고 그녀의 아주 빈약한 가슴이 나타나는 부분에는 모슬렘 여인이 새겨진 펜던트를 강물처럼 붙이고 있었다. 대가 가방으로 유리문을 밀치고 들어서면 여인은 무얼 찾으세요 라고 물을 것이다. 내가 이곳을 잣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어김없이 빨간 플라스틱 오똑이를 사갔다는 걸 알면서도. 아니. 그녀는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할 것이다. 레인코트를 입은 남자와 여자가 유리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여인은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물러났다. 나는 그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 심한 질투를 느꼈다. 여인이 빙긋이 웃었다. 그럴 때의 그녀는 열 일곱살이나 열 여덟살에서 이십년 쯤 거르고 갑자기 마흔살이 되어버린 듯한 얼굴이 되어 버린다. 여인이 갖는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는 나에게 이미 친숙한 것이었고 말할 수 없이 그리운 것이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몸이 부딪쳐왔다.
그들은 완구점 진열장 유리에 매달려 안을 들여다보는 나를 흘끔거리며 지나갔다. 나는 완구점 앞을 떠났다. 전류처럼 온몸을 들고있는 필투와 다시 스물스물 열려오는 관능에의 혐오를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비로소 목덜미에 와 닿는 차가운 빗방울을 의식했다. 조그만 사내애가 우산을 사라고. 외친다. 노란색을 골라 들었다. 비를 흠뻑 먹어 모폿 자락처럼 툭툭해진 스커트가 종아리를 스칠 적마다 닿는 부분이 쓰라렸다. 건너편의 약방을 발견하자 종아리가 참을 수 없이 아팠다. 어디에고 다리의 통증을 호소하고 싶다. 약방으로 들어가서 반창고를 샀다. 높다란 빌딩아래 비가 들이치지 않는 곳에서 스커트를 걷어올리고 넓적한 반창고를 종아리에 붙였다. 가뿐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무거워진 몸에 반창고를 더덕더덕 붙이고싶다. 그래서 봄의 마디마디에 가래처럼 걸찍하게 괸 혐오를 털어버리고 싶다. 완구점의 여인이 보고싶다.
내가 찾아갔던 그녀의 방, 자잘한 꽃무늬가 박힌 커튼과 창백한 불빛과 무엇보다도 여윈 그녀가 보고싶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찾아갈 수 없다. 그날 밤 어둠 속에서 감각한 그녀의 체온과 퉁텅 잘린 두 마리와 또 나의 행위는 한갓 춘화처럼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그날 나는 아주 우연히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 장바구니를 들고 길가 양장점 쇼윈도를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걷고 있었다. 어머니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저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곧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걸음이 무척 느렸다. 내가 등뒤까지 바짝 따라 걷고 있어도 전혀 모른 기색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곧 어머니와는 거리가 생겼다. 다시 바짝 붙어섰다. 그래도 어머니는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와의 넓혀졌다 좁혀졌다 하는 거리에 재미를 느꼈다. 길을 건넜다. 길 맞은편에서 어머니를 따라 걸었다.
