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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라이벌 새음반 들고 서울 나들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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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1994년 10월. 당시 11세의 소녀 첼리스트 장한나양이 파리에서 열린 로스트로포비치 국제 첼로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 들고 나간 악기는 줄리어드 음대에서 빌려준 프랑스제 티에르였다. 자주 줄이 끊어져 가슴을 졸이게 했던 악기다. 우승 직후 장양의 어머니는 문화부 장관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가 장양을 위해 점찍어놓은 1757년산 과다니니 풀 사이즈(1백65만달러)를 정부가 구입한 후 임대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호소문은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에 전달됐고 이듬해 5월 기업메세나협의회 최원석 회장이 첼로 구입비 7억 5천만원을 장한나후원회에 기증했다.

96년 7월 미국에서 또 한장의 편지가 청와대로 날아들었다. 94년 런던 위그모어홀 독주회로 세계 굴지의 레이블 데카와 전속 계약한 재미교포 첼리스트 대니얼 리에게 첼로를 사주기 위한 운동에 정부와 기업이 동참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첼리스트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에 이어 커티스 음대 교수 올란도 콜이 사용하던 몬타냐의 당시 가격은 3백만달러였다. 하지만 대니얼 리의 꿈은 끝내 무산됐고 10년 전부터 카를로 토노니를 사용해오고 있다.

장한나와 대니얼 리. 세계 무대에서 현악 강국 코리아의 이름을 떨치고 있는 첼리스트들이다. 신동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성숙한 음악세계를 일구어가고 있는 연주자들이다.

94년 같은 해 데뷔해 세계 굴지의 음반사와 전속계약을 한 것이나 첼로계의 대부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76)의 총애를 받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지난 10년간의 행보는 사뭇 다르다.

국내에서의 인지도나 인기를 보더라도 장한나가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사라 장)에 필적하는 독주자로 자리를 굳혔다면 대니얼 리는 그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게 사실이다.

장한나가 로스트로포비치.슬래트킨.시노폴리 등 세계적 거장들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주곡을 주로 녹음한 데 반해 대니얼 리는 피아노 반주의 소나타.소품 위주의 레코딩을 해왔다.

대니얼 리와 장한나가 차례로 서울무대를 찾는다. 둘 다 새 음반 출시에 즈음한 내한공연이다. 대니얼 리는 피아니스트 컬버트 코릭과 호흡을 맞춘 '브람스 소나타 제1~2번'(데카) 출시와 함께 오는 20~24일 서울.대구.대전에서 네 차례 순회 독주회를 한다(02-751-9606).

장한나는 안토니오 파파노(런던 로열오페라 예술감독) 지휘의 런던심포니와 녹음한 프로코피예프의'신포니아 콘체르탄테'(EMI)를 내놓으면서 4월 13일 로린 마젤 지휘의 서울시향과 협연한다(02-399-1630).

이들 첼리스트는 시원시원한 활쓰기에다 선이 굵은 연주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비슷한 데가 많다. 두 사람 모두 '음악적 아버지'로 모시는 로스트로포비치의 영향 때문이다.

차이코프스키의'로코코 주제의 변주곡'은 로스트로포비치가 장양의 데뷔 음반에 함께 수록했고, 대니얼 리의 12세 때 연주를 듣고 "나는 15살이 되어서야 저 정도 연주할 수 있었다"는 내용의 편지를 어머니에게 보내 제자로 받아들일 뜻을 내비쳤다.

지난해 가을 하버드대 인문학부에 진학해 철학.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장양은 옛 소련 체제 하의 음악가의 삶에 대해서 연구하는 등 음악 작품의 사회적.철학적 배경에 관심이 많다. 대니얼 리는 작곡가의 의도를 자신의 개성으로 표출하는 '음색 만들기'에 골몰해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 궁금해지는 것은 직접 지휘봉을 잡으면서까지 장한나의 협주곡 음반 녹음에 열성적이었던 로스트로포비치가 왜 유독 대니얼 리에 대해선 녹음과 연주활동을 자제하라고 했는지다.

이번에 출시된 브람스 소나타집에서 한층 숙성된 음악세계를 접한 후 그 의문이 다소 풀렸다. 내밀한 울림에 귀기울이면서 절제된 표현으로 깊이를 추구한 음악세계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미루어 짐작컨대 혹시 대니얼 리는 로스트로포비치가 요요마 이후를 겨냥한 '숨겨놓은 카드'가 아닐까.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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