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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우리의 미래상을 탐구하는 67년의 「캠페인」|한국인의 민족성 - 대표집필 최재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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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제의 멍에에서 해방 된지 22주년, 국치이후로 따져서 57주년을 맞아 우리가 「한국인의 민족성」을 논의하는 모임을 가진 것은 참으로 의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향상하려고 하는 개인이 자기 개성의 장단을 반성해 보아야 하듯이 전진하려는 민족은 자체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반성과 검토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장점은 더욱 더 발휘하고 결점은 시정하는 태도로 나가야 한다. 이런 태도를 취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민족의 정치·경제·문화 등 각 분야의 비약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획기적 행동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개념|공동문화의 집단>
한국인의 민족성을 논의하는 전단계로 민족이란 일반적으로 어떠한 것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씨족이 모여서 부족으로 커가고 부족들이 모여서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거니와, 이러한 민족을 규정하는 계기들로서 어떤 것들을 들 수 있느냐?
우선 혈연이 같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쉽게 말하면 핏줄이 같다는 것이다. 한국민족은 예맥-즉 괴메(khouei-mai)란 근간족에 한인·몽고인·만주인·일인 기타의 피가 다소 섞여 있다. 지구상의 문화민족·역사민족 치고 엄밀한 의미의 단일민족은 하나도 없다. 한국인도 역시 그렇다. 그러나 한국민족은 저 근간족의 우세하고 자약한 특징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
특히 안면의 골격이나 용모에 있어서 그러하다. 이런 의미에서 대체적으로 체질의 공통성을 말할 수 있다.
아무렇든 신체가 인간 생명체의 기체요 수단인 것처럼 같은 종족이라는 것은 민족생명체의 기체요 수단이라고 할 것이다.
지연이 같아야만 민족적 공동생활도 할 수 있다. 하기에 「지연 공동성」을 민족의 자연적 조건으로 들 수도 있다.
같은 국토에 살아야만 한 민족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본이나 미국에 가서 산다고 해서 곧 한국민족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지연이 같다는 것이 같은 민족이 되는 한 계기가 될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유일 절대인 것이 아니요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도 아니다.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은 역사를 통하여 생사의 운명을 공동적으로 경험하였고 또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절실히 느껴질 수 있다. 이런 운명공동성은 민족을 규정하는 역사적인 계기에 속한다. 그러나 민족이 다르면서도 운명을 어느 정도로 같이 할 수도 있고, 이런 면은 자유주의 진영에 속하는 현재의 여러 민족에서 직접 볼 수가 있다. 그렇고 보면 운명이 공동적이라고 해서 꼭 한 민족인 것은 아니다. 민족이 한 계기로 생사의 운명공동 성을 지시하는 것은 참으로 실감이 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민족에 관한 완전하고 충분한 규정이 되지는 않는다.
민족이란 공동의 문화를 가진 집단이다. 언어·문자·습속·의복·음식 등을 같이하는 문화공동 성이 민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것이 민족 고유의 「언어 및 문자」다. 과거의 악독한 일제가 우리 민족의 언어를 말살하여 동화정책을 써보았던 것도 언어가 민족을 규정하는 중요한 계기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민족을 규정하는 계기들로서 이상과 같이 혈연·지연·운명·문화 등의 여러 공동성을 논의하였다. 우리는 이런 계기들을 낱낱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개괄해서 고찰하여야 한다.
우리 민족은 체질이 대체로 같고 지연도 같으며 거기다가 역사적 생활운명과 전통적 문화를 같이하여 왔다. 이렇고 보면 공동성은 한 면만이 아니고 몇 겹으로 되어있고 그만큼 민족적인 결합은 굳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포괄적 견지에서 한국민족은 지구상의 여러 민족 중에서도 드물게 보는 민족이라고 할 것이다(단 현재의 남북분열은 잠정적인 역사현상으로 도외시하고).

<장점|지적·미적 재능>
민족성이라면 물론 그 민족에 공통된 성격을 말하는 것이어니와 그렇다고 해도 개개인의 개성의 다름은 물론 출신지방의 풍토를 따라서 차이가 있다.
