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들을 적으로 만들었나 '불편한 동거'에 나선 두 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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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숨은 자식들에게 착취당하면서도 멸시받는 어머니들에게 “당신은 존귀한 존재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들은 적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건널 수 없는 강을 사이에 둔 존재 같다. 그럼에도 손을 잡기도 한다. 또 다른 적에 맞서기 위해서다.

 김숨의 장편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현대문학)은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적으로 만났지만 동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두 여인의 이야기다. 김씨는 “불안한 일자리와 육아를 방기하는 사회, 소비가 미덕이 된 자본주의가 여자들을 적으로 내몰고 있다”고 했다. ‘진화하는 적’은 소비의 노예가 된 오늘의 세상을 가리킨다.

 홈쇼핑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는 며느리(그녀)는 브랜드 아파트를 장만하고, 아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시어머니(여자)에게 동거를 제안한다. 30대에 남편을 잃고 홀로 3남매를 키운 시어머니는 육아 도우미 비용을 아끼려는 며느리의 계산 속을 알면서도 제안을 받아들인다.

 각자 필요에 의해 시작한 두 여인의 동거는 건조하다. 그냥 마르기만 했던 이들의 관계는 며느리의 실직과 시어머니의 구강건조증이 심해지며 마른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지기 시작한다. 수돗물이 끊어진 어느 하루 반나절, 둘의 갈등은 극에 달한다. 김숨 특유의 극적인 대화는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물이 끊어진 상황은 시어머니의 입 속에서 침이 마르는 상황과 비슷하죠. 갈등을 보여주는 데 반나절이면 충분해요. 하루에 주고 받는 모든 말에 평생이 담겨있으니까. 오늘 그냥 하는 말은 그간 겪은 감정과 갈등이 쌓이고 축적된 거에요.”

 일자리를 잃은 며느리에게 구강건조증을 앓는 시어머니는 병원비만 드는 쓸모 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입 속의 침처럼 ‘탁’하고 뱉어버릴 수 있는….

 “침은 시어머니를 상징해요. 며느리에게는 언제든 뱉어버릴 수 있는 하찮은 것이죠. 하지만 우리 몸에서 침은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분비물이에요. 그 양이 조금만 줄어도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는 거죠.”

 며느리는 요즘 말로 ‘감정노동’의 피해자다. 콜센터 상담원으로 온갖 모욕과 수치를 친절로 받아내지만 정작 시어머니는 함부로 대한다. “친절을 밖에서 너무 많이 소비해서 그래요. 며느리의 친절은 교육의 산물인 거죠. 언제 잘릴 지 모르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일 수도 있고요.”

 몰아세우는 며느리 앞에서 시어머니는 더듬수로 맞선다. 김씨는 “손자를 키우고 온갖 집안일을 하지만 경제력이 없는 시어머니가 구사하는 최대의 전략이 모르는 척, 의뭉을 떠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언제까지 서로에 생채기를 내야 할까.

 “사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없어요. 두 사람이 끝낼 수 있는 전쟁이 아니니까. 세상이 만든 가치에 휩쓸리기보다 각자 상대를 들여다보고 서로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생각하면 공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글=하현옥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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