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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돌아온 풍운아' 김무성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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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인터뷰 도중 김무성 의원은 대뜸 “내가 왜 인터뷰한다고 했지?”라고 했다. 계파와 공천, 새 질서 등 민감한 사안에 말을 쏟아내다 멈칫하는 느낌이었다. 그는 당분간 ‘로키(low key)’로 움직일 거란 전망이 많다. 그러나 그의 별명은 ‘무대(김무성 대장)’다. [부산=송봉근 기자]

새누리당 김무성(62) 의원은 ‘풍운아’라 불리길 좋아한다. 그의 정치 역정을 들여다보면 ‘풍운아 김무성’이란 말이 제법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의 정치적 뿌리는 원래 야당의 중심 계보였던 상도동계다. 그는 1980년대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비서로 정계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YS가 1990년 3당합당을 하면서 여당(민자당) 정치인이 됐다. 이후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을 거치면서 4선의 관록을 쌓았고, 이번 4·24 재·보선에서 승리해 5선 중진의 반열에 올랐다.

 그새 그는 두 번이나 연거푸 공천을 받지 못했다. 18·19대 총선 때의 일이다. 하지만 두 번 모두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2008년 18대 총선 때 공천받지 못한 것은 박근혜계를 향한 이명박계의 견제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는 무소속 출마를 감행했다. 부산에서 ‘친박 무소속’ 바람이 불면서 그는 부활해 당으로 돌아왔다. 한동안 ‘친박 좌장’이라 불리던 그는 세종시 문제를 둘러싸고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 정치적으로 갈라섰다.

 결국 박근혜계가 공천권을 장악한 지난해 19대 총선 때 그의 지역구였던 부산 남구을이 전략공천지역으로 분류되면서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엔 무소속 출마를 하지 않았다. 고민 끝에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그러다 대선 후반 박근혜 캠프의 컨트롤 타워인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으며 박 대통령 곁으로 돌아왔다. ‘친박 좌장’에서 ‘탈박(脫朴)’, 탈박에서 ‘복박(復朴)’, 그리고 이제 다시 국회로 돌아온 그를 24~25일 이틀에 걸쳐 만났다.

당선 후 한진중공업 노조에도 감사 인사

 부산 영도구를 상징하는 영도다리 바로 옆에 마련된 선거사무실. 김 의원은 빨간색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청바지 차림에 역시 빨간색 ‘기호 1번 김무성’이란 글씨가 큼지막하게 쓰인 점퍼 차림이었다. 투표가 끝나기까지 2시간가량 남은 24일 오후 6시. 부산 영도구 선거캠프 근처 ‘초원복집’에 김 의원과 나란히 앉았다. 그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 낙승이 예상되는데 표정이 밝지 않다.

 “내 평소 표정이 이렇다.”

 그는 “중앙정치인들은 영도다리를 건너오지 말라”고 했음에도 선거 내내 사람들 방문에 적잖이 시달렸다 한다. “워낙에 많은 사람이 찾아오니 유세 도중 쉬는 시간을 둬도 그 짬을 또 어떻게 알고 만나러 오더라. 그럼 또 1시간씩 얘길 들어줘야 하니…. 유세 첫날 일정을 마치곤 김 의원이 ‘일정 누가 짰어?’라고 나무랄 정도였다.” 선거를 도왔던 부산시의원 출신 안성민 본부장의 설명이다.

1992년 대선을 앞두고 부산의 기관장들이 지역감정을 부추겨 선거에 이용하자고 논의하다 도청으로 드러난 게 ‘초원복집 사건’이다.

 - 초원복국. 여기가 거긴가.

 “여기는 본점이고, 사건은 지점에서 터졌다. 그릇에 떠 식초를 쳐서 먹는 복국 스타일은 원래 부산의 ‘제주 복국’에서 먼저 시작했고, 이후 초원복국과 금수복국으로 퍼져나갔다.”

