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경제교육] 김종훈 한미파슨스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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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4남2녀 중 남자로선 막내인 나는 어릴 때 불만이 많은 편이었다. 교복 외에는 새 옷을 입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웬만한 것은 모두 형들한테 물려받았다. 아버지께서 평생 강조하고 몸소 실천하신 근검절약 정신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당시 우리 집이 옷이나 꼭 필요한 물건을 못 살 정도로 가난한 것은 아니었다. 풍족하진 않아도 집 한 채에 6남매를 가르칠 정도는 됐는데 아버님은 단 한 푼도 헛된 돈을 쓰지 않을 정도로 엄격하셨다.

특히 당신을 위해 돈을 낭비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당연히 가족 모두 그런 생활방식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님을 하루 종일 조른 끝에 겨우 1원을 타서 과일을 사먹었던 기억이 난다.

1930년 고상(高商.서울 상대의 전신)을 졸업하고,당시로선 드물게 신식 결혼식을 올린 아버님은 항상 가족에게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이셨다.

직장에 다닐 때도 집안 청소나 화초 가꾸기, 집안 정리정돈 등은 아버님 몫이었고, 하루 일과가 시계처럼 정확했다. 나는 아버님의 생활방식에 숨막혀 했고, 그 반발로 중.고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싸움질이나 못된 짓도 하곤 했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기업경영의 책임을 맡은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도 내 사고 체계나 가치관 속에는 아버님의 절제된 생활방식이 깊게 배어 있음을 깨닫는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서 자칫 낭비하기 쉬운 요즘이지만 우리 집은 조금 다르다. 예컨대 밥을 깨끗이 먹지 않거나 그릇에 밥알을 남기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또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간 큰 남자'에 해당하지만, 나는 지금도 내 수입의 일정액만 아내에게 생활비로 주고 아내도 그 중 일부만 아이들에게 매달 용돈을 준다. 따라서 우리 가족은 자기 예산을 운용하느라 절약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계획경제'의 실천인 셈이다.

회사경영도 마찬가지다.외국과 합작사를 경영하다 보니 문화.관습과 가치관이 서로 다른 직원들을 한 방향으로 이끌어 업무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와 관련된 경영 현안을 놓고 고민을 거듭할 때면 나는 으레 항상 앞서서 가족을 이끌며 어려운 일을 손수 도맡아 하신 아버님을 떠올리며 힘을 얻는다.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리더십을 갖추는데 필수 불가결한 덕목이라면 나는 아버님께 너무 소중한 것을 물려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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