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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서소문 포럼

김관진의 무섭고 슬픈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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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전영기
논설위원
JTBC 뉴스9 앵커

대한민국 국회 사이트에 들어가 지난 25일 있었던 이석기 의원(통합진보당)의 대정부질문 동영상을 봤는데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시종일관 핵무장으로 배짱이 든든해진 평양의 김정은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골라서 하더군요.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적의 숨통을 끊을 수 있게 준비하라’ ‘지휘세력을 타격하겠다’ ‘개성공단 인질억류 시 군사조치를 취하겠다’는 극단적 발언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김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사고에 젖어 있고, 박근혜 대통령의 정책비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김관진은 북한 군부가 제일 두려워하는 한국인입니다. MB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 김 장관이 유임된 게 김정은한테 여간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이석기 의원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박근혜 대통령과 김 장관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애쓰더군요. 박 대통령으로 하여금 하루라도 빨리 김 장관을 경질하도록 작업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김관진에 대해 시인 김지하는 “저토록 무섭고 슬픈 눈을 가진 사람은 처음 본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김 장관의 눈은 깊고 그 빛은 강합니다. 무서운 건 강한 빛 때문이고, 슬픈 건 어떤 운명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저 깊은 눈 때문입니다.

 북한 군부는 김관진의 얼굴을 “굶주린 잿빛 승냥이의 상통(얼굴상)에다 움푹 파인 두 눈깔은 얼마나 잔인하게 생겼는가”라고 표현하더군요. 김정은은 왜 김관진을 두려워할까. 김 장관의 집무실엔 세 개의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김정은·장성택·김격식 사진입니다.

 김격식은 한국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장입니다. 2010년 해주4군단장으로 있으면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을 명령했죠. 한국인 51명의 생명을 앗아간 장본인입니다. 김관진은 “내가 싸워야 할 적은 누구이고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를 항상 생각합니다.(2011년 1월 1일, 장관서신 1호)

세 개의 사진은 김관진이 한 순간도 적을 잊지 않고 적의 생각을 읽어내기 위한 장치입니다. 김관진은,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노량해전에 출전하면서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유한이 없다(차수약제 사즉무감·此讐若除 死卽無憾)”고 한 말을 자주 인용합니다. 김관진이 무찌르고자 하는 원수가 김정은이라는 점을 집무실 사진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김관진은 말대로 행동하는 사람이기에 적이 두려워 합니다. 연평도 도발 열흘 뒤 취임한 김관진이 첫 번째 한 행동은 연평도에서 대대적인 사격훈련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연평도에서 기습당했으니 연평도에서 반격하겠다는 응징정신이었죠.

 김관진은 훈련계획을 갖고 청와대로 들어가 이명박 대통령을 설득했습니다. 미군이 지휘하는 한미연합사령부는 김관진의 계획을 부담스러워했습니다. 북한 군부를 자극할까 신경이 쓰였던 거죠. 미군은 전시작전의 지휘권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시작전 차원에서 진행하는 사격훈련은 한국군의 고유권한입니다. 김관진은 평시작전권의 한계까지 밀어붙였습니다.

 북한 군부한테는 “공격하면 자위권 차원에서 강력히 응징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실제로 사격훈련을 할 땐 공대지 미사일을 탑재한 전투기들을 하늘에 띄워 북이 공격하면 바로 쏘도록 명령했습니다. 이때 김관진의 입에서 나온 말이 그 유명한 ‘도발원점 타격’ ‘선조치 후보고’였습니다.

 김관진의 언어는 이런 배경을 갖고 있기에 적들이 두려워합니다. 김관진의 언어는 ‘지원세력 타격’→‘지휘세력 타격’으로 계속 진화했습니다. 그의 언어엔 허세가 없고, 그에 상응하는 준비와 계획이 마련돼 있습니다. 김관진 주변에 ‘처단하겠다’는 삐라가 뿌려지고, 백색가루 우편물이 보내지는 건 평양이 그를 두려워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평양의 다음 수순은 김관진을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대중적·심리적으로 제거하는 겁니다. ‘김관진 같은 전쟁주의자가 있는 한 평화협상은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확산시켜 그를 끌어내리려 할 겁니다.

 김관진은 전쟁주의자가 아닙니다. 전쟁예방주의자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쟁을 하고 싶지 않지만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2010년 12월 4일, 장관 취임사)

전영기 논설위원·JTBC 뉴스9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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