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불통'이 오해였나 아니면 바뀐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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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 대변인, 그냥 자리에 앉아서 식사하세요. 제가 사회도 보면서 할게요.”

 24일 낮 12시, 청와대 본관 1층 충무실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연출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국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46명을 초청해 사회자 없이 직접 토론에 나선 것이다. 대통령의 인사말에 이어 국장단 대표들이 답사와 건배 제의를 한 것까지는 이전 대통령들 때와 마찬가지였다. 파격은 그 직후에 나왔다. 박 대통령은 아예 김 대변인을 자리에 앉게 하더니 “오랜만에 오셨는데 궁금한 걸 다 물으시고 저도 최선을 다해서 답변하겠다”면서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할까요, 아니면 손을 들어서?…”라며 행사를 주도했다. 참석자들은 당황하는 듯했다.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들을 포함해 60명에 가까운 인원이 참석한 오찬장에서 대통령과 질의응답이 이뤄지리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두 가지 질문에 대해 박 대통령이 진지한 태도로 답변하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경제가 어려운데 대책이 없는 것 아니냐.” “친인척 관리를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대통령만 되면 장관을 마구 바꾸더라”는 등 건의와 격려, 비판은 물론 설교를 방불케 하는 내용까지 쏟아졌다.

 이날 오찬에선 ‘박근혜 스타일’ 몇 가지가 확인됐다. 지난 12일 민주통합당 의원들과 저녁 만찬을 한 뒤 “알고 보니 불통이 아니더라”는 칭찬을 듣게 했던 바로 그 스타일이다.

첫째, 유머다. ‘얼음공주’라는 별명과는 달리 박 대통령은 우스갯소리를 많이 했다. “편집국장과 기자가 요술램프를 발견했더래요. 먼저 기자가 소원을 말했어요. 아주 좋은 집에서 편히 쉬고 싶다고. 램프의 요정이 바로 소원을 들어줬죠. 그런데 편집국장이 램프의 요정한테 ‘지금 마감이니 조금 아까 있던 기자 빨리 데려오라’고 하는 바람에 바로 불려왔다네요.” 이런 식이었다. 둘째는 성실성이다. 박 대통령은 받은 질문을 노트에 적고, 빠짐없이 답변을 해줬다. 그 바람에 대학 강의실을 방불케 하는 열기 속에서 2시간 넘게 토론이 이어졌다. 세 번째는 진지함. 박 대통령은 “ 대통령이 저렇게까지 상세하게 설명해도 좋은 걸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또박또박 답을 했다. 넷째는 겸손. 나이로 보나 지위로 보나 박 대통령이 가장 웃어른이었지만 모두에게 점잖고 공손하게 대했다. 토론이 끝나자 대화 내용이 적힌 메모용지들을 잘 접어 주머니에 넣는 모습도 보였다.

 이것이 박 대통령의 원래 모습인데 그동안 ‘불통’ 이미지가 잘못 씌워졌던 건지, 아니면 박 대통령이 좀 바뀐 건지는 알 수 없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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