어머니는 아이를 낳을 때가 가까운 모양이었다. 배가 한껏 부풀어 있었다. 눈 가장자리에 안경을 낀 듯 시커멓게 기미가 덮여 있었다. 그 것은 낯익은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어릴적 가정부에서부터 나의 어머니의 위치로 변한 후 끊임없이 아이를 낳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렇게 천천히 걷고 있으면서도 가끔 우두거니 서서 쉬다가 다시 걷곤 했다. 어머니가 그녀의 여섯살짜리 계집애를 끌고 짐을 나간지 몇 해가 되었을까. 삼년인지 사년인지 기억이 아리숭했다.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여전히 어머니는 아이 낳기를 계속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머니가 우뚝 섰다. 어머니의 머리 위에는 아르바이트·홀의 간판이 크게 붙어있었다. 어머니는 마침내 치맛자락을 감싸쥐고 화살표가 그려진 골목 안으로 늘어갔다. 나는 급히 필을 건넜다.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골목을 두어 번 더 꺾고서야 아르바이트·홀이 나타났다. 금방 만화 속에서 뛰쳐나온 듯한 차림을 한 소년이 앞을 가로막았다. 미성년자는 못 들어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느냐고 물으며 유심히 나를 보았다. 급히 찾을 사람이 있다고 대꾸했다. 소년은 난처한 듯 두 손을 벌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좋습니다. 그러한 그의 몸짓은 그의 차림새만큼이나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홀안은 무척 어두웠다. 아직 시간이 이른지 넓은 홀안에는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스럽고 간간이 수군거리는 음성들이 들렸다. 차츰 어둠이 눈에 익자 어머니는 이내 찾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어느새 선글라스를 쓰고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대형 선풍기는 쉬익 쉬익 바람소리를 그치지 않고, 그 바람은 어머니의 머리칼을 날렸다. 짧은 머리칼들이 곤두서고, 검은 안경을 쓴 어머니는 곡마단의 한 멤버처럼 보였다.
차츰 사람들이 들어찼다. 선풍기 바람이 이내 후덥지근하게 느껴졌다.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한군데로 몰렸다. 밴드가 연주를 시작했다. 꾸물꾸물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남자들은 여자들의 자리로 와서 손을 내밀었다. 무대 중앙에서 뚱뚱한 여자가 낮은 소리로 검온 상처의 블루스를 불렀다.
나는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는 아직 자리에 남아 있는 다른 여자들처럼 초조하게 춤을 추는 사람들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어깨로 가쁘게 숨을 쉬고 있었다. 배가 부른 것이 완연히 눈에 띄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연민을 느꼈다. 빨간 잠옷을 입고 아침마다 변소에서 한 시간쯤 보내던 여자. 나에게 당혹할이만큼 무관심을 가장하던 여자와는 전혀 이질적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가수는 여전히 마이크를 부여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흐느적흐느적 돌아갔다. 조명이 붉게. 푸르게 자주 바뀌었다.-
나는 꽤 오래 전에 어머니와 어머니의 아이들을 죽이기 위해 칼을 간다든가 집에 불을 지른다든가 하는 종류의 꿈을 매일 밤 꾸던 생각을 했다. 나를 항상 공포와 죄의식 속에 몰아넣는. 어머니의 은밀한 눈짓에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밤마다 나는 어머니를 죽이는 꿈을 꾸었던 것 같다. 마침내 쉰 듯한 노래 소리가 사라지고 한 곡이 끝났다.
춤을 추던 남자와 여자들은 허리를 굽히고 모두 헤어져서 자리로 돌아갔다. 손바닥에 밴 땀을 그대로 선 채 선풍기에 들이대고 말리기도 했다. 다시 음악이 시작되었다. 나는 초조해졌다. 어머니는 춤을 한번도 못 추어보고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나 어느새 어머니는 남자와 홈 중앙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남자는 어머니의 등뒤에 손을 돌려대고 있었다. 어머니의 빳빳한 나일론치마가 바람에 날렸다.
밴드는 푸른 다늄강을 연주하고 어머니는 이내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거북스럽게 부둥켜안고 있는 남자는 잘못 짚었군 하는 식의 후회를 할 것이다. 아기 태동이 남자에게 전달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남자는 흠칫 놀랄 것이다. 어서 곡이 끝나기를, 이 배가 부르고 검은 안경을 쓴 여자에게서 놓여나기를 안타깝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울고 싶어졌다. 어머니가 빙글빙글 돌아갈매 마다 훨씬 들려진 나일론치마 밑으로 버선이 장화처럼 드러나 보였다. 나는 쥐어 들어가 정신없이 돌아가는 어머니와 거북스럽게 껴안고 있는 남자와의 사이를 떼어놓고 어머니를 끌고 나와 소리를 지르며 울고 싶었다, 나의 몸 속에서 핏줄처럼 돌고 있는, 매로는 나를 버티는 힘이 되어 주기도 하던 어머니를 향한 증오가 끈적끈적하게 풀림을 느꼈다. 몸도 느실 느실 맥이 풀리고 있었다.
