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타는 불량 애자 수백 개 회수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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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국전력이 기존 세라믹 소재 애자(碍子·insulator·절연체로서 전선을 팽팽하게 지지하는 물체)와 병행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한 폴리에틸렌 소재 신제품 애자가 현장에서 사용된 지 일주일여 만에 제품에 하자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제조업체가 긴급 회수에 나섰다. 그러나 한전의 지역 사업소들이 구입해 간 4000여 개의 애자 중 전선 설치에 쓰인 수백여 개로 인해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5일 한전과 업체 관계자 등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 3월 중순 전신주에 사용되는 부품 중 하나인 저압인류(低壓引留) 애자의 소재로 폴리에틸렌을 병행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공문을 각 지역 사업소로 발송했다. 가정에 사용되는 220V 저압 전선을 지지하는 부품이다.

 이에 따라 제조업체인 S사가 내놓은 폴리에틸렌 소재 신제품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기존 세라믹 소재 애자보다 비용이 싸고 운반·시공 과정에서 잘 깨지지 않아 취급이 용이하다는 장점 때문이다. 세라믹 애자는 개당 1320원이지만 폴리에틸렌 애자는 개당 1200원이다. 연간 80만~100만 개의 애자가 유통·사용된다고 볼 때 연간 1억원가량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내연성 기준에 미달한다”는 제보가 S사에 접수됐고 S사는 애자 회수에 나섰다. 애자는 변형이 생기거나 불에 탈 경우 전선이 추락하거나 끊어질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이미 4000여 개가 강원도, 대구, 전북, 충북 일부 지역의 한전 발주 공사 시공업체로 넘어간 상태였다. 업체 측은 이 중 3000여 개를 회수했고 나머지의 행방도 찾아 리콜 절차를 밟고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11일 경기도 의왕에 있는 한전 기자재시험센터에서 한전·제조업체 관계자 등과 함께 문제가 발생한 애자의 ‘내연성 시험’을 했다. 그 결과 한국전기연구원(KERI)의 인증기준에 미달했다. 규정은 ‘길이 15㎝ 화염을 애자 몸체에 가하고 1분 뒤 화염을 제거했을 경우 화염이 자연 소멸’돼야 한다. 하지만 실험에 사용된 폴리에틸렌 애자 2개는 불이 붙어 탔고 화염이 자연 소멸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전 측은 “해당 부품은 한전이 직접 구매하는 게 아니라서 이런 일이 빚어졌다”고 해명했다. 유재익 삼성방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저압의 경우 고압처럼 바로 차단되는 게 아니라서 애자 결함으로 전선이 끊어지거나 추락하면 누전으로 인해 사람이 감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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