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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MD로 핵 평형 틀 깨지면 중·미·러 전력 재편성 불가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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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홍콩 봉황TV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인 ‘세기대강당(世?大講堂)’엔 중국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출연해 한 시간 동안 강의를 한다. 지난주에는 진찬룽(金燦榮·사진) 런민대(人民大)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이 출연해 한반도 관련 특강을 했다. 그가 했던 강의 동영상은 중국 인터넷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만큼 중국 사회가 최근 북한 핵실험으로 불거진 한반도 위기 상황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진찬룽 부원장은 “미국의 미사일방어망(MD)에 중국보다 러시아가 더 민감하다”며 “한국이 미국형 MD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진 부원장을 25일 오후 1시간40분 동안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미국은 요즘 최첨단 MD를 괌 기지에 설치하고 있다. 중국 측은 이것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MD는 장거리 핵 미사일을 공중 요격하는 시스템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한국으로 발사하면 사정거리가 너무 짧아 미국형 MD가 소용없다. 미국이 제공하는 MD에 한국이 가입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그래서 중국 측은 미국의 MD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본다. 미국의 MD가 한국을 전초기지로 하려는 게 아닌가. 핵무기를 가진 강대국, 특히 미·러·중 사이에서는 ‘핵무기 상호 균형’이라는 틀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데 핵무기를 공중 요격하는 MD는 이런 핵 평형의 틀을 깨버리는 것이다. 각국의 전력 재편성이 불가피하다.”

-러시아도 미국의 MD에 민감한데.
“중국보다 러시아가 더 민감할 것이다. 러시아엔 아직 자체 MD가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핵무기가 미국의 MD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셈이다. 러시아는 재래식 무기에서도 미국에 뒤진다. 러시아는 대국으로서 핵을 가졌지만 MD 개발에 착수할 경제적 역량이 떨어져 대국으로서 마지막 황혼기를 맞고 있다.”

-그러면 중국은 어떻게 대응하나.
“중국 국방정책의 기본은 ‘미국이 갖고 있는 것은 우리도 다 갖는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력 때문에 가능하다. 중국은 자체 MD 개발에 이미 착수했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미국도 기술적 완성도에서는 아직 부족하다.”

-미국은 한국에 MD 가입을 권한다.
“MD는 기본적으로 중·미 사이의 문제다. 우리도 MD 개발을 하고 있으니 직접 미국에 얘기할 것이다. 미국이 중단하면 우리도 중단할 용의가 있다.”

-미·중 경쟁이 가열될 것으로 보나.
“양국이 계속 다투고 껄끄럽겠지만 큰 충돌은 없을 거다. 중국이 추구하는 ‘신형대국관계’ 정책을 미국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본다. 미국의 외교전문잡지 포린폴리시는 ‘2040년께 중국 경제가 미국의 세 배가 된다’는 예측을 실었다. 그때가 되면 중국은 미국을 초월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수준의 대국이 될 것이다. 이는 세계 전략 지형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인은 실용적인 사람들이다. ‘이기지 못하면 같은 팀이 돼라’는 자신의 속담대로 할 것이다. 이것이 장래 미·중 관계를 낙관하는 이유다.”

-최근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소속의 덩위원(鄧聿文) 학습시보 부편집인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중국은 북한을 포기해야 한다’는 기고문을 게재해 파장을 일으켰다. 이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덩위원은 그런 주장을 했다가 오히려 중앙당교로부터 포기를 당했다.(웃음) 중국 입장에선 대북 전략의 큰 틀이 안 바뀌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북한을 다루는 중국의 전술은 이미 바뀌었다.”

-알 듯하면서도 애매하다.
“중국의 현재 대북 전략은 안정적이다. 하지만 전술적 변화는 이미 존재한다. 유엔 안보리 제재조치를 강하게 실행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인가 아니면 공산당 지도부의 판단인가.
“상황을 보는 내 개인의 판단이다.”