홀이 파하자 어머니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바삐 사라졌다. 나는 완구점을 찾아갔다. 그때까지 불을 환하게 켜고 거리를 내다보던 여인은 나를 잠자코 맞아 주었다. 밤늦게 찾아온. 나를 보고도 조그만 모정의 흔들림도 없는 여인에게 나는 쑥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날 아시지요? 목소리가 높아졌다.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여인의 모정은 나를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는 애매한 것이었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집까지 갈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이곳에서 재워줄 수 없느냐고 말했다. 여인이 비로소 빙긋이 웃었다.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뭘 좀 먹겠어요? 라고 여인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빨리 쉬고 싶었을 뿐이었다. 여인은 계집아이를 불러서 가게를 닫으라고 이르고 휠체어의 바퀴를 굴리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이불이 깔려 있었다. 나는 여인이 자리에 눕는 것을 도와주었다. 여인이 시키는 대로 그녀의 곁에 누웠다. 여인이 갑자기 내 쪽으로 돌아누웠다. 그리고 자기의 손을 나의 목에 돌렸다. 어느새 여인과 나는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팔의 힘을 바짝바짝 조이고 있었다. 그리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을 맞대었다. 차지도 덥지도 않은 그저 미적지근한 감촉이었다. 여인이 몹시 허덕거렸다. 나의 목을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아기를 낳은 적도 있어. 돈을 많이 벌어서 층계가 없는 집을 짓고 사는게 소원이었는데. 여인은 자꾸 나에게 밀착되어왔다. 나는 어둠 속에서 이불이 버석거리는 소리와 몸 속에서 화안하게 열리는 관능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여인과 나는 가슴을 밀착시켜서 서로의 팔딱거리는 심장의 고동을 또렷이 느끼고 있었다.
여인은 아주 성숙한 자세로 나의 말 가득히 안겨있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방안은 아직 어둡고 교회의 새벽종소리가 들렸다. 나는 종소리를 세었고 열번째 총소리가 들릴 때 일어나리라고 생각했다. 여인도 깨어있을 것이다. 그러나 등을 때읍 누운 여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종소리가 열번도 훨씬 넘게 들렸다.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허물처럼 내던져진. 속옷을 보는 것이 부끄러웠다. 날이 훨씬 밝았을 때야 나는 하는 수 없이 일어났다. 주섬주섬 옷을 입으며 나는 심한 수치를 느꼈다. 흐트러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쓸며 방문을 나설 때 여인은 비로소 나를 바라보았다. 여인의 얼굴은 말라붙은 눈물자국으로 번들거렸다. 그후 나는 여인을 찾아간 적이 없었다.
그러나 여인이 접하고있는 모든 것에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찾아갈 수가 없었다. 그날 밤의 혐오와 수치가 생생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매일 밤 완구점의 유리를 통해서 여인을 보는 것이 고작이었고 때때로. 여인의 꿈을 꾸었다. 발가벗고 있는 그녀를 안고있는 꿈이었다. 그러나 깨고 난 다음 다시금 머리를 든t 관능과 혐오를 견디기 어려웠다.
똑같은 얼굴과 표정을 지닌 백개의 오똑이가 책상 위에서 똑바로 정돈되어 있었다. 손으로 멀어버려도 떼굴떼굴 구르다가는 다시 서 버린다. 나는 하나씩 짚어가며 세어보았다. 틀림없이 백개였다. 내가 여인을 찾아갔던 날 이후 한개도 더 늘어있지 않았다.
