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세상읽기

박 대통령, 미국인 매료시킬 스토리 갖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일러스트=강일구]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박근혜 대통령은 워싱턴에 익숙한 인물이다. 정치인으로서 자주 방문해 전문가·싱크탱크·기업인·정치인을 만나왔다. 그리고 이런 여행을 통해 만난 사람 모두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줬다.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박 대통령을 유능하고 명석하며 중요한 정치적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이번의 백악관 방문 여행은 어떤 점에서 과거와 다를까. 첫째, 박 대통령은 한국의 첫 여성대통령이라는 역사적 인물로서 워싱턴에 돌아왔다. 1987년 이래 가장 큰 표차로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은 이미 서방세계가 칭송해온 한국의 민주화 성공 스토리에 위대함을 더해준다. 이것은 한국인에게는 별로 큰 일이 아닌 것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미국인에게는 그렇지 않다. 아시아 국가들에서 남성 쇼비니즘을 너무나 많이 목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박 대통령은 아시아 전체를 대표하는 이정표로 받아들여진다.

 둘째, 백악관 방문과 양원 합동회의 연설은 박 대통령의 정책과 비전을 소개할 기회가 됐다. 하지만 정책 설명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민에게 자신의 개인적 스토리를 소개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한국 지도자들은 눈길을 끄는 개인사를 지니고 있었고 이것은 미국인들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민주화 투사로 서방세계에서 명사 취급을 받았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초라한 집안 출신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대통령이 된 것은 미국인들에게 에이브러햄 링컨 식의 스토리로 공감을 불렀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현대의 말단 직원으로 시작해 세계적 건설기업의 사장에 이어 대통령이 된 것도 마찬가지다. 가난뱅이에서 부자가 된 스토리는 한국판 아메리칸 드림이다.

 그리고 이번 방문을 계기로 미국인들은 박 대통령에 관한 주목할 만한 스토리를 알 수 있게 됐다. 10대 때 어머니가 북한 요원에 의해 암살당하자 국가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감당해야만 했던 사연이 있다. 대통령이던 아버지를 비극적인 사건으로 잃게 된 경위와 그 뒤 공적인 자리에서 자취를 감춰야 했던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97~98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나라가 분열됐다고 느끼자 정계에 복귀하기로 결심한 경위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의 얼굴에는 정치 참여에 따른 흉터가 여전히 남아 있다. 한나라당 대표로서 서울시장 선거를 지원하는 유세 도중 한 시위자가 휘두른 칼날에 다친 자리다. 미국인 입장에서 볼 때 박 대통령은 흥미롭고도 매력적인 정치 지도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박 대통령이 논의해야 할 이슈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 이슈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상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관계의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다. 정상회담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첫 회담이라면 특히 그러하다. 이 점에서 박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가치와 원칙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또한 민주화와 번영·사회보장이 지니는 덕목을 찬양하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독재정치를 했던 시절과 자신을 구분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 시절을 폄하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독재는 이미 30여 년 전에 끝났다.

 대통령직 수행의 원칙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중요하다. 백악관 집무실이건 의회이건 사업가들과의 점심 자리에서건 그렇다. 왜냐하면 대통령직이란 것은 미리 정해진 정책을 실행하는 문제에 관한 것인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사태가 갑자기 일어나게 마련이며 행정부가 이런 사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이 대통령직의 주된 몫이다. 개인의 원칙이 문제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다. 역사가들은 어떤 정책을 폈느냐가 아니라 어떤 원칙을 지켜나갔느냐에 의해 대통령을 평가하고 기술하는 법이다. 지난달 북한이 보인 행태는 더없이 놀랄 만한 것이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자신의 ‘신뢰 외교’ 비전을 설명할 수 있었다. 다른 독트린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단순하지만 강력한 논리를 갖추고 있다. 신뢰는 단순한 약속을 지키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그리고 약속에는 프로세스, 즉 진행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약속과 프로세스는 협력을 위한 제도로 이어진다. 북한과 신뢰를 구축하는 데 무엇이 장애인지는 분명하다. 약속에 이르는 길에 과거 지켜지지 않았던 약속들이 너무나 많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의도와 상관없이 상대방에 대한 인식과 판단이 심각하게 왜곡돼 있기 때문에 진심 어린 신호를 상대에게 보내기가 매우 어렵게 돼 있다. 예컨대 미얀마의 경우 자신들의 개혁과 개방 의지를 분명하고도 오해의 여지가 없이 세계에 알릴 방법이 있었다. 바로 아웅산 수지 여사에 대한 처우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 이처럼 쉽게 신호를 보낼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신뢰구축을 위한 자신의 비전이 장밋빛 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회담 상대 측에 분명히 전달했다. 여기에는 북한의 도발이 있을 경우 준엄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도 포함된다.

 한·미동맹 60주년 기념일에 박 대통령이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고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친구, 퇴역군인, 한·미동맹 지지자들과 함께 대규모 만찬을 주최할 수 있었던 것은 기념일에 잘 어울리는 일이었다. 박 대통령이 여전히 한·미동맹을 무게의 중심에 놓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행사였기 때문이다. 설사 한국이 동북아에서 다른 파트너들에 관심을 보일 수는 있을지라도 말이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