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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의 혁조정신과 나의 절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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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명림
연세대 교수
베를린자유대 초빙교수

조용필의 신곡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이다. 시간을 거스르고 세대를 아우르고 영역을 가로질러 가위 조용필 신드롬이라고 불러 부족함이 없는 문화현상이라 할 만하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의 원조다운 문화창조 능력인 것이다.

 무엇이 63세 가왕(歌王)을 문화현상의 중심으로 불러냈는가? 조용필 자신의 혁명적 창조정신 때문이다. 줄여서 혁조(革造)정신으로 불러도 좋겠다. 그는 40년 내내 정상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늘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끝없는 자기부정을 통해 자신의 새 세계를 창조해 왔다. 그에게 자기 극복은 창조의 어머니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중의 마음을 읽고 시대 흐름과 조화를 이루는 데 발군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혁명과 조화의 결합, 즉 또 하나의 혁조(革調)정신이었다.

 그러나 그의 혁조는 자기 혁신 및 대중과의 조화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한국적 정서와 현대(서구)음악의 조화와 융합에서도 독보적이었다. 둘 모두와 함께 가되 둘 중 어느 하나에도 끌려가지 않는 공존과 혼융은 자신만의 독자적 음악세계를 창조해 낸 원동력이었다. 일찍이 조지훈이 한국 문화의 최고 정수(精髓)가 창조되는 핵심 양태로 지적했던 방식이었다. 혁명·조화·융합·창조야말로 세대를 넘어 지속되고 있는 조용필 현상의 열쇳말이었다. 바다는 모든 색깔의 강물을 받아들이지만 자기 고유의 색을 결코 잃지 않는다.

 혁조정신의 최대 기여는 유행(가)의 폐지와 극복이었다. 조용필의 노래는 삶의 어느 한 연령대에 듣고 지나가거나, 특정 장르가 유행할 때 등장했다 사라지는 음악이 아니라 우리네 마음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언제나 불러내어 위로받을 수 있는 대화상대였다. 언제든 볼 수 있는 명화들처럼 우리는 수시로 그의 명곡들과 만나 우리 마음을 달래고 매만지고 회복받아 왔다. 예술의 진정한 존재 이유인 것이다.

 기실 조용필의 노래는 가장 넓다는 그의 장르·음역·음폭보다 더 넓은 마음의 넓이와 주제의 폭을 포괄해 왔다. 그의 노래는 우리들 일반적 삶의 거의 모든 감정과 정서를 포괄하고 있다. 동시에 그 넓이는 마구 내지르지 않는 도저한 깊이와 절제의 아름다움, 곧 승화의 미학과 만난다. 누구나 자기 고통과 내면 마음의 크기만큼 타인을 이해할 수 있듯 진정한 거장만이 도달할 수 있는 균형감각과 공감능력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노래가 순수에의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우리를 열광하게 하며, 마침내 엉덩이와 어깨를 들썩이게 하여 공연(公演)은 끝내 관객과의 공연(共演)이 되며, 독창은 매번 청중과의 합창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삶의 쓸쓸함과 발랄함, 슬픔과 기쁨, 위무와 희망, 꿈과 아픔, 고단함과 그리움, 사랑과 외로움, 경쾌함과 무거움…. 어느 쪽을 만져주건 그의 노래는 종국에는 마음이 걸러지고 맑아지는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큰 슬픔으로 그의 노래와 함께 실컷 울고 난 뒤에조차 감정의 찌꺼기가 남지 않는 어떤 상큼함이나 개운함을 말한다. 그의 노래가 운문으로서의 삶이 갖는 정제된 본질을 터득했기 때문일 게다. 부분적이고 섬세하며 조촐한 마음 상태, 곧 시적 감수성을 말한다.

 정제된 시적 감수성은 삶의 가장 중요한 모티프의 하나다. 조용필이 데뷔하던 시점의 새로운 시(인)들의 등장에 대한 평문(評文)에서 김우창은 일찍이 덜 직접적이고 덜 단순한 시적 감수성, 내면세계에 대한 섬세한 감각, 조촐한 도덕적 감성과 호감의 관계를 말하며 이 점을 짚어준 바 있다. 정제된 시적 감수성은 타인을 향해서는 공감능력이지만, 자기에겐 내적 규율로 귀결된다. 높은 경지에 도달했음에도 고압적이지 않은 조용필의 질박한 삶의 태도가 우리 마음을 더 깊고 더 멀리 움직이는 연유다.

 조용필은 “음악은 내게 일이 아니라 삶”이라고 말한다. 온 삶을 걸겠다는 마음은 그를 절창과 득음의 경지로 밀어올렸다. 그가 노래에서도 언급한 고흐는 죽음의 순간 발견된 부치지 못한 편지에서 “우리는 오직 그림으로써만 말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자기의 그림들을 자신의 전 존재를 건 땀이요 혼이요 삶이라고 보았다. 그의 그림이 최고가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인생은 한 편의 노래다. 내 인생은 내가 작곡하고 내가 작사하는 나의 노래다. 내 삶의 작곡자는 나이고 작사자도 나일 수밖에 없다. 나의 전 존재를 건 나만의 노래, 나만의 절창을 부르자. 우린 그걸 위해 오지 않았는가? 누가 절창으로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만의 노래를 갖기 위한 투쟁을 나는 결코 멈출 수 없다. 나의 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내 인생의 절창도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베를린자유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