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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노화] 6. 지중해식 '장수 식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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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이탈리아 로마에서 남행열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캄포디멜레 마을. 지난해 12월 중앙일보 'STOP! 노화' 취재진이 찾은 이곳은 남녀의 평균수명이 92세인 장수마을이다.

여기서 만난 80대 후반의 노인은 "올리브유.사과(지명이 사과밭이란 뜻).생선 등을 즐겨 먹고 과수원에서 즐겁게 일하는 것이 장수 비결"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스.이탈리아 등 이른바 '지중해식 식사'를 하는 지역은 장수인들이 많다.

지중해식 식단은 올리브유로 대표되는 불포화 지방식 노화방지 효과가 강한 적포도주 과일.채소로 구성된다. 육류나 가공식품 섭취는 최소화한다.

◇올리브유.포도주.과일을 사랑하라=2001년 기네스북에 지구상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남성으로 등록됐던 이탈리아 사르데냐 사람 안토니오 토데는 1년 전 숨을 거두면서 장수 비결로 "형제를 사랑하고 매일 적포도주를 마셔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는 말년까지 적포도주를 하루 2백50㎖가량 마셨다. 포도는 과일 중에서도 항산화력(抗酸化力.노화방지 효과)이 아주 강력하다. 또한 그의 식단은 올리브유.토마토를 많이 쓰는 파스타, 야채 수프, 생선, 과일 등 전형적인 지중해식으로 짜여 있었다.

지난해 12월 말 1백12번째 생일을 맞은 사르데냐섬 주민 조바니 프라우(세계에서 셋째 고령자)도 '부지런한 생활습관과 적포도주를 즐긴 것'을 장수의 원인으로 꼽는다.

◇불포화 지방식, 성인병 쫓는다=미국의 장수 노인 안셀 키즈(99)는 50년 전 그리스 크레타섬 주민들의 식단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 명예교수인

그는 본인이 반세기 전에 수행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7개국 연구' 결과를 자신의 장수비법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 키즈 교수는 미국.그리스.핀란드 등 7개국 40~50대 남성 1만2천여명을 대상으로 심장병 사망률을 10년간 추적 조사했었다.

이 조사에서 그리스 크레타섬 주민의 심장마비 사망률이 1만명당 9명으로 가장 낮았다. 반면 핀란드 동부지역 주민의 심장마비 사망률은 9백92명이었다.

프랑스 건강.의학연구소(INSERM) 카렌 리치 박사는 "국가에 따라 심장병 사망률이 1백배 이상의 차이를 보인 것은 크레타섬 주민들은 올리브유 등 심장 건강에 유익한 불포화지방을 즐겨 먹었고 핀란드 주민들은 버터.치즈 등 심장에 해로운 포화지방을 주로 먹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열량 중 지방 섭취 비율은 지중해(30~40%)나 미국이나 별 차이가 없다.

지중해식 식사는 분명히 '고지방식'이다. 그러나 지방의 72% 이상을 불포화지방(올리브유.카놀라유.생선.씨앗.너트류 등)에서 얻기 때문에 먹으면 혈관 건강에 좋은 고밀도 지단백(HDL)의 혈중 농도가 올라간다.

키즈 교수의 발표 이후 지중해식 식사가 심장.혈관질환은 물론 암(유방암.대장암 등).당뇨병.비만.백내장의 예방과 치료에 좋다는 조사 결과들이 줄을 이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심장마비를 경험한 프랑스인 4백여명을 4년간 조사한 결과다. 절반은 서양식 식사, 절반은 지중해식 식사를 하게 했는데 후자의 심장마비 재발 위험이 50~70%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리옹 다이어트연구).

◇지중해식 식사법=올리브유를 듬뿍 뿌린 샐러드와 파스타를 먹고 항상 과일로 식사를 끝내며 포도주로 자주 목을 축이는 것이 전통적인 지중해식 식사. 또 양고기나 닭고기를 매주 한번, 생선을 매주 두번 가량 먹는다.

이탈리아 최고보건연구소 지노 파르기 박사는 "전통적인 지중해식 식사는 채소.과일 위주이며 저지방인 페타 치즈.요구르트.생선 등 동물성 식품을 약간 보충한 것"이라고 말했다.

채소.과일엔 항산화물질이 풍부해 노화를 일으키는 유해산소를 없애준다. 또 식물성 식품에 든 카로티노이드.식이섬유는 암.심장병.백내장 등을 막아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사사리 대학 시리아코 카루 교수는 "지중해식 식사를 하려면 가공식품을 피하고 자연식품을 즐겨 먹어야 한다"며 "버터 대신 올리브유로 요리하며 과일 주스보다는 과일을 먹고 매주 한가지씩 새로운 채소.과일을 찾아 먹을 것"을 권했다.

지중해식 식사는 그러나 해당 지역에선 '위기'를 맞고 있다. 프랑스 보르도 대학 장 닥티게 교수는 "지중해 주민들의 빵.감자.과일.올리브유 섭취량이 계속 감소하고 식육.치즈 섭취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며 "최근엔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혈압.체중이 거의 미국 수준에 근접했다"고 우려했다.

◇지중해식 식사의 주의점=전문가들은 지중해식 식사가 세계의 건강식으로 널리 퍼진 원인 중 하나로 "맛 등 수용성이 좋아 다른 지역 사람들이 먹기에 큰 거부감이 없다"는 것을 꼽는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전체적으로 열량이 높아(올리브유 한 찻숟갈에 1백㎉) 체중 증가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루 교수는 "지중해식 식사 하나만으로 그리스.이탈리아 남부 주민의 평균수명이 북유럽.미국보다 4년 이상 길어졌다고 보긴 어렵다"며 "이곳 주민들은 육체적 노동을 많이 하고 낮잠을 즐기며 친척.이웃.친구들이 서로 돌봐주는 사회적 유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풀이했다.

로마.파리.캄포디멜레=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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