 - 지나간 얘기지만 공천을 받기 어려울 거란 얘기도 있었다.

 “공천 신청을 나 혼자 했는데, 뭘. 경선에 나오려던 사람들 중 다수가 ‘김무성이니까 양보한다’고 하더라.”

 밥을 먹는 중에도 그의 휴대전화는 계속 울려댔다. 두어 술 뜨던 그는 “먼저 가야겠다”며 사무실로 돌아갔다. 개표 결과 65.7%라는, 영도 단일 선거구로 역대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다. 당선 소감을 묻는 인터뷰 도중 당권 도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그는 “현 지도부가 리더십을 갖고 임기를 잘 마무리하길 바란다”며 선을 그었다.

 이튿날인 25일 오후 2시, 선거캠프 사무실에서 기자와 다시 마주 앉았다. 선거 벽보로 둘러싸였던 사무실엔 축하 화환들이 답지해 있었다.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빨간 점퍼와 청바지, 빨간 운동화 차림은 그대로였다.

 - 득표율은 예상했나. 역대 최고다.

 “영도는 호남과 제주 출신 주민들을 합치면 50%가량 된다. 역대 투표 결과를 놓고 봐도 50~55% 수준이면 대성공이라 생각했다. 사실 당선되더라도 득표율이 낮으면 체면이 손상될 것 같아 부담이 됐다. 나는 이 지역에서는 ‘호남의 벽’이 무너졌다고 생각한다. 호남향우회를 많이 접촉했다. 호남에서 영도로 나를 지원하러 많이들 오셨다. 오늘 오전엔 한진중공업 노조 사무실에도 가서 감사 인사를 드렸다. 지지선언을 해줘 고마웠다.”

 때마침 김 의원의 전화벨이 울렸다. 전날부터 전화를 잘 안 받았다는 그였지만 이번엔 전화를 집어들며 “네, 허 실장님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청와대 허태열 비서실장의 전화였다. 김 의원은 경상도 사투리로 “제대로 못 쉬었습니다. 자주 좀 만납시다. 수시로 만나 상의 좀 하입시다” 하며 끊었다. 통화는 채 1분을 넘기지 않았다.

 - 이제 대통령 축하 전화만 오면 되겠다.

 “주시겠지. 내가 어젠 전화를 거의 못 받았다. 지금 축하 메시지만 350개 와 있다.”

 -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어떻게 봐야 하나. 주종관계인가, 동지관계인가.

 “(기자를 빤히 쳐다보며) 나는 항상 민주성을 강조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종관계를 얘기하는 건 언어도단이다. 동지적 관계다. 그것은 김무성과 박 대통령의 관계뿐 아니라 초선 의원과 박 대통령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 그럼 박 대통령과의 정서적 관계는 뭔가. 애정인가, 애증인가.

 “허허허…. 존경한다.”

 - 인사 과정에서 소통 문제가 많이 거론됐다. 일각에선 엄격하고 원칙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 스타일 때문이란 얘기도 있다.

 “현재 언론 환경을 봐라. 옛날처럼 몇몇 후보자를 흘려서 반응을 본다? 이름만 나오면 난도질을 당한다. 과거엔 부귀영화나 명예가 중요했는데, 지금은 가정의 행복이 더 중요한 시대다. 장관 후보로만 거론되면 사생활이 죄다 노출되니까. 일 잘한다 싶은 사람을 쓰기 어렵다. 인사 부분에선 충분히 이해한다.”

 - 인사가 아닌 다른 부분은?

 “…. 밑에 있는 사람이 문제지, 뭐.”

공천 책임졌던 정홍원 총리도 축하 난 보내

 - 새누리당 내에서 ‘친박 소멸론’이 나온다.

 “정치에서 계파 정치가 없을 수는 없다. 친박이란 계파가 그동안 고생 많이 해서 정권 창출에 성공했으면, 그 다음 할 일은 모두가 소외감을 갖지 않도록 당 모두가 친박이 돼야 한다. 친박계는 없어졌다. 박 대통령도 그걸 원하시고.”

