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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추경 부끄럽다" … 자기 반성 쏟아진 국토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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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는 전날 예산심사소위에서 결정된 추가경정예산 심사안을 의결하는 자리였다. 의사봉만 두드리면 끝날 회의였지만, 정회를 거듭한 끝에 29일 다시 회의를 열기로 했다. 국토위가 정부의 추경안보다 4300억원이나 증액한 심사안을 통과시키려 한 게 문제가 됐다.

(중앙일보 4월 26일자 2면)

 국토위가 증액한 예산은 대부분 도로·철도 등 지역구 현안 사업에 배정됐다.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17조3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추진하자 국토위가 이때를 이용해 자기 지역구 선심성 예산을 끼워넣으려 한 셈이다. 연말 예산심의 때 지역구 민원 예산을 쪽지에 적어와 심사를 맡은 위원들에게 전달해 관철시키는 ‘쪽지 예산’에 빗대 ‘쪽지 추경’이란 말이 나왔다.

 이에 대해 국토위에선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주승용(민주통합당) 위원장이 “찬반토론을 해달라”고 요청하자 13명의 의원이 의견을 냈다. 대부분 심사안을 비판하고 재심사를 촉구했다.

 ▶새누리당 조현룡(경남 의령·함안·합천)=“본예산에는 한푼도 없는데 (지역예산을) 추경에 잔뜩 집어넣었다.”

 ▶민주당 이미경(서울 은평갑)=“사업의 타당성, 연내 추진 가능성, 일자리 창출 가능성 등 필요한 부분을 재검토해야 한다.”

 ▶민주당 박수현(충남 공주)=“중앙일보에 지역구 민원성 쪽지 예산이란 용어로 비판적 보도가 나왔다. 저 역시 반성한다. ”

 ▶민주당 윤후덕(경기 파주갑)=“솔직히 부끄럽다. 이번 추경은 전액을 국채를 발행해서, 빚을 내서 집행하는 거다. 더더욱 국민 부담이 커지는 추경인데, 우리가 심도 있는 토의를 했는지 자문해야 한다.”

 ▶새누리당 함진규(경기 시흥갑)=“ 이런 결정이 났는데 (위원회로부터) 전화 한 통 못 받았다.”

 ▶민주당 민홍철(경남 김해갑)=“ 무려 15조8000억원의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고 한다. 정부안에서 증액하지 말고 그냥 통과시키자.”

 ▶새누리당 이이재(강원 동해·삼척)=“추경이 선심 쓰듯 심사되면 안 된다. 내 지역구 예산은 하나도 안 냈다. 재논의돼야 한다.”

 ▶민주통합당 신기남(서울 강서갑)=“관행에 따르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잘못된 게 있다면 의연하게 다시 논의하면 된다.”

 ▶새누리당 강석호(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 예결소위에서 다같이 심사하고 (비판 보도가 나오니) 여기 와선 아니라고 하면 스스로 부끄러운 거다.”

 비판 의견이 이어지자 주승용 위원장은 “반대하는 의원이 많으니 재심사를 할지, 토론을 계속할지 여야 간사 간 협의가 필요하다”며 정회를 선언했다. ‘쪽지 추경’에 급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후 여야 간사는 29일에 회의를 다시 열기로 합의했다.

 새누리당 간사인 강석호 의원은 “큰 사업인데도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매칭을 받지 못한 사업, 당장 추경의 효과를 볼 수 없는 신규 사업 등을 걸러내 수정안을 만들겠다”며 “최소 1000억원 이상 삭감된 안을 가지고 회의를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단 4300억원을 증액한 원안 중에서 가장 비판이 많은 예산 정도만 수정하고, 3000억원 대에 이르는 증액안을 다시 마련하겠다는 얘기다.

 익명을 원한 국토위 관계자는 “전체회의의 분위기는 ‘완전 재검토’였지만, 의원이 지역 예산을 깡그리 무시할 수 없어 타협점을 찾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쪽지 추경’에 대한 비판은 국회 본회의 경제·사회·교육·문화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도 나왔다.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은 현오석 경제 부총리에게 “국회의원이 지역구 예산을 챙길 수 있지만 본예산 심의 때 해야지 추경에 끼워넣는 건 매우 잘못됐다. 어떻게 대응하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현 부총리는 “추경의 취지를 잘 이해하시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상임위 증액안을 넘겨받아 심의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등이 무리한 요구를 걸러내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안전행정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과의 회동에서 “추경에서 쪽지 예산 같은 것은 통하기 어렵지 않겠느냐. 쪽지가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었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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