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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심의 정치입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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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는 지난 23일 급작스럽게 임시국무회의를 소집, 「재외국민에 대한 형사절차특례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한국군대가 군사지원을 위하여 주둔하는 외국에 체류하는 한국인 민간인에 대한 형사재판관할을 제1심에 한하여 전쟁중인 한국군 군법회의에 주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있는데 현재 한국이 군사지원을 위해 군대를 파견하고 군법회의를 설치하고있는 외국은 바로 월남이므로 이 법안은 월남에 가있는 민간인에 대한 재판권을 당지 군법회의에 주는 것이다.

<월남의 대한감정>
이 법안은 정부가 미묘하게 뒤틀려가고 있는 한·월 양국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만들어낸 「고심의 정치입법」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지난번 월남국경일 경축국제축구대회에 드러난 월남민의 악화한 대한감정과 월남언론이 보여준 한국인에 대한 비판은 정부당국을 매우 당혹 케했다. 더우기 채명신 주월사령관이 본국정부에 대해 주월민간인들의 비행을 규제해줄 것을 요청하기에 이르러서는 정부로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한·월의 이해촉진>
제1차로 정부는 관계부처간의 협의를 통해 「한·월 양국간의 이해촉진을 위한 종합대책」을 국무회의에서 의결, ①파월기술자의 엄선 및 해외직업소개업체에 대한 감독강화 ②이직기술자의 소환 ③출입국제한 등 행정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정력으로 주월민간인에 대한 규제가 충분할 수 없다는 국방당국의 강경론은 결국 법적 규제의 방도를 강구하게 했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재외국민에 대한 형사절차 특례법안」이다. 정부는 법적 규제의 방법을 강구하는 동안 ①주월민간인을 군속화하는 방법 ②월남과 「범죄인 인도협정」을 체결하는 방법 등도 아울러 검토했으나 「군속화안」에는 막대한 예산의 뒷받침이 있어야하고 「범죄인 인도협정」은 월남정부의 호의적인 반응을 받기 어렵다는 점에서 모두 채택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정부가 이번에 제정키로 한 「재외국민에 대한 형사절차 특례법안」은 ①민간인을 군법회의에서 재판하도록 한 점에서 헌법위반이 아니냐는 문제, ②월남의 재판관할을 결과적으로 상당한 범위에서 배제하게되어 월남 내에 「주권침해논의」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 아니냐는 점 등 몇가지의 문제점을 안고있다.

<헌법 제24조2항>
헌법 제24조 제2항은 『군인 또는 군속이 아닌 국민은 대한민국의 영역 안에서는 군사에 관한 간첩죄의 경우와 초병초소 유해음식물공급 포로에 관한 죄 중 법률에 정한 경우 및 비상계엄이 선포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군법회의의 재판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민간인은 대한민국영역 안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빼놓고는 군법회의가 아닌 일반법원의 재판을 받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있다.
정부는 이 법안을 마련하기에 앞서 헌법위반여부에 대해 법제처로 하여금 신중한 검토와 연구를 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법제처 안에도 상반된 견해가 맞서 논란을 벌였으나 결국 『헌법위반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정부가 이같은 헌법해석을 내린 것은 제24조 제2항이 『대한민국영역 안에서는…』이라고 규정하고있어 영역 밖인 월남 또는 다른 외국에 있어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군법회의가 민간인을 재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헌법은 원래가 제한규정이기 때문에 헌법이 제한하지 않는 범위에서는 그 제한을 벗어날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야당이나 재야법조계에서는 정부의 견해를 정면으로 반박, 『이 특례법은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견해에 의하면 헌법 제24조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간인을 군법회의에서 재판할 수 없다는 것, 즉 『민간인에 대한 군법회의 재판권의 배제』를 규정하고있기 때문에 헌법이 규정한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영역 내이건 영역 외이건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더우기 『영역 안에서는……』이라고 한 것은 국제법과의 상충을 막기 위한 것이지 영역 외에서는 군법회의가 민간인을 재판할 수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므로 이 특별법안은 명백히 헌법에 위반된다고 설명한다.

<위헌여부로 논란>
우리 법 체제아래서는 위헌여부의 유권해석권은 대법원에 있고 그것도 법령의 위헌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될 경우에 한하므로 지금 당장 이 문제에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매우 큰 논란을 일으키게 될 것은 틀림없다.
이 법안은 그 실시에 있어 월남의 재판권배제, 나아가서는 주권침해의 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이 법안 제2조는 본법과 체류국 법률과의 관계를 규정, 『이 법은 재외국민이 체류하는 외국의 모든 법률의 집행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며 그 외국과 합의된 범위 안에서 시행한다』고 하고있어 월남의 재판권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므로 하등 주권침해시비를 일으킬 것이 없다고 정부당국자는 설명한다. 그러나 한국의 군법회의가 재판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월남과 합의된 범위, 즉 월남이 재판권을 포기하는 경우에 한하게되지만 민간인의 경우 재판관할 등에 대해 월남과 아무런 협정을 체결하지 않고 있는 한국이 월남의 재판권포기를 상정한 입법을 할 경우 월남측의 호의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실효 없는 죽은 법>
그 반대로 월남이 한국민간인의 범법행위에 대한 재판권포기를 전적으로 거부할 경우 이 법은 아무런 실효를 거둘 수 없는 「죽은 법」을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이 법의 실효는 정부가 외교절충을 통해 월남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민간인범죄」를 넘겨받을 수 있느냐에 달리게 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윤용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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