 - 친박계인 이주영 의원과 최경환 의원 간의 원내대표 경선이 화두다.

 “노 코멘트.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 보스 기질이 강하다는 평이 많다. 친박의 2인자이자 좌장이라 불리기도 했다.

 “친박의 2인자, 좌장…. 이건 소멸된 언어다. 대통령 선거 해서 정권 창출했으면 그 세력은 이제 끝이 난 거라고 봐야지. 새로운 질서가 형성돼야지.”

 - 새 질서가 뭔가.

 “5년에 한 번씩, 같은 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세력이 바뀌는데 아직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지 않은 것 같다.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그 구심점이 풀어야 한다.”

 -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박 대통령이 새 질서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다.

 “새 질서는…, 청와대와 당의 관계가 빨리 설정돼야 한다. 내 역할이 무엇인지 인지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있다. 그래서 자기의 권리는 찾지 못하고 되레 타인의 권리를 가져오려는 것도 있다.”

 이 대목부터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민주성과 후진성. 이번 인터뷰에서 유독 강조한 말이다. “인사청문회를 봐라. 민주주의 전당인 국회에서 의원이 후보자를 죄인 다루듯 한다. 그만큼 국회가 비민주화돼 있다는 거다. 후보자도 죄인 취급 당해도 저항하는 걸 본 일이 없다. 이들도 민주성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그걸 확립하자는 게 새 질서다.”

 - 결국 정당 민주화가 새 정치의 핵심인가.

 “정당민주주의의 요체는 공천권이다. 공천권을 지역주민에게 줘야지, 권력 잡았다 하면 정적 쳐버리고. 그래서 나는 두 번이나 희생당했다. 우리가 야당 10년 하면서 얼마나 고생했나. 그걸 버텨가며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그렇게 됐으면 이 대통령도 ‘여러분 덕분에 대통령이 됐다’고 고마워했어야지, 상장은커녕…. 그게 비민주성의 발로다. 미운 놈 쳐버린다는 거 말이다. 19대 때도 그렇다. 박근혜 권력이 탄생하니까 밑에서 이상야릇한 제도를 만들어 날 함정에 몰아넣었다. 심지어 공심위에서 정한 걸 ‘헌법’이라 일컬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결국 돌아가게 됐다. 난 누가 아무리 죽이려 해도 죽지 않는 김무성이다.”

 19대 공천 당시 컷오프룰을 ‘헌법’에 비유했던 자는 당시 공직후보자추천위원장이었던 정홍원 국무총리였다. 이날 김 의원과 인터뷰를 진행한 책상 위에는 딱 하나의 난 화분이 놓여 있었다. ‘국무총리 정홍원’이란 표지가 달려 있는 화분이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꽤 길었다. 대화 중에 책상을 치기도 했다.

“18대 때는 나를 원내대표로 추대했다. 공천조차 안 준 나를. 나중엔 비상대책위원장 맡겼지. (친이계의 좌장으로 재·보선에 출마한) 이재오 의원한테 내가 공천장을 줬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이 대통령은 내가 원내대표 할 때 제일 편하고 일 많이 했다며 고맙다더라. 웃기는 일이 벌어진 거다. 이번에도 그렇다. 나를 내쳐놓고선 당권 잡고, 선대위 구성하고 했으면 잘해야지. 그러고선 또 총괄본부장으로 데려갔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이 더 이상 벌어져선 안 된다.”

 - 결국 김무성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겠다.

 “나는 철저한 정당인이다. 새누리당 의원 중 정당 생활을 가장 오래 했다. 민주화 투쟁부터 시작했다. 민주주의를 복원해야 한다.”