나는 지금쯤도 휠체어에 앉아서 거리를 내다보고 있을 여인을 생각했다. 오똑이를 한개씩 방바닥에 굴려본다. 빨간 점들이 방안 가득 뿌려진다. 백개와 오뚜기들. 그들은 사랑스러운 나의 분신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전혀 소외된 세계에서 나와 함께 있었다. 하늘이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고 태양은 곧 포개질듯 하얗게 빛나고 있던 날. 선한 현기증으로 비틀거리던 대가 무심코 들여다 본 것이 오똑이가 가득 찬 완구점이었고 휠체어의 여인이었다. 인형처럼 앉아있는 여인을 보고 나는 잠시 정신이 혼란해짐을 느꼈었다. 현기증 탓만도 아니었다. 햇빛이 쏟아지는 베란다와 침침한, 팔조다다밋방과 역시 휠체어에 앉아 바퀴를 굴리는 사내아이와 벽에 가득한 그림들이 필름처럼 스쳐갔다.
그리나 내가 다시 눈을 비비고 유리문을 밀었을 때 나는 가게구석에 세워진 두개의 목발과 여인을 보았고, 가득 들어찬 울긋불긋한 장난감들이 여인이 빚어내는 공기 속에서 파괴하게 삼고 있음을 느꼈다. 여인은 사십도 채 못 닿았을 나이에 얼굴에는 거뭇거뭇 검버섯이 피어있었다. 나는 잠시가게 문턱에 서 있었다. 여인이 무얼 찾느냐고 물었다. 나는 오똑이를 가리켰다. 특별히 오똑이를 사려고 작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진열장 가득한 오똑이에 시선이 머문 것뿐이었다. 여인이 어린애처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안에 대고 소리쳤다. 안으로 통한 쪽문에서 노파가 급히 뛰어나왔다. 나는 빨간색 오똑이를 받아들었다. 그날 밤 나는 죽은 동생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밤마다 완구점에 들러서 좁고 황량한 나의 내부에 하나씩 등불을 밝히듯 오똑이를 사 모았다.
거리를 대다보는 여인이 있고 나의 사랑스런 병정들이 지키고 섰는 불빛이 밝은 완구점에서 완강히 곤치를 짓고있던 나의 감정들이 꿈틀거림을 느끼고 있었다. 두 다리를 못쓰는 여인과 갖가지 장난감들이 빚어대는 괴괴한 흔들림 속에서, 위축되기 쉬운 나의 감정들은 위안을 받는 것이다. 여인은 나에게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주었다. 우리가 세들어 살고있던 일본식 집 이층을 휠체어에서 살다시피 하던 동생을 가슴이 두껍고 목소리가 걱실걱실 하던 가부를 아니 나의 어머니를 생각나게 했다. 햇빛이 별나게도 잘 드는 베란다말고는 멋없이 크고 넓은 다다밋방들은 어둡고 침침했다. 냄새가 나는 후시이레와 군데군데 음이 나지 않는 피아노가 유일한 나의 놀이터였고 또 방의 가구였다. 상아를 입힌 건반이 노랗게. 찌든 낡은 피아노가 언제부터 우리의 것이었는지는 모른다.
까만 칠이 이미 벗겨져 버린 커다란 피아노는 벽의 돌출된 부분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소아마비를 앓아 휠체어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동생은 손이 닿는 높이의 흰 벽에 종일 그림을 그렸다. 이층에서 보이는 전도관 흰 건물의 총각과 머리를 곱실곱실 지져 붙인 가정부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그의 손으로 벽화가 되었다. 더 그릴 것이 없자 동생은 옷을 벗고 자기의 몸 부분 부분을 세밀히 그렸다. 동생은 나의 옷도 벗을 것을 강요했다. 그래서 벽에는 각각 다른 형태의 남자와 여자가 가장 순수한 상태로 그려졌다. 오래지 않아 벽은 모두 띠를 두른 듯 일정한 높이에 그림으로 가득 차버렸다. 가정부는 그것을 보고 킬킬 거렸다. 투박한 손바닥으로 쓸어 보기도 했다. 동생은 그녀에게 마구 때를 썼다. 아줌마도 그릴테야. 아줌마도 벗어. 가정부는 흉물스럽게 웃고 동생의 머리를 건드리며 나가버렸다.
