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도 동성결혼 합법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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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동성애자들의 결혼과 자녀 입양을 허용하는 법안이 프랑스 의회를 최종 통과했다. 프랑스에서 찬반 양론이 극명하게 갈리는 등 사회적 논란이 컸던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면서 영국, 미국 등의 동성결혼 허용 움직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프랑스 하원은 23일(현지시간) 동성결혼 관련 법안을 최종 표결에 부쳐 찬성 331표, 반대 225표로 통과시켰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이 법안의 핵심은 결혼을 ‘남녀의 결합’으로 정의하는 법률 조항의 문구를 ‘두 사람의 결합’으로 수정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동성애자들의 결혼은 물론 자녀 입양도 합법화됐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14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국가가 됐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이끄는 사회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동성결혼 법안은 이미 통과가 예정됐다. 지난 2월 하원에서 법안이 가결된 데 이어 상원에서도 일주일간에 걸친 심의 끝에 12일 거수 표결로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불과 몇 분 만에 법안이 통과된 직후 클라우데 바르텔로네 하원의장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며 기뻐했다. 크리스티앙 다우비라 법무장관은 “첫 동성결혼이 6월에 실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동성결혼 법안이 최종 통과됨에 따라 몇 달간 이어진 프랑스 내 찬반 논란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종교계 등으로 이뤄진 보수 단체들은 법안에 반대해 1월과 3월 파리에서 수십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를 주도했고 오는 5월 또다시 시위를 벌일 방침이었다. 최근 몇 주간 게이 커플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과 테러 위협이 끊이지 않는 등 사회 분열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이들은 동성결혼 법안을 취소하고 이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격적으로 법안이 통과되면서 동성결혼 허용을 강력하게 주장해 왔던 인권단체 등 진보 세력의 표정이 밝아졌다.

 최근 미국과 영국, 아일랜드 등 세계 각지에서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캘리포니아주의 동성결혼 금지법과 연방 결혼보호법에 대한 위헌 여부 심리를 진행 중이다. 동성결혼 금지법은 이미 1, 2심에서 위헌 판결을 받은 상태다. 결혼보호법은 결혼을 ‘한 남성과 한 여성의 혼인’으로 규정하고 동성결혼자에 대한 복지 혜택을 제한해 문제가 됐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오는 6월께 나올 대법원의 결론은 동성결혼 합법화 쪽에 기운 분위기다.

영국에서도 지난 2월 하원에서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이 가결되면서 2015년 발효를 목표로 법안 제정 작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한국에선 성 정체성에 대한 차별금지를 명시한 차별금지 법안이 야당 의원들에 의해 발의돼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논란이 가장 거셌던 프랑스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면서 프랑스를 지켜봤던 주변 국가들도 비슷한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커졌다. 변수는 있다. 미국과 영국 등의 보수 진영은 동성결혼이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가톨릭 인구가 다수인 프랑스에서 대규모 반대 시위가 벌어진 것처럼 기독교계가 강한 미국, 영국 등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편이다.

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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