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다르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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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호 31면

타국에서 살면서 겪는 어려움 중 하나가 그 나라의 소통법에 적응하는 것이다.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2년간 고군분투해 온 나는 모국어만큼 외국어를 잘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언어습득만큼 중요한 것은 말하는 스타일인 화법을 이해하는 것이다.

 영국인들은 종종 ‘돌려 말하는(talking around the houses)’ 화법 때문에 비판받는다. 결론에 이르기까지 장황하게 설명을 하는 것이다. 한국의 소통법은 또 다르다. 사실 필자는 소통법의 흥미롭고도 혼란스러운 조합이 한국과 영국을 이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조금 피곤한 기색으로 사무실에 도착하면 한국인 동료들은 내게 반드시 “콜린, 오늘 얼굴이 안 좋아 보여요”라고 아주 솔직한 평가를 내려줄 거다. 나를 걱정해 주는 것이고 보이는 것을 그대로 설명하는 것일 테지만 이렇게 솔직하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직접적인 화법에 영국인이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 게 사실이다.

 또 하나 한국에서 자주 듣는 표현이 “이미 말씀드린 대로”이다. 한국인 친구들로부터 이 표현은 강조의 뜻으로 사용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에 익숙하지 않은 영국인들은 이 말을 들으면 화자가 청자에게 면전에서 대놓고 좌절감을 표현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저번에 한번 말했을 때 내가 못 알아들은 것 같아서 화가 났나요?”라고 반응할 수 있다.

 직설적인 화법과는 반대로 문서를 통한 소통에선 다른 면이 엿보인다. 그간 한국인으로부터 받은 수많은 영문 e메일을 읽을 때마다 적어도 3~4 문단 정도를 읽어야 발신자가 e메일을 보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요즘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봄 기운이 완연해지고 있습니다”라는 문장 뒤에는 영국대사관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설명하는 문장이 이어진다. 이렇게 기분 좋은 문장들 뒤에야 발신자가 정보를 요청하거나 부탁을 하는 것이란 걸 알게 된다. 이러한 스타일에 대해 한국인 동료들에게 물어보면 “부탁 좀 들어주실래요?”라고 바로 쓰는 건 너무 직설적이고 예의 없어 보여서 그런 거라고 설명해 준다.

 영국인들이 이해하기엔 힘든 점이다. 영국인들은 말을 할 때는 간접적인 화법을 사용하지만, 반대로 다른 이들의 말을 들을 때는 그들이 바로 결론에 도달해 주길 바란다. 이런 점은 다른 국가 사람들에게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라고 나도 동감한다.

 한 친구가 영국인들이 하는 말의 속뜻을 알려주는 가이드를 보내준 적이 있다. 재미를 위해 과장한 면이 없진 않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도 아니었다.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영국인이 “그거 명심할게 (I’ll bear it in mind)”라고 하는 건 곧 잊어버릴 거라는 뜻을 아주 예의 바르게 말하는 것이다. “다른 옵션을 함께 생각해 볼까?(Could we perhaps consider some other options?)”라는 건 지금 얘기되고 있는 아이디어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가장 이상한 건 “나쁘지 않아(not bad)”의 속뜻은 “좋다(good)”이지만 “꽤 좋다(quite good)”는 대체로 “조금 실망스럽다(a bit of disappointing)”를 뜻한다. 정말이지 영국인의 속내는 알 수 없지 않은가?

 각국마다 이렇게도 다른 소통법은 어렵기도 하지만 새로운 문화 경험을 풍부하게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소통법은 흥미롭고도 중요하다. 만약 다음번에 한국인 동료가 “제가 전에 말씀드린 대로”라고 말한다고 해도 예민한 반응은 접어두려 한다. 또 내가 “정말 흥미롭다”고 말할 때는 속으론 반대로 생각하면서 말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약속한다.



콜린 그레이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법학을 전공한 후 기자로 일하다 외교관으로 변신했다. 스페인 등에서 근무하다 2011년 한국에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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