그날 하루종일 동생은 아줌마도 그리겠다고. 아줌마도 벗으라고 소리치며 울었다. 그러한 동생이 어느 날 갑자기 죽어버렸다. 학교에서 돌아온 내가 막 이층계단을 밟았을 때 이층에서 기다리고있던 동생은 그림이 잔뜩 그려진 도화지를 쳐들며 큰소리로 나름 불렀다. 누나야. 누나야. 곧 나는 휠체어의 바퀴를 잡은 채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동생을. 보았다. 그리고 날카로운 가정부의 비명을 들었다. 시멘트 바닥에 내던져진 동생의 머리는 피투성이였고 얼굴은 금세 송장처럼 부풀어올랐다.. 푸들푸들 경련이 일어나는 손에는 도화지를 쥐고 있었다.
나는 그의 손에서 도화지를 빼냈다. 도화지 한 귀퉁이가 찢어졌다. 숨이 꺽꺽 막혔다. 사람들이 달려나와 동생을 안고 갔을 때까지도 부서진 휠체어의 옆에서 나는 숨을 컥컥거리며 도화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붉은 크레용으로 꽃이 그려져 있었다. 맨드라미 인 듯도 하고 진달래인 듯도 했다.
동생이 꽃을 그린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층에서는 꽃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뒷면에는 벌거벗은 여자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 여자가 가정부라고 생각했다. 조금도 닯아 있진 않았으나 머리를 곱실곱실하게 지져 붙인 것은 엄청나게 커다란 젖을 가진 것은 우리 식구 중 그녀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후로는 가정부와 나만의 단조로운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항상 동생이 그린, 벽에 가득한 그림들에서는 낮 달처럼 창백한 그애의 환상이 넘실거렸고 그림들을 보면서 나는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느꼈다. 동생이 죽자 탄광의 기술자로 있던 아버지는 꽤 오래 집에 머물러 있었다. 한해에 서너 번 정도 집에 돌아오는 아버지는 집에 머물러 있는 동안 무척 다정한 아버지였다. 저녁마다 가까운 공원으로 데리고 나가는 일이 빈번했다. 그러나 어느 날 잠자리에서 깨어났을 때 모든 것은 변해 있었다. 가정부가 아버지의 방에서 푸수수한 머리를 매만지며 나오고 학교 갈 시간이 되어도 그녀는 머리를 빗겨주지도, 밥을 주지도 않았다.
그날 나는 머리를 까치둥지처럼 헝클린 채 눈물을 좍좍 쏟으며 학교를 갔다. 축은 동생 생각이 났다. 이튿날 아버지는 탄광으로 내려가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사태는 소리 없이 변해가고 있었다. 아버진 자주 집에 왔고 그때마다 가정부는 잠자리를 아버지 방으로 옮겼다. 그녀는 서서히 나의 어머니의 위치로 변해갔다. 그녀는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쉴새 없이 아이를 낳았다. 아이들이 우는소리가 그치지 않고 단조롭지만 집안 공기를 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돌이지나 아우를 볼 때 쯤이면 설사를 하다가 죽곤했다. 무턱대고 나에게 잘해 주기만 하던, 그래서 촌스런 모양으로 자모회에도 참석을 하던 그녀는 점차 냉혹해져 갔다. 연필과 공책이 필요하다고 말을 해도 그녀는 내가 군것질이나 하고 다니는 것 같은 얼굴로 질책을 했다.
나는 때때로 학교교실 아이들의 연필이나 크레용 토막을 몰래 집어왔다. 아이들은 나와 함께 앉기를 싫어했고 선생님은 자주 나를 불러서 꾸중을 하고 가방을 뒤졌다. 그리고 나는 분필 토막으로 변소에 선생님 나쁜 년. 엄마 나쁜 년, 이라고 낙서를 하곤했다. 나는 자꾸 딱딱한 껍질 속으로 위축되어갔고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키워갔다.