종래 일러오는 평에 평안도 사람을 맹호 출임, 함경도 사람을 이전투구, 강원도 사람을 암하노신, 황해도 사람을 석전경우, 경기도 사람을 경중미인(혹은 송림복치), 충청도 사람을 청풍명월, 전라도 사람을 풍전세류, 경상도 사람을 태산교악 이라고 했다. 이 말이 어느 정도의 그럴듯한 평인 것도 같지만, 하옇든 지방의 기후풍토에 따라 성격상 다소의 차이가 있는 것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기질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인에게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공통된 민족성을 따져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민족성에 관해서 우리는 이제 그것의 장점부터 논의하여 보기로 한다.
우선 지성이 우수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한국의 해외 유학생들이 어학 기타의 재능에 있어서 딴 외국 학생보다 우수하다는 것은 널리 인정받고 있거니와 과거의 우리 조상들은 어떠했던가. 고구려에 불교가 공인 된지 불과 2세기에 승랑과 같은 이채 있는 고승을 내었고 신라에도 그것이 공인 된지 불과 1세기 반에 저 원효·의상 등과 같은 위대한 철인들을 배출시키지 아니하였든가. 활자·측우기 등의 발명, 사용은 인류 역사상에 역시 우리 조상들이 최초로 차지한 영광이었고 해인사의 팔만대장경도 문화적으로 세계적 자랑거리이거니와 표음문자로서 훌륭한 한글의 창제는 한국인의 우수한 지성을 세계에 증시 하는 것이다.
그다음 고려자기도 우리 선인들의 다름 아닌 예술적 재능을 과시하는 것이다.
또 근기에 들어 동방의 유학을 집대성한 이퇴계·이율곡·정다산 이라든지, 임진왜란에 자기의 온 인격과 재질을 발휘한 문무겸전의 이충무공이라든지, 서예의 귀재인 김추사, 지도학의 권위인 김정호, 기타 특출한 문인·재사들을 손꼽으려면 한량없을 것이다.
우리민족의 둘째 장점으로는 줄기찬 성질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은 그 생활의 시초부터 대외적으로 여러 이민족에 둘러싸여 이들과 접촉하지 않을 수 없었고, 따라서 그들에게 시달린 때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바람이 때려도 자약한 「바위」처럼 줄기차게 하나의 주체적 민족문화를 형성해왔다. 그리고 이런 사태의 이면에 한국인의 끈덕진 민족성이 참여하여 있었음을 잊을 수 없다.
한국인이 견딜성이 있고, 줄기차며 끈덕지다는 것은 일인의 조급함(소위 단기)에 대조적이요, 오히려 대륙인적 기질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중국인의 배타 독존적 기질 내지는 음험한 기질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한국인의 세째 장점으로 평화 애호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은 종래 농경민족으로 토지에 정착하여 자급자족의 생활을 영위하여온 만큼 침략적인 호전적 국민이 아니었다. 투쟁과 침략이 있었다면 그것은 우리의 자유와 평화와 독립을 파괴하는 불의부정에 대해서였고 또 우리의 고토를 회복코자, 민족을 통일코자 하는 염원에서 였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치르고 있는 비평화적 상태도 우리 민족의 모슨 호전성에 연유된 것이 아니라 침략에 대한 방위전이요, 오히려 「통일적인 조국」 회복전이라고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잔인한 행위의 사례도 가끔 보이지만 전체적 역사를 통해 볼 때 한국인은 평화를 애호하는 민족이라고 지목해도 좋다.

