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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를 제자리로 돌리는 건 식민지 과거사 치유하는 과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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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호 04면

일본 국내청의 조선왕실의궤(2011년), 도쿄대가 소장했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2006년). 우리가 광복 이후 일본으로부터 환수해 온 대표적 문화재들이다. 이 문화재들을 되찾아 오는 데 경기도 남양주시 봉선사의 혜문(40ㆍ사진) 스님의 공이 컸다. 그는 2006년부터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와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 소속으로 일본을 40여 차례 오가며 환수운동을 펼쳤다. 그 공로로 지난해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해외 문화재 환수 운동 펼치는 혜문 스님

2006년엔 해외 문화재 환수운동 시민단체인 ‘문화재 제자리 찾기’를 만들었다. 그의 다음 타깃은 오구라 컬렉션이다. 특히 고종 황제의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제왕 투구와 갑옷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조선왕실 투구위원회’를 조직한 뒤 도쿄 국립박물관을 끔질기게 설득해 투구ㆍ갑옷의 특별 열람과 일반 공개 방침을 이끌어냈다.

-많은 약탈 문화재 중 대한제국 황실 투구에 집중하는 이유는.
“제왕의 투구와 갑옷은 왕조시대 최고 군 통수권의 상징이다. 나라의 자주성도 나타낸다. 현재 국내에 조선 제왕의 투구ㆍ갑옷이 남아 있는 게 없다. 상징적 의미가 클 뿐만 아니라 문화재로서 가치도 높다.”

-오구라 컬렉션의 일부만 되찾자는 얘긴가.
“전부를 가져오는 게 제일 좋지만 현실적으론 어렵다. 오구라 컬렉션 가운데 조선 제왕 투구ㆍ갑옷, 금관총 출토 문화재, 창녕 출토 문화재 등 장물이거나 도굴품일 가능성이 큰것부터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불법 취득ㆍ반출 경위를 밝히는 게 쉽진 않을 텐데.
“고고학 발굴로 나온 문화재는 도굴의 가능성이 크다. 1965년 체결된 한ㆍ일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과 별개의 문제다. 미국 LA의 게티박물관은 기원전 300~400년에 제작된 테라코타 ‘하데스’ 두상이 도굴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올 1월 이탈리아 시칠리아로 되돌려 보내기로 결정했다.”

-환수 요구보다는 일본 측과 공동연구를 진행하면서 시간을 갖고 선의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런 분들의 의사는 존중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본이 선의로 되돌려 준 문화재가 얼마나 될까. 조선왕조실록이나 조선왕실의궤는 우리가 돌려받아야 할 합리적이고 정당한 이유를 일본 측에 꾸준하게 전달했기 때문에 환수가 가능했다. 일본이 먼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는 게 중요하다.”

-오구라 컬렉션은 우리가 해방 직후부터 환수를 요구했다.
“오구라 컬렉션을 수집한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일제 때 재력 있는 기업가였다. 막대한 재산으로 전국의 도굴범을 사주해 우리의 중요 문화재를 강탈했다. 워낙 악명이 높아 빼앗긴 문화재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외무성 문서에 따르면 1960년대 한일회담 때 일본 정부가 오구라 컬렉션의 일부를 산 뒤 한국에 줄 의향도 있었다. 그런데도 왜 받지 못했나.
“당시 우리 정부가 한일기본조약을 빨리 체결해 경제개발 자금을 받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외교적 실수다. 정말 좋은 기회를 놓쳤다. 아쉽다.”

-단체 이름에 ‘환수’ 대신 ‘제자리찾기’를 넣은 이유는.
“문화재 환수운동은 식민지를 겪은 나라들이 과거사를 치유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문화재를 환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되돌아와야 하는지, 어떤 의미를 담아야 하는지도 함께 고민한다.”

-미국ㆍ영국ㆍ프랑스 등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은 약탈 문화재에 대해 ‘우리 덕분에 문화재가 잘 보존됐다’고 주장한다.
“부도덕한 얘기다. 일본이 빼앗은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의 경우 1923년 관동대지진 때 대다수가 불타버렸다. 그러나 우리가 보관한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은 6ㆍ25 전쟁에서도 보존됐다. 외규장각의궤는 프랑스에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궤변이다.”

-오구라 컬렉션을 환수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나.
“무엇보다도 한국 정부가 오구라 컬렉션 반환을 요구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반출 과정에 대한 조사도 진행해야 한다. 2015년이면 한일기본조약 체결 50주년이다. 문화재뿐 아니라 강제 징용 배상, 종군 위안부 등 새로운 이슈에 대해 양국 정부가 논의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오구라 컬렉션은 ‘한ㆍ일 관계 2.0’의 표상이다. 일본 정부도 분명히 그렇게 인식할 것이다. 기회가 찾아온 셈이다. 우리가 머뭇거릴 경우 북한이 북ㆍ일 수교 협상을 벌일 때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오구라 컬렉션 중 일부는 북한 지역에서 가져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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