그럴수록 죽은 동생은 더욱 생생히 기억 속에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동생이 그린 그림을 모조리 지워 버렸다. 대가 동생을 느낄 수 있는. 끝없는 애정으로 대하던 그림들이 하나씩. 지워질 때 나는 물걸레를 손에 든 어머니에게 매달렸다. 어머니는 나름 떨치며 무관심하게 말했다. 그애는 너 때문에 죽은 것이야. 그날 네가 학교에서만 안 왔어도 잘 놀던 애가 왜 죽었겠느냔 말야. 어머니와 나와는 무섭게 냉담해져갔다. 그러나, 내 속에 자리잡은 끈질긴 증오와 대결의식과 피해망상은 온 신경을 팽팽히 긴장시키고, 그녀에게 향하는 증오는 생활의 유일한 원동력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나는 여인에게 편지를 썼다. 어제도 나는 당신의 꿈을 꾸었읍니다. 요즘 매일 밤 나는 발가벗은 당신의 꿈을 꿉니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해 괴로워합니다. 언젠가 당신을 찾아갔던 날 기억하시는지요. 그렇다면 잊어 주십시오. 잊어 주십시오. 그래서 다시금 당신의 세계에 나를 맞아주십시오. 소리를 내어서 읽어보았다. 다소 연극적이었으나 감동을 느꼈다.
완구점은 며칠째, 내부 수리중이라는 쪽지를 달고 문이 닫혀있었다. 나는 거의 미칠 듯한 기분이었다. 여인을 만나는 것은 고사하고 매일 밤마다 유리문 밖에서 여인을 들여다보던 일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여인에게 쓴 편지는 손때가 까맣게 올랐고 접은 자리는 헤실헤실 보풀이 일고 있었다.
완구점이 있던 자리에 다방이 생겼다. 굳게 닫혀있던 문이 활짝 열리고 축제처럼 흥청거렸다. 나는 다방으로 들어갔다.
화관들이 늘어선 문을 들어서면 다시 불빛이 환한 완구점이 나타나고 가득한 장난감들과 여인이 나를 맞아줄 듯했다. 그대를 사랑해 그대를 사랑해. 스피커는 요란스럽게 울부짖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카운터에서 손톱을 갈고있던 여인이 앵무새처럼 말했다. 다방 안을 들러 보았다. 완구점의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러나 붉고 푸른 색 등이 실내를 밝히어 있고 열대어들이 끊임없이 물방울을 만드는 커다란 어항이 있고, 사랑을 하는 남자와 여자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어도 나는 항상 여인이 있던 자리를, 목발이 있던 자리를, 저마다 삼아있던 장난감들이 놓였던 자리를 또렷이 알 수 있었다. 다방을 나왔다. 스피커는 여전히 지잉지잉 울고있었다.
그대를 사랑해. 그대를 사랑해. 나는 여인을 생각했다.
지금쯤 휠체어의 바퀴를 굴리며 자기의 세계를 찾고있을 여인과 그 뒤를 따라서 매끈한 장난감 자동차들은 달리고 오똑이들은. 떼굴떼굴 구르며 인형들은 두 다리로 꿋꿋이 따라 걷고 있으리라. 그들은 나에게서 손이 닿지 않는 이방으로 멀어져 있었다. 나는 잠시 해방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끝없이 고독하게 느껴졌다. 나는 다시 딱딱한 껍질 속에서 죽은 동생의 환상과 어머니에 대한 증오와 단 첨가된 춘화와도 같은 여인과의 정사를 안고 달팽이처럼 한껏 움츠리고 살아갈 것이다.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 백개의 오똑이들을 없애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 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도 안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 역시 나에게 아무런 위안도 주지 못했다. 다리가 맥없이 후들거렸다. 하늘에는 별이 없었다. 가슴은 금방 버적버적 부서져 버릴 듯 건조해져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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