<단점|「사대」와 「허식」>
보통 한국인의 단처로 사대성을 지적한다. 또 이런 사대성의 원인을 지정학적 견지에서 강대민족 사이에 낀 한국의 지리적 위치에 돌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소론에 우리는 의심을 품는다. 첫째에 관해서 말한다면 정치적으로는 하나의 민족은 과거나 지금이나 상호의존적(interdependent)이기 때문에, 때를 따라 의존적(dependent)이기 만한 외모를 나타낸 사례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든지 외모였고 그렇다고 해서 주체성을 잃고 사대에만 급급했던 것이 아니다. 소위 조공형식의 예물교환은 있었지만 저 고조선시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군주가 몸소 중국에 입조한 사실은, 저 여원 간의 구생관계를 가진 시대를 제외하고는 한번도 없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무렵에 당의 힘을 빌었으나 그후 당의 야심을 간파하고 도리어 무력으로 그들을 몰아내어 통일사업을 완수하였던 것이 아니냐. 그후 중국과의 관계가 사대적인 것처럼 보인 것은 사실은 정치적 사교성, 문물의 교류를 위한 의욕이었다.
둘째의 지정학적 견지에 관해서 말한다면, 한국과 비슷하게 강대국에 싸여 있으면서도 사대성은 커녕 도리어 강건한 주체성을 발휘하여 온 독일인의 예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사대적이 되었다는 해석에 우리는 반대한다.
한국인의 단처로 다음에는 천박한 현실주의를 지적할 수 있다. 이것은 토지에 정착해 있는 농경민족의 일반적 특색이다. 이런 민족에는 초월적인, 준엄한, 위대한 종교가 없고 신앙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현세에 집착하는 신앙이 있을 뿐이다.
천박한 현실주의로부터 허식을 좋아하는 단점도 등장한다. 한국인은 지금도 헛된 명예, 실리 없는 「장」의 이름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허례허식 적인 「기념식」 행사만도 얼마나 흔한가. 늘 사회의 경고를 받지마는, 혼상례의 허식적 폐단이 여전이 종식되지 않고 있다. 기타 의식주 생활에 있어 한국인의 좋지 않은 허식성을 든다면 얼마든지 들 수 있지만 확실히 이것은 우리의 큰 결점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국인이 개인적으로는 우수하나 단결심이 약한 결점을 말하는 이가 있다.
이 점도 긍정할만하다. 우리민족은 이때까지의 생활에서 일시의 ??동적 행동은 많았으나 자각에 의한 전민족적 단결행동에는 삼·일 독립운동 때를 제하고는 별로 괄목할만한 능률을 보이지 못했다.
이러했던 때문에 역사적인 큰 사건을 전 민족이 협동해서 선처한 일이 드물었다. 민족적 대단 결심이 약한 이유의 하나는 혈연적인, 또 지역적인, 기타 인위적인 소 공동체 소 협동체의 단결심이 의외로 강하였던 까닭이다. 이때까지는 같은 씨족끼리의 폐쇄적 단결만을 일삼기도 했다. 「두레」(도) 「계」 등 소규모의 협동조직도 사실은 오랜 역사를 갖는 것이다. 대가족주의로 말미암은 폐쇄적인 단결심은 오늘날 붕괴 과정에 있으나 그러나 농촌의 관례적 세력은 지금도 얕게 볼 것이 못된다. 그외에 출신지방 끼리의 단합만을 노리는 지방적 근성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근조선의 같은 유자사회내부의 파당적 싸움에는 일일이 언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파당적인 폐쇄적인 양협성의 근본이유를 지리학적으로 논하는 이도 있다. 즉 한국은 산악으로 꽉 차있어 좁은 골짜기가 많고 따라서 거기서 자라는 인성이란 대개 편협하며 사소한 이해와 시비를 따지기를 좋아하고 배타심이 따르기 쉽다는 것이다. 물론 평원 광야에서 생장한 민족의 기질과는 다소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산악지대가 아닌, 광막한 지대의 민족은 모두 마음이 넓어서 대 단결을 성취하며, 그런 민족의 역사에는 알력이 없는, 조화만을 정시할까 하는 의문도 있다. 소 단결이 인위적 결합인 이상 대 단결도 민족의 자각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어쨌든 우리는 오늘날의 비상시국에 있어서 소 단결심보다도 민족적 대 단결심을 발휘하여 이 난국을 선처해가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한국인의 좋지 않은 민족성을 사대성·천박한 현실성·허식성·대단결심의 부족 등으로 분류하여 그것의 시비를 논의해보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사대성만은 통속의 견해와는 달리 의외로 의심스러운 면이 있다고 보았다.