-현 상황에서 중국은 왜 북한을 포기하지 못하나.
“북한은 중국의 이웃이다. 순망치한 관계도 있고, 조·중 조약도 있다. 북한이 (핵실험으로) 나쁜 짓을 한 것은 맞지만 완전히 북한 탓만 할 수 없다. 한반도에는 여전히 한·미·일과 북·중·러가 대립하는 냉전 양상을 보인다. 우리가 간단하게 서방 편을 들 수 없다. 북한이 느끼는 안보 불안감도 이해해 주는 게 필요하다. 중국으로선 이 모든 것을 고려한다.”

-중국의 대북 정책에서 핵심적인 고려 요소는.
“첫째, 북한의 변화 정도와 지역사회 안정을 해치는 도발 행위다. 둘째, 미·중 관계다. 셋째, 중국의 민의다. 이것들을 고려해 중국은 전략적 판단을 할 것이다. 민의의 변화는 전략적 판단에 갈수록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민의가 언제쯤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나. 구체적인 시간표가 있나.
“앞으로 5년 동안 두드러진 변화가 있을 것이고 10년 후면 피할 수 없는 변화가 생길 것이다.”

-한반도 위기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나.
“중국 측은 사실 한국에 대해서도 걱정했다. 이전에 한국은 북한의 도발에 온순했다. 하지만 변했다. 북한의 국지도발 때도 미군이 사실상 자동 개입하고 한국이 곧바로 자위권을 행사하기로 바꾸었다. 이러면 쉽게 확전이 될 수 있다. 북한의 목적은 전쟁이 아니다. 북한의 벼랑 끝 전략은 예전과 목표가 똑같다. 미국과 담판하기 위한 것이고 김정은의 국내 정치용이다. 김정은이 어려서 걱정이다. 상황에 대한 오판이 있을 수 있다.”

-출구전략은 무엇인가.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가 최근 미국에 갔다. 나는 그가 북한에도 갈 것이라고 본다. 중국 지도부가 사태를 수습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건 큰 의미가 있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중·장기적 ‘로드맵’은 뭔가.
“우선적 목표는 북한의 핵개발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이것으로 우리는 몇 년간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러면서 중국은 경제적으로 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하고, 한·미 양국은 안보 분야에서 북한의 걱정을 덜어주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 역시 5년 정도로 보고 있다. 5년 후에도 북한이 바뀌지 않으면 전략적 변화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6자회담의 다른 나라와 함께 큰 폭의 협조도 할 수 있다.”

-한국은 남북한 통일을 위해 중국의 협조를 기대한다. 중국은 한국에 무엇을 바라는가.
“남북 관계 개선을 바란다. 중국은 주변 환경의 안정을 원한다. 한국이 북한에 양보하는 마음도 가졌으면 한다. 한국은 이미 남북 체제 경쟁에서 승리했다. 북한한테 무시당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역사적인 긴 호흡에서 남북 관계를 봤으면 한다. 북한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란다. 북한 경제가 너무 나빠지면 한국의 통일비용 부담도 커지지 않겠는가.”

-중국이 한국 주도의 통일을 지지할 수 있는 조건을 솔직히 말해 달라.
“미군 철수는 반드시 해야 한다. 중국은 한반도에 외국 군대가 주둔하는 걸 용납할 수 없다. 또 하나 통일 한국은 영토 야심을 가지면 안 된다.”

-만주 지역을 말하는가.
“그렇다.”

-중국에서 대북 정책은 누가 결정하는가. 외교부, 당 대외연락부, 군부 등 여러 가지 설이 나온다.
“그런 조직은 모두 정책 제안만 할 수 있다. ‘만약 A라면 B라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만약 C라면 D라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조언하는 수준이다. 결국은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이 결정한다.”

-한국은 미·중 사이에 끼여 전략적으로 난감한 위치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한국은 이미 중견국이다.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안으로는 경제 발전에 힘쓰고, 밖으로는 남북 긴장관계를 줄이는 식으로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여력이 있으면 미·중 관계가 협력관계로 나갈 수 있도록 촉진제 역할을 했으면 한다. 아태지역에서 그런 역할을 할 나라는 한국과 호주 정도다.”



진찬룽 1962년 출생.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했다. 중국사회과학원 석사. 베이징대학 국제관계학원 박사. 중국국제관계학회 부회장.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 특임연구원. 중국개혁개방논단 상임이사.

베이징=써니 리 칼럼니스트 boston.sunny@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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