 - 정치 신인의 진출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그들도 지역에서 지명도 올려야지. 권력자 옆에서, 정당 권력자에 기생해 공천을 달라는 게 잘못된 거다. 이는 여야 모두 마찬가지다. 자기와 이해관계 있는 사람에게 공천 주려고 동지들 피눈물 나게 하고. 당원들은 그때부터 분열된다. 당에 충성하던 사람들이 떠나버리는 거다. 동료를 제일 잘 아는 게 우리 내부 사람들이다. 정치는 현장 민주주의다. 탁상·이론·교과서 민주주의가 아니다. 현장에 강한 사람이 제일 중요한 법이다.”

 - 19대 총선 때 ‘보수의 분열을 막겠다’며 불출마 선언한 게 인상 깊었다. 쉽지 않았을 텐데.

 “대선 이후 그런 일 당했다면 무조건 당 만들어서 출마했을 거다. 새누리당 공천 못 받은 20명, 자유선진당 15명 하면 35석의 정당이 가능했다. 전국에 후보 냈으면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졌을 테고, 곧 대선 패배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대선 승리였다.”

 - 며칠이나 고민했나.

 “휴우…. 며칠 했다. 어떤 형태로 출마한다고 결론 내렸는데, 출마 발표 당일 아침에 마음을 다잡았다. 순리대로 하자 싶었다.”

"부산만의 맹주가 될 생각은 없어”

 - 행정중심복합도시, 즉 세종시를 만든 건 잘못됐다는 소신은 변함없나.

 “(끄덕끄덕)”

 - 해양수산부를 부산에 설치하는 건.

 “이중성이 있다. 5년 만에 부활하는 해수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세종시에 있어야 한다는 논리와, 부산이 해양수산의 큰 중심이니 부산 발전을 위해 와야 한다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더 고민해야 할 문제다.”

 - 싫든 좋든 ‘부산의 맹주’ 소리를 듣게 될 텐데. 민주당에선 문재인 의원이 부산을 상징한다.

 “문재인은 두 석밖에 없는 정당에서 맹주가 될 수 없다. 나는 부산만의 맹주가 될 생각은 없다. 우리나라가 너무 수도권에 치우쳐 발전됐기 때문에 반대쪽인 부산이 수도권에 대응해 발전해야 한다. 부산엔 시포트(바다항구)와 리버포트(낙동강 하구), 에어포트(김해공항) 등 트라이포트가 있다. 인프라가 좋고, 싱싱한 먹거리가 있다. 은퇴한 부자들이 부산에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드라마 ‘아이리스2’에서 테러리스트로 출연한 김무성 의원의 외동아들 고윤(본명 김종민)씨.

인터뷰 당일 인터넷에선 ‘김무성 아들’이 화제였다. KBS 2TV 수목드라마 ‘아이리스2’에 테러리스트로 출연했던 탤런트 고윤(25·본명 김종민)씨가 1남2녀 중 막내다. 아버지의 후광이 부담스러워 예명을 쓰고 있다.

 - 아들이 화제다. 반대 안 했나.

 “아들에게 늘 ‘네가 원하는 거, 좋은 거 하라’고 했다. 정치 하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정치는 빼라고 했다. 가족의 희생이 너무 크다. 대학 1학년 마치고 군대 다녀와선 연기를 하고 싶다더라. 말렸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해보고 싶은 거 하라고 가르치시지 않았느냐’더라. 그래서 하라고 했다. 다만 나와의 관계가 알려지면 불리하다는 점은 강조했다.”

 - 부인(최양옥·56)은 어떻게 만났나.

 “선봤다. 세 번쯤 보고 결혼하기로 하고 두 달 남짓 만에 결혼했다.”

 - 별명이 왜 ‘무대’인가. 마음에 드나.

 “‘김무성 대장’이라고, 후배들이 그렇게 불러주니까.”

 - 정치인 김무성의 최종 목적지는 어딘가.

 “멋있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백의종군할 때도 ‘만약 당을 옮기면 후배들이 얼마나 실망하겠나’란 생각을 많이 했다. 통 큰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부산=권호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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