<형성|조장교단>
민족성의 형성에 한 종족의 기체·풍토 등이 참여하여 있고, 이런 것들을 갑자기 변개할 수는 없다. 한 종족의 체질을 체육과 영양에 의해서 어느 정도로 향상케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적 종족 자신을 완전히 개조할 수는 없다. 하기에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종족으로 태어난 것은 선천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속담에 귤은 양자강 이남에서의 말이고 양자강 이북에 심으면 탱자로서 변한다고 했다.
이 말이 어느 정도로 과학성을 띠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그 속담이 종자도 환경에 의해 상당히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 점에서 의의가 있을 것이다. 사실 근래 생물학자간에서는 환경에 의해서 유전이 변한다고 한다.
이런 말들을 참고하더라도 민족성은 대부분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이요, 한 민족을 이룬 개개인이 그들의 지성과 덕성과 기술을 주체적으로 활용함을 통해서 민족성의 후천적 형성을 선도할 수 있음이 알려진다. 민족성의 형성에 참여해있는 후천적 요소는 그 민족의 풍토·사회환경·역사적 전통문화 등이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당대의 과학적 지성, 민주적 이성 등의 규준에 의거해서 비판을 가함으로써 그 선악을 분별하고, 마땅히 유지할 것은 유지하고 폐기할 것을 결연 폐기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민족성의 장점은 더욱 더 조장할 수 있고, 우리 민족성의 결점은 저절로 교정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우리 민족성의 장단을 논의하는 것도, 민족성을 후천적으로 개선해 갈 수 있음을 전망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다. 이런 전망이 불가능하면 민족성의 논의는 애초부터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좋은 민족성의 육성에 국민의 자기 교육적 노력이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국민의 교육적 노력은 그 안목이 커야만 한다. 오늘날의 국민은 친 군자 원소 인이라는 유가의 인습적 척도에만 살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요, 동양문명은 정신적이라서 고상하고 서양문명은 물질적이라서 비천하다는 식의 헛된 「동양문명 독존」의 안목만 가져서도 안될 것이다. 안목을 「세계적 이성」에 찾아서 자기 민족성의 향상을 도모하는 동시에 자기 민족의 번영과 부강을 노려야 할 것이다.
이런 중에서도 중대한 것은 한국인이라는 자각과 자부심을 간직하는 일이다.
이런 자각과 자부심이 철저하기만 하면 한국인이 외국인에 대해서 1대1로 훌륭한 일개 인간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나 국외에서 민족적 협동심과 협동적 행위도 기하지 않고 약동할 것이다.
미국을 잠깐 들어보아도 그곳에서 중국인과 일본인은 각각 「차이나·타운」(China Town) 「저팬·타운」(Japan Town)을 형성해있지만 「코리아·타운」(Korea Town)의 형성만은 볼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이 국외에서 한국인의 협동심과 협동적 행동이 아직도 결여되어 있는 증거겠다는 심회를 갖는 것은 오늘날 이 자리에서 공동적인 좌담을 하는 우리만의 심경은 아닌가 싶다.
우리 민족성의 논의에 있어서 우리는 결코 편협한 배타적인 민족사상을 고취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족의 민족성을 반성하는 동시에 전세계에서 타족의 좋은 민족성에도 착안하면서 우리는 오히려 세계적 우대로 진출하는 폭이 넓은 한국인의 기질과 자세를 기르도록 대망하고 있는 바이다.
끝으로 한가지 주의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우리의 생활 무대가 단지 한반도라고 생각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만주가 원래 고구려 땅이고 보매 만주의 고토까지 앞으로 한국인의 생활무대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무슨 침략적 생각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이점은 우리민족의 새 국사 교육에 있어서도 당연히 논의되어야 할 문제에 속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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