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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의 회고 <문화> - 중층사회와 문화계의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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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나라의 문화를 형성하는 의식과 생산수단 등 하부구조에 있어 신·구 질서가 무질서하게 공존하는 사회를 중층사회라고 정의한 학자가 있다. 이른바 「근대화」의 슬로건을 지상의 정책목표로 삼고있는 현정권 하에서 행해지고 있는 정치·경제·문화·교육·사회 등 각분야에 걸친 각종 사회적 행동의 양태를 볼 때, 우리는 새삼스럽게 이 정의가 내포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성을 깨닫게된다.
1967년 한햇동안 국내문화계의 움직임을 이런 관점에서 회고할 때 우리는 여전히 이러한 신·구 질서의 혼재가 빚어낸 혼란과 좌절감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때마침 1967년은 우리 나라에서 이른바 신문학운동이 제기된 지 만 60주년을 맞는 해로서 특히 문학과 연극부문에서 이 역사적인 운동의 시발요인이 되었던 민족적 주체성의 확립문제가 새삼스럽게 클로스·업 되었으나 역불급으로 그 성과는 별로 보잘것없었던 것 같다.
우리 문단에서 새삼스럽게 작가와 그 현실참여문제가 논의되고, 역사소설과 작가의 역사관문제가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사실이라든지 연극의 대중밀착을 위한 몇 가지 새로운 시도가 모두 「한국적인 소재의 발견」이라는 공통적인 방법론을 주축으로 하여 현출되었으나 올해의 소산은 별로 거론될 것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한편 인문과학분야에서 일기 시작한 한국사에 대한 재인식 기운이라든지 사회과학 전 분야에서 열띠게 전개된 근대화논의 등은 제각기 한국학술부문의 당면중점과제의 소재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것 역시 각 인접과학과의 협조부족과 제반 사회적 여건의 불비로 말미암아 의욕만으로 그치고 만 감이 있는 것은 못내 아쉬운 일이다. 고고학부문에서 새로 발견된 민족사의 상한문제를 뒤집을 만한 구석기시대 출토품들의 학술적 정리작업과 진전, 전국역사학대회를 통한 영역별 한국사분류체계원칙의 합의 등은 그런 대로 이 해의 큰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자주성의 불모상>
그러나 이와 같은 문화계전반의 일반적 저조현상 가운데서도 올해 들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 한심스런 현상은 문화계인사 전반이 정치의 입김에 휘말려들어 그들의 자주성을 한층 잃어가고 있다는 현상이 아닐까싶다. 정미년의 미술 음악 출판 방송 교육 종교 등 각분야에서 나타난 이와 같은 현상은 일일이 예거하기조차 쑥스러울 정도다.
우선 미술부문을 보자. 국전의 권위가 날로 퇴색해가고 국제전에 참가하는 미술인들의 작품이 현저하게 늘어난 것만은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창작활동이 1년을 소용돌이치던 정치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흡사 어항 속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무기력을 면치 못했던 것은 일부 화단인들이 시도한 대중접근을 위한 운동이 실패한 원인이 나변에 있는가를 암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음악분야에 있어서는 아이작스턴, 야노스·스타카, 스테파노 등 세계적 거장들의 잇단 내한으로 국내음악인 및 음악동호인들의 귀를 걸게 해줬다는 것 이상으로, 참으로 한국적인 음악의 생산, 참으로 근대적인 한국음악의 대중접근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일부 악단에 의하여 시도된 한국적인 뮤지컬의 성과도 그 악단이 지닌, 다분히 정치적인 성격 때문에 오히려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 것은 못내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
출판계는 한 마디로 말해서 양서가 마구 밀려나고 잡서·악서 등이 판을 치는 그레셤 법칙을 여실히 나타냈다. 연말통화량이 1천억원대에 이르고있는 상황하에서 유독 1967년의 출판계에 도산 사태가 속출한 것은 오늘날 한국문화의 불모상황을 단적으로 표시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방송부문에 있어서는 각지에 신설된 많은 중계국의 등장으로 난청지대 해소에 큰 진전이 있었고, 관민영방송국간의 프로편성 상에 있어서의 무의미한 경쟁이 완화되었고, 마이크로·웨이브 망의 개통 등으로 기술적인 분야에서 획기적인 계기가 이룩된 것이 사실이나, 이 모든 것이 어느 의미로는 양차의 선거와 직접·간접으로 관련되어 다분히 정치적인 냄새를 풍겼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하여 방송의 공공성에 대한 신뢰감을 손상케 한 아쉬움이 있음을 또한 부인치 못한다.
종교부문에 있어서도 국내 각종교가 세계종교계의 호응에 발맞추어 합동된 귀합운동에 참여하고, 종교현대화의 새 기운에 큰 진전을 보인 것이라든지 새로운 국역성경의 완성, 간행을 보게된 것 등은 올해의 큰 수확이라 하겠으나 일부 종교인들을 제외하고 종교 역시 너무도 거센 정치의 입김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음은 그가 담당한 특수사명에 비추어 또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창조적 역량을>
이렇듯 1967년의 문화계를 돌아볼 때 우리에게는 만족과 희열 대신에 우수와 반성이 더 많은 한해를 보내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중층사회가 가진 모순을 극복하고 우리가 지향하는 참다운 민주주의적 사회를 건설하는데 주역을 담당할 사람들이 다름 아닌 우리의 문화계 인사들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문화란 원래가 한 사회의 창조적 역량의 총체적인 표현이라는 정의에서부터 도출된 당연한 귀결에서도 그렇거니와 또한 일세가 온통 불신의 시대를 근심하고, 심지어 국가기관의 윤리성마저를 의혹시 하고있는 오늘의 이 시점에서 결코 소멸되지 않을 민족의 정기와 그 창조적 생명력을 가장 대표적으로 상징할 역량은 오직 사상가, 학자, 예술인, 종교인 등 문화계인사들이기 때문이다. 밝아오는 새해는 조국의 희망을 위해 우리는 그래도 문화인에 